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8 버스에서 통곡하며 울던 한 청년의 사연 부제: 젊은 날 한 없이 울고 또 울었던 기억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 1학년이나 2학년이었을 때였지 싶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 때였다. 어쩌면 내 청춘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가 이때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했나 보다. 어느 봄 날. 친구들과 하교 길에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쳤다. 겨우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 친구들이 나를 자리에 앉혔다. 아마도 취했나 보다.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농거리를 하다가 차창 밖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밀려와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주변에 친구들도 있고 그것도 사람들이 많은 버스 안이었는데도 다 큰 청년이 소리 내어 우니 얼마나 민폐였을까. 돌이켜보면 참 민망한 일이.. 2012. 1. 27. 서른 번의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입니다. 무더운 여름이라 일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군요-_-;;;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새로운 도서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써보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의 도움을 얻을까 합니다. 서른 번의 직업을 거치며 제가 좌충우돌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하는데요. 카리스마의 프로필이 궁금하다면 : 프로필 보기 + 카리스마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 아래글들을 클릭 해고당한 후, 죽고 싶었다!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의 의미? 첫 직장, 첫 해고의 뼈아픈 기억 거듭되는 입사탈락으로 양치기 소년 되다!!! 87학번인 나 대학시절에 분신자살을 꿈꾸다! 버려진 버스에서 살았던 내 어린시절의 추억 희생 없이 아름다운 것을 얻을 수 없다! 주말부부로 살아온 이야기! 이라는 도서 제목.. 2010. 7. 21. 평범한 사람들도 자서전을 써야 하는 이유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들만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다. 단순히 쓰는 것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 의 저자 린다 스펜스의 생각이기도 하고 또한 내 생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쓴 모든 책이 출판될 수는 없는 법이다. 비록 출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자서전을 써보는 것은 분명 유용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 은 아주 필요한 책이다. 먼저 자서전이 왜 필요한지 필요성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요즘 자서전을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정작 자기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써야 될지, 무엇을 적어야 될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은 도움이 되리라 싶다. 어린 시.. 2010. 3. 16. 선생님 물먹인 어머니, 자식을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 순하디 순한 어머님이 호랑이 선생님을 소위 물먹인(?) 기억이 떠오른다. 최근 자서전을 준비해볼까하고 과거를 돌아보다가 떠오른 사건이다. 자서전은 평범하다고 출판을 거절당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겼다. 그래도 나의 역사를 되돌아본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여하튼 그래도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기업의 전문경영인도 두 번을 거쳤다. 대학교 교수도 되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성취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부쩍 성장한 나 자신을 보면서 가끔 나도 놀래곤 한다. 그러면서 부족한 내가 이 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에 대한 어머니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2008. 1. 17. 내 인생의 첫번째 멘토 - 벤자민 프랭클린 2,3년 전에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로서, 내 삶의 롤 모델로서, 내 인생의 멘토로서 세 분을 모셨다. 지금은 5분이 되었다.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여서 차례대로 5분의 이야기를 꺼내볼까한다. 그 중에서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 젊은 날에 영향을 끼친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가 쓴 자서전은 내가 가장 많이 추천하는 도서이다. 지금 읽으면 현재와 다소 동떨어진 시대적 느낌도 가질 수 있으나 여전히 세월의 흐름에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모델이기도 한 그의 13가지 덕목을 실천함으로 인해서 내 삶은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발상한다는 것에는 즐거움과 함께 두려움이 뒤따른다. 두 번째 도서를 발간한다고 한데다가 매주 외.. 2008. 1. 3. 피터 드러커 생애 - 유럽에 대한 실망 함브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시절: 기업과 사회에 대한 관찰 드러커는 1927년 빈 김나지엄을 졸업하고, 그 해에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근무했다. 1927년이 다 저물어 갈 무렵, 견습서기로 취직한 지 4개월 만에 드러커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어 빈에 돌아왔다. 그런 드러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주간지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Austria Economist)의 신년 특집호의 편집회의에 나오라는 초대장이었다. 드러커는 열 네댓살 무렵부터 그 잡지를 애독하고 있었으나 편집자와는 만난 일은 없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에서도 이름있는 잡지였다. 창간 당초는 [런던 이코노미스트](London Economist)를 모델로 하..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지적 분위기속에서... 살롱과 도서관 드러커가 어린 시절부터 유럽 상류사회의 사교 및 지적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게 된데는 전술한 헴의 처 게니아 여사가 운영하는 살롱에 초대되면서 부터였다. 그녀의 살롱에 출입하는 사람 가운데는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도 있었다. 드러커는 "내가 그녀의 살롱에서 만을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만은 노벨상을 받기 수년 전이었는데, 그는 이미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게니아의 살롱에서는 누가 언제 [주역]이 될지 몰랐다. 내가 출연자석에 최초로 앉은 것은 14, 5세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세계무역에서 파나마운하의 영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개통한 지 10년 안팎이라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고 회고..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격동의 20세기 초 2005년에 작고한 피터 드러커 교수는 내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다. 드러커 교수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과 교훈은 '나의 인생, 나의 꿈'에 별도로 올리도록 하겠다. 국내에서 드러커 교수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대구대학교 총장출신의 이재규 박사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드러커 교수에 대한 정보를 옮겨본다. 죽는날까지 완벽을 추구하신 그 분, 또한 그 분을 뛰어넘고자하는 분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리라. 1. 격동의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과 부모의 영향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F. Drucker)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그의 모친.. 2007. 12.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