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인생,사는 이야기217 미용실 아줌마도 주식한다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 원장님 요즘 살맛났다. 주식으로 재미봤기 때문이다. 어떻게 투자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전에는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종목을 사다가 이제는 전문가가 추천하는 종목만 산다고 한다. 카페를 통해 정기적으로 돈주고 종목 추천받는다고... 그래서 어떤 전문가냐고 물어봤더니 인터넷카페에서 만난 투자전문가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고 그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괴팍하긴 해도 주가를 잘맞춘다며 그에게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지불한다고 한다. 이 인간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새벽에 술기운에 추천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주식은 오른다고 한다. 세상에... 왠만하면 조심하라고 권했다. 나도 너무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버는 것은 잠깐이지만 잃는 것은 순간이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벌꿀파.. 2008. 2. 22. 구두닦이 아저씨와 행복한 대화 우연히 들린 구두수선점에서 인생의 행복을 배우다! 구두닦이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서민의 도인을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모두가 주옥같이 배울만한 내용들로 넘칩니다. 따뜻한 카리스마(이하 ‘따’, 거듭말하지만 '왕따'의 '따'아님^^): 아저씨는 일하시는게 즐거운가 봐요. 구두닦이 아저씨(이하 ‘아’): 그래서 비가 와도 일하러 나옵니다. 비도 안새니까요. 일거리 없으면 TV라도 보죠. 그게 집에 있는 것 보다 낫죠. 집사람도 신경 들쓰고, 놀러 다러 다니는 셈치고 매일 나옵니다. 따: 비가 오나, 눈이오나, 나오시는 군요. 너무 재미있게 일하시는 것 아니셔요. 아; 이왕이면 재미있게 일해야죠. 따: 돈은 많이 버세요? 아: 돈은 많이 못 벌지~~, 돈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은,,,하하하.. 2008. 2. 20. '구두닦이 아저씨'에게 행복을 배우다! 행복해지는 동영상 인터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배움과 깨달음 얻어... 아내와 우연히 들린 구두수선점! 그냥 습관적으로 구두딱이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업은 할 만 하세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인생의 배움을 얻다!!! 그 깨달음을 블로그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미지; 행복이 꽃피는 구두수선점) 그런데 의외로 자신의 구두닦이 일에 너무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정말일까?', '어째서 행복한 것일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꼬치 꼬치 캐물었다^^ 아저씨 이야기가 술술술 쏟아져 나오는데 모두가 명대사였다. 완전한 몰입! 그런데 아내의 구두수선이 다 된데다가 새로운 손님이 와서 자리를 일어서야만 되었다. 10여분 만에 구두닦이에게 배운 인생의 교훈, '누구나 행복할 수 있.. 2008. 2. 20. 50대 아줌마 블로거 TV방송 타다(동영상) SBS '김미화의 U'라는 방송프로그램에 50대 아줌마 블로거 박미정씨가 떴다^^ 그냥 아줌마가 아니라 '파워 블로거'다. 방송에서는 '스타 블로거'라 지칭했다. 나는 블로그한지 얼마 안되어서 이 분 이야기를 처음접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또 대한민국의 주부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무작위로 잡아봤다^^또라이 기질?^^ (이미지; SBS 김미화의 U에 출연한 50대 스타블로거 박미정씨) (동영상; 파워 블로거 박미정 주부 소개 동영상) (동영상; 블로그로 크라이엉 넛을 만나다!) (이미지;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 김미화씨와 기념촬영까지...) 우와, 멋지다^^나두^^ 때로 핸디캡이 더 유용한 것이다. 자신이 가진 핸디캡을 조금만 벗어나면 큰 세상이 열린다! 나두 핸디캡 많은데.. 2008. 2. 19. 지하철 외판원 생활한 탤런트 김학철(흑수돌)-동영상 지하철 외판원 아무나 하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고 지하철 외판원으로 나설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연예인이라면... 드라마 대조영에서 ‘흑수돌’역으로 열연을 한 탤런트 김학철이 한때 지하철 외판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왕영은씨가 진행하는 KBS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 출연해 그동안에 살아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무명시절 가난해서 결혼식도 못올려 연극배우로 생활하던 80년대 당시에 TV나 영화의 단역배우로 출연해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거를 2년 동안 했지만 단역배우의 수입만으로는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한다. (사실 방송에서 그는 놀기도 심심해서 일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 답다) 아르바이.. 2008. 2. 13. 먹는 언니로부터 받은 따뜻한 카드 연하장을 쓰지 않은지 한참되었다. 솔직히 말해 카드를 받아도 대부분 형식적이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제대로 답장도 않은지 오래되었다. 한때 연말연시만 되면 '크리스마스다', '신정이다', '설날이다'하면서 정성스레 카드를 보내곤 하였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스티커가 너무 멋지다. 언니답다. 뜯으면 먹을 것이 나올 것만 같다^^*^^) (접사가 안 된다. 흐흐흑-_-;; 내 카메라 꼭 바꾼다$%$$$$#$$$) 그렇게 10여년 가까이 써보지 못했다. 그저 아는 분들에게 전체적으로 보내는 메일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올해는 메일 조차 제대로 보내질 못했다. (갈수록 더 매말라 간다&^%@#!) 그런데 오늘 저녁 먹는언니 홍난영님으로부터 반가운 새해카드를 받았다. 너무 반가워서 이래저래 카메라를 .. 2008. 2. 12. 