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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지독하게 싫었던 어린 시절의 명절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1. 25.

 

설 명절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쁜날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이런 명절이 싫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 제 각각 고향을 찾아 떠났다.

떠나지 않은 친구들은 놀러온 친척 아이들과 어울렸다. 놀 친구가 없어서 늘 외로웠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2대 독자라 친척이 거의 없었다. 5촌 당숙도 있었으나 돌아가셨다. 6촌의 친구 또래 아이들도 있었으나, 5촌 당숙 아재가 돌아가신 후, 5촌 아줌마가 선산을 팔아버렸다. 아버지가 돈을 빌려 쓰며 선산을 저당 잡혀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가 버렸으니 선산을 팔아버리고 고향땅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는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버지 고향 땅에는 먼 친지들이 조금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선대에 남겨두었던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려 고향땅을 밟을 체면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관련기사: 버려진 버스에서 살았던 내 어린시절의 추억

아버지는 당대에 떵떵거리며 살았으나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 당시에는 부유한 모습을 거의 보질 못했다. 우리 식구들은 늘 가난했다. 중학교 3학년까지 버려진 버스 안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모양새가 초라하니 친척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자존심에 손님을 초대하기가 민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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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명절만 되면 놀러갈 곳이 없었다. 다들 한복을 입고 다녔다. 그렇지만 나는 어릴 때 한 번도 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두번 입는 그런 옷을 입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명절 때는 집에 콕 쳐 박혀 있거나 혼자 논두렁을 헤매곤 했다. 당시에는 명절이 너무 싫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에도 일해야 될 때도 많았고, 명절마다 귀향 전쟁을 치르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언제나 시끌벅적거리지만 명절만 되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즐길 수 있으니 즐겁기만 하다. 어린 시절의 옛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언제 그런 아픔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지금은 너무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지난해 외할머니댁에 찾아서 새배 드리면서 한 컷 찍어둔 우리 가족 사진. 명절증후군 극복하려면 결혼이 최고다. 물론 아이들이 덤으로 뒤따라야만 더 큰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명절 때만이라도 형편이 어려운 친지들을 찾아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고 덕담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온정을 주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분 어린 시절의 명절은 어떠했는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추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볼까하고 트위트 개설 했습니다^^ @careernote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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