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203 수도권 직장생활과 지방의 직장생활, 어디가 더 좋을까? 부제: 수도권 직장생활의 장점과 단점 나는 서울 생활을 10여 년간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서울과 경기 지역을 번갈아 옮겨가며 살았다. 그런데 대개 수도권을 서울로 생각하는 경향이 큰 듯하여 ‘서울 생활’로 말했음을 양해 바란다. 직장을 다니면서 서울에 자주 출장을 오긴 해도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월이다. 지방에서는 더 이상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해서 서울행을 결정했다. 나는 어디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기질적 특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생활은 다소 적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정이 안 갔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건물들이 삭막해 보였다. 도시의 빌딩숲이 나에게는 마치 성냥갑 같아 불편했다. 한 건물 안에 주거시설에서부터 술집, 음식점, 대중탕,.. 2013. 10. 21. 영업직에 무조건적인 알레르기를 보여서는 안 되는 이유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직업에 대한 ‘귀천’이 정해져 있다. ‘이러이러한 직업은 좋다. 저러저러한 직업은 좋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육체노동과 기능적인 일, 일부 서비스 직종의 일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 꺼려지는 직업들을 암묵적으로 분류해두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육체노동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무직 직종 중 하나가 영업직이다. 영업 중에서도 제일 싫어하는 직종이 ‘보험 영업’이 아닐까. 보험 영업을 하려는 사람은 마치 벌레 보듯이 대하는 사람들의 눈총까지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다. 이처럼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쉽게 버리지 못.. 2013. 10. 15. 아내의 입사지원서에 추천서를 작성한 사연 부제: 나 자신을 포장하는 스킬도 배우자! 결혼 초 아내는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 교사였다. 내가 지방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자 아내도 서울로 따라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은 활기차고 적극적이어서 어디서 일을 하든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아내도 서울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입사지원서를 한 번 봐주겠다며 아내가 작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봤다.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보였다. 학력이나 지력, 경력, 능력, 열정에 비해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포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취업이 안 되겠다 싶어서 간단하게 입사지원서를 손봐줬다. 일단 기본적인 틀이 잘못되어 있어서 아예 틀.. 2013. 10. 7. 폼 나 보이는 직업이면에는 무수히 번거로운 노력이 숨어 있다! 삶에서 느낀 작은 교훈 하나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주말부부로 생활하다가 고향인 부산으로 이사해 와서 몇 년째 살고 있습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했지만 강연은 여전히 전국적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데요. 때로 정말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오늘 강연을 의뢰받고도 거리가 너무 멀어 받아들일까 말까 망설이다가 소개해주신 분의 마음을 보고 강연을 수락했는데요. 몇 번이나 다시 전화해서 거절하고 싶은 다짐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정말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로 이동해서, 노포동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강릉 버스터미널까지 무려 5시간 30분가량을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강릉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횡계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하는 버스에 올라 30여분 가량 이동했습니다. 용.. 2013. 9. 25. 자기성장을 위한 직장인들의 생존 몸부림 경제가 어렵다 보니 조직도 개인을 책임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조직 스스로의 생존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고용의 책임을 기업에게만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개인도 기업에 의지하지 않고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할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퇴근 후나 주말까지 자기계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많다. 심지어 퇴근 후 곧장 독서실로 향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이처럼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직장인을 ‘샐러던트saladent’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직장인salary man’과 ‘학생student’이 합쳐진 신조어다. 한편 시대적 상황을 비관하고 무조건적으로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며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이런 .. 2013. 8. 26. 아차하는 순간 실직기간이 늘어난 실직가장의 비애 부제: 9개월째 백수로 지내던 가장의 진짜 실직 이유 30대 중반의 한 구직자가 찾아왔다. 내 강의를 들었던 한 여성분의 남편이다. 남자는 아내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상담을 받으러 왔는지 연신 쑥스러운 표정이다. 함께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위로해주려고 조용한 식당에 갔다. 사정을 들어보니 벌써 9개월째 실직 상태다. 왜 이렇게 실직 기간이 길었는지 물었더니 첫마디가 “아내만 믿었죠”였다. 아내가 경영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는데, 3개월 이내에 일자리가 생길 것 같다고 말해서 그동안 자신은 일자리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9개월 동안 뭐했느냐고 물었더니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학원에서 하루 1시간 정도 영어 수업을 들었을 뿐, 그 외에는 별도로 하는 공부도.. 2013. 8. 14.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백만 원도 못 버는 시간강사의 슬픈 현실 부제: 공부보다 중요한 생존의 기술을 익혀라!