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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내가 서른아홉의 나이에 사표를 쓴 이유

by 따뜻한카리스마 2010. 8. 19.

살아가다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결코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들이 하나둘 있을 것이다.
어리석다 보니 나는 그런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 하나를 고백하겠다...


나는 서른아홉에 사표를 썼다. 그리고 다시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지 않았다. 좋게 보면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실상 쫓겨난 것이었다. 또한 당시로 봐서 독립하기에는 준비가 불충분했다.


30대 중반에 사업부 책임을 맡고 있고 있었고, 30대 후반에는 비록 명목적이나마 기업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만 붙어 있으면 나름대로 폼 나는 직장이었을 것이다. 비록 월급쟁이 대표지만.


다만 미래를 위해 준비 되어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독립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사업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부의 인력부족, 사업의 후발주자로서의 어려움, 거의 전무한 광고마케팅 비용, 사업추진을 위한 재정적 지원 부족, 우리 사업에 대한 본사 경영진의 이해부족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핑계가 있었겠지만 사업 책임자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진 회의에서 회장님이 나에게 ‘사표를 쓰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자 없이 사표를 바로 썼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경비를 삭감했다. 그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업 형편에 맞을만한 니치 마켓을 뚫어 승부를 걸기로 사업전략을 수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기획안은 거절되었다.


또 다시 회의 석상에서 사표 이야기가 나왔다.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 급여를 안 받고라도 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사표를 곧바로 던졌다.


주변에서 말렸다. 원래 회장님 스타일이 회의를 할 때마다 ‘사표를 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다. 그래서 임원진에게는 월요일의 회의가 공포 그 자체였다. 격려차원에서 한 말이므로 사표를 반려하라는 것이 주변의 의견이었다. 막상 사표를 던지자, 회장님 역시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조직이라는 안정된 테두리를 벗어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붙잡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과감히 회사를 뛰쳐나왔다. 사람들에게 쿨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는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실직자가 되었다.


무엇을 해야 될지 막막했다. 참담했다. 수염도 깎지 않았다. 혼자서 지냈다. 그렇게 한 달 이상 가족들 조차 만나지 않았다. 노동부에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혹시나 하고 모자도 푹 눌러쓰곤 했다.


(누군지 모르시겠죠^^직장에서 사표를 쓰고 나와 혼자 집필하느라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을 때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상태랍니다. 주말부부 하고 있던 아내와 아이가 거의 2달 만에 일산 집으로 찾아왔을 때의 모습이죠^^)

1인 기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을 쓰기 위해 글감을 모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12시까지 일했다. 1분 1초도 아껴 쓰기 위해서 내 일에 몰두했다. 그 덕분에 2달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빨리 쓴 초고였다. 덕분에 그 후로도 수 개월간의 수정을 거쳐야만 했다. 결국 10여 개월 지나 다음 해에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이 <비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라>는 책이었다. 30대 중반까지 비전이 없던 내가 비전을 세움으로써 바뀐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전이라는 주제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다뤘다. 참고로 이 책은 내용이 수정보완되어 올해 10월 새로운 도서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다. 


초고를 쓰는 동안정식으로 개인 사업자를 신고했다. 말이 사업이지 돈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직원은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사업장도 우리 집 주소로 냈다. 공병호 박사처럼 1인 기업가로서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강의 의뢰가 제법 들어왔다. 불과 2,3달 만에 직장 다닐 때 이상의 돈이 들어왔다. 게다가 2군데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석사 재학 중이었니 학사학위로 대학교수가 된 셈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비록 겸임교수였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대학도 겨우 졸업한 내가 명문대학 강단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스스로봐도 놀라운 일이었다.


서른아홉에 사표를 쓴다는 것이 나는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서른아홉의 사표는 내 인생의 훌륭한 반전이 되었다...


* 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서른 번의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가제)>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제 이야기 뿐 아니라 직업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애환도 담아볼까 하는데요. 원고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있으면 제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원고 제안 더불어 제가 가진 지식 노하우를 나누고자 ‘인재개발 전문가’ 양성교육을 개설했으니 많은 분들의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교육과정 보기


<내 인생의 에피소드 모음>
1.
동네 아이들과 함께한 아빠의 생일 파티
2. 내가 서른아홉에 사표를 쓴 이유
3. 첫 직장, 첫 해고의 뼈아픈 기억
4. 버려진 버스에서 살았던 내 어린시절의 추억
5. 희생 없이 아름다운 것을 얻을 수 없다!
6. 빚더미를 딛고 일어선 내 삶의 변화
7. 내 인생을 바꾼 단 한 줄의 문구
8. 아버지를 통해 바라본 아버지란 존재
9.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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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중 도서 1.비전 개정판: 도서 제목 제안 2.<서른 번의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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