25살에 시각장애인이 된 청년이 말하는, '행복' 만일 25살에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당연히 바라보던 가족들과 하늘 조차 바라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저는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저는 나사렛대학교에서 ‘진로개발과 생애설계’라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100여군데의 대학과 기업에 강연을 나갑니다. 소위 가르치는 일이 제 업이죠. 잘나서 가르치는 것은 아니죠. 그러다보니 가르치면서 오히려 너무 많은 배움을 얻곤 합니다. 제 미약한 지식으로 풍부한 삶의 실제적 지식을 전달하지 못할 때 스스로에 대한 안스러움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늘 따뜻하게 지지해주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제가 겪은 작은 배움을 하나 이야기할까 .. 2008. 2. 3. 전국에서 꼴찌한 연예인에게도 배울 점 있어 고3의 고민 중에 하나가 수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치러야 할 전쟁이 바로 모의고사다. 그런데 이 전국에서 시행되는 모의고사에서 골찌를 한 연예연이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국 60여만명에 가까운 고등학생중에서 골찌를 한 연예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는 MBC의 '환상의 짝꿍'이라는 프로그램을 잠시 봤다. 짝꿍을 정하기 전에 아이들이 던지는 인기투표의 결과에 따라 연예인들의 엇갈린 희비교차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과 표현도 재미있다. 사실 끝까지 본 적은 없다. 오늘도 지나치면서 잠깐 봤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좋은 이야기꺼리가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언론이 완전히 반대로 기사를 게재해놓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좀 더 올바르.. 2008. 1. 27. 피터 드러커 생애 - 유럽에 대한 실망 함브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시절: 기업과 사회에 대한 관찰 드러커는 1927년 빈 김나지엄을 졸업하고, 그 해에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근무했다. 1927년이 다 저물어 갈 무렵, 견습서기로 취직한 지 4개월 만에 드러커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어 빈에 돌아왔다. 그런 드러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주간지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Austria Economist)의 신년 특집호의 편집회의에 나오라는 초대장이었다. 드러커는 열 네댓살 무렵부터 그 잡지를 애독하고 있었으나 편집자와는 만난 일은 없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에서도 이름있는 잡지였다. 창간 당초는 [런던 이코노미스트](London Economist)를 모델로 하..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지적 분위기속에서... 살롱과 도서관 드러커가 어린 시절부터 유럽 상류사회의 사교 및 지적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게 된데는 전술한 헴의 처 게니아 여사가 운영하는 살롱에 초대되면서 부터였다. 그녀의 살롱에 출입하는 사람 가운데는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도 있었다. 드러커는 "내가 그녀의 살롱에서 만을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만은 노벨상을 받기 수년 전이었는데, 그는 이미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게니아의 살롱에서는 누가 언제 [주역]이 될지 몰랐다. 내가 출연자석에 최초로 앉은 것은 14, 5세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세계무역에서 파나마운하의 영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개통한 지 10년 안팎이라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고 회고..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격동의 20세기 초 2005년에 작고한 피터 드러커 교수는 내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다. 드러커 교수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과 교훈은 '나의 인생, 나의 꿈'에 별도로 올리도록 하겠다. 국내에서 드러커 교수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대구대학교 총장출신의 이재규 박사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드러커 교수에 대한 정보를 옮겨본다. 죽는날까지 완벽을 추구하신 그 분, 또한 그 분을 뛰어넘고자하는 분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리라. 1. 격동의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과 부모의 영향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F. Drucker)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그의 모친.. 2007. 12. 13. 잡코리아 김화수 대표- 뚝심있게 밀고 나가라 웹리크루팅, 쉽게 말해 취업사이트는 내가 몸담았던 산업 중에 하나였다. 이 분야에 자세한 내용과 내 사업의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경영란에 한 번 더 다루겠다. 이 카테고리는 인물을 다루는 곳이라 기사에 올라온 사람들을 그냥 가볍게 캡쳐하면서 올려본다. "하고 싶은 일과 연애를 시작해라!" 국내 1위 취업포털 잡코리아 김화수 사장 우경희 khwoo@newsva.co.kr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연애하듯 사랑에 빠져,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997년 대학원 졸업반 시절, 뜻이 맞는 4명의 친구와 함께 5000만원으로 창업한 잡코리아를 10년만에 매출 400억원 규모의 온라인 취업포털 1위 기업으로 키운 김화수 사장.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 2007. 12. 13. 이전 1 ···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