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취업 특강이 있었다. 나를 추천받고는 강의를 의뢰해준 교수가 있었는데,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한 공공기관에서 7년가량 일하다가 현 대학교로 1년 전에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대학에 있다 보니 기존 조직에서 처럼 눈치 볼 직속 상사가 없어서 좋았다고 한다. 자유롭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교수로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점도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런데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막상 높은 진입 장벽을 뚫고 들어가도 진급연한제가 있어서 불안한 면이 있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게다가 보수적이고, 연봉 인상도 제한.. 2013. 8. 12. 왜 같은 직업을 가지고도 만족도는 서로 다를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일이라도 불만족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택시기사가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같은 일을 하지만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2007년 2월,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어느 날이었다. 대구에서 오전 강의를 끝내고 부산 강의를 위해 택시를 타고 급히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분이 “요즘은 쓸데없이 운전 하러 나오는 인간들도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뜬금없는 질문에 무슨 영문인가 했는데, 바로 앞에 가는 차량이 느리게 움직이니 답답해서 하는 투정인 듯했다. 택시는 작은 골목을 빠져나와 큰 도로로 들어선 이후 4차선부터 1차선까지 차례로 차선을 .. 2013. 7. 26.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프로 직업인 부제: 외국인에게 사인 받는 택시 기사 택시를 타다 보면 기본요금 거리여서 여러 명이 우르르 타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한번은 “아저씨, 가까운 거리예요. 바로 요 앞인데요. 사람이 많은데 괜찮을까요?” 하며 택시 타기 전에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기사 아저씨가 흔쾌히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승객이 원한다면 어디든 갑니다. 짧은 거리면 뭐 어떻습니까” 하고 즐겁게 응답한다. “아저씨는 정말 즐겁게 일하시는군요”라고 말하며 택시에 올랐다. 그러자 이 택시 기사분은 “왜 즐겁지 않겠습니까. 즐겁기만 한걸요”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낡은 방명록을 꺼내 자랑한다. 택시를 탄 승객에게서 받는 방명록이란다. 그런데 다소 특별하다. 외국인에게만 사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웬만큼 알려진 사람이니 사인해주.. 2013. 6. 10. 정규직은 귀족, 일용직은 천민? 부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갑과 을의 계급 우리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다. 분명 자유민주의의가 발달한 민주사회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때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며 군인들의 계급에 따라서 그들 가족에 대한 대우까지 달라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군부대에서 시내를 오가는 버스에서 빈자리가 있어도 직급이 낮은 가족들은 앞에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마치 흑인사회의 변화바람을 불러일으킨 몽고메리 보이콧과 같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고 일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는 지위와 계급이 여전히 나눠져 있다. 비단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는 한때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솔직히 한때가 아니라 여러 번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 2013. 6. 5. 부끄러운 사업실패에서 배운 값진 교훈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건 작건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실패한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며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치부로 여기는가 하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노력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나 역시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어떤 실패가 있더라도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고자 노력했다. 내 사업 실패 경험이 당신에게도 삶의 작은 교훈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에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해보겠다. 일자리 정보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서 유통되고 있기에 누구나 취업 사이트 한두 번씩은 방문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하나의 산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 2013. 6. 3. 주식투자 때문에 전세자금까지 모두 날려버린 아픈 기억 부제:한 방에 성공하겠다는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한 방에 성공하는 인생이라면 실패도 한순간이다!"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 내가 일하던 무역회사에서 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이 벤처기업에서 개발한 제품을 해외 시장으로 진출시키는 것이 당시 내 주요 업무였다.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 덕분으로 나는 미국과 캐나다 박람회에 참가하여 국내 제품을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개월간 해외 마케팅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갔다. 많은 외국인이 한국 IT 박람회에 참관하며 관심을 보였다. 당시 박람회에 참가한 이후 사라진 기업도 많지만, 성공해서 지금까지 이름을 날리는 기업들도 있다. 개중에는 천만장자가 된 벤처 사업가도 있고 쪽박 차서 감옥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미래.. 2013. 3. 6. 이전 1 ··· 5 6 7 8 9 10 11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