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581 세탁소 아저씨曰, ‘빛나는 옷, 관리하기는 최악’ 부제1: 세탁소 사장님도 사입지 않는 옷 '견사' 부제2: 견사(실크, 명주, 비단) 옷 멋지게 빛나지만, 빗방울만 맞아도 옷이 변색돼 관리하기 어려워! 최근에 양복바지에 국물을 흘렸다. 칠칠 맞지 못하게 ㅠㅠ. 다행히 차에 여벌의 옷이 있어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세탁소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만하고 옷을 맡겼다. 그런데 아저씨가 옷을 보더니 난색을 표명한다. 자국을 빼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 안 되느냐고 하니 ‘견사’재질이라고 안 된다는 것이다. 견사는 빛나서 멋지게 보이긴 하지만 빛 방울만 맞아도 변색되는 것이 ‘견사’라는 것이다. (이 사진만 보고 카리스마 오줌 싼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진짜 아닙니다! 이거, 부정하고 나니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용 ㅠ.ㅠ ㅋㅋㅋ) 견사가.. 2009. 8. 9. 아빠들 없는 초등학교 학교 급식 현장 체험기! 부제1: 초등학교 급식시간 참석했더니, 아빠는 나 혼자 ㅠ.ㅠ 부제2: 조금만 밥 퍼달라고 아우성치는 초등학교 아이들, 격세지감. 와이프가 ‘준영이 학교 급식 당번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자기가 당번인데, 회사 일이 있어서 못 간다는 것이다. 당시 나도 방학인지라 시간이 있어서 흔쾌히 승낙했다. 안 그래도 아이의 학교에 몇 번 가보긴했지만 봉사는 한 번도 못해본 터였기에. 준영이반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스크림도 미리 사뒀다. 아이들 본다는 마음에 왠지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학교에 12시경에 도착했다. 복도를 보니 주부들이 배식을 위해 각 학급별로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준영이 반은 없었다. ‘아빠다. 아빠.’ ‘누구? 어, 준영이 아빠래’라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찌해.. 2009. 8. 6. 블로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부제: 글쓰기를 고통으로 알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글쓰기 특강! 블로그가 뉴미디어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수십 만 명의 블로거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맹렬하게 활동하는 블로거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거의 전 국민이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는 인터넷강국 한국으로 봐서는 의외로 낮은 수치다. 도대체 이유가 뭥미^^(뭘까)? 90년대 말 개인 홈페이지가 전 국민을 휩쓸었다가 사라졌던 이유는 기능 탓이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유지, 보수, 관리 기능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적으로 보완이 되어서 블로그 사용이 쉬워졌다. 몇 가지 기능만 알고 있으면 거의 워드 프로세스 정도 수준으로 누구나 사용할 수준이 되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개인 홈페이지와 비교할 수 없는.. 2009. 8. 5. 볼품없는 강릉휴게소에 실망, 강원도 관광 연계 필요! 부제: 고속도로 휴게소, 지역 관광의 전초지 역할로 새단장해야...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보면 피할 수 없는 장소가 휴게소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휴게소 환경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다. 그런데도 여전히 엉망인 곳이 많다. 업무차 나가는 출장인 경우도 그렇지만 모처럼 즐기는 휴가철에는 더더욱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역할도 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은 휴게소가자는 말에 먼 길을 따라나설 정도로 휴게소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서나 성인들의 휴식을 위해서 또한 휴게소와 인근 지역의 연계를 위해서도 휴게소는 더욱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강원도로 강의가던 차에 강릉휴게소를 처음으로 들렀다. 이전 휴게소만 많이 들렀지만 강릉.. 2009. 8. 4. 밥값만주면 열심히 일하겠다했더니, 정말 밥값만주는 회사, 대략난감-_- 정말 좋아했던 일. 내가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일. 그러나 보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졸업 후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한 여학생이 선배회사에 취직한 후에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갈등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을 보내왔습니다. 이라는 글을 읽고 댓글로 고민을 다셨습니다. 저는 지금 셋째항목에 해당하는 일을 더구나 무보수로 일한지 6개월 째입니다. 청년실업난 때문도 이유긴 이유겠지요. 무보수로 일하는 건 정~말 힘드네요. 고민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속에서 과연 옳은 길인지...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건지... 돈이 참 무서운게,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게 만드네요. 흔들리는 의지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잡혀질지 우울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상담을 요청하신 분에게 공개 허락을 받았습니다. 상담메일을.. 2009. 8. 3. 백반증 형에게, "그동안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해!" 부제: 백반증 걸린 형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했던 이유! 나는 이야기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입 밖으로 내보질 못했다. 백반증으로 인해 형이 외부로의 노출을 싫어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하기 곤란한 면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형이 친구와 친지들마저 20여년 넘게 등지고 살았을까. 사실 와이프하고도 형 때문에 싸운 적이 있었다. 형이 필리핀에 있다 보니 가끔씩 생필품을 우편발송 해주곤 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해외로 우편을 보내기는 어려운 일이라 주로 내가 했다. 그러다보니 발송한 물품을 사기 위해 어른들과 같이 시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부모님과, 형님내외와 우리 가족 모두 함께 갔던 동해안에서의 즐거운 한 때. 사진 잘 찍으려고 하지 않는 형을 억지로 .. 2009. 7. 31. 아들의 질병 때문에 종교까지 개종한 어머니 부제: 독실한 불교도인 어머니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연.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종교의 사랑과도 일치. 나는 형님이 백반증으로 고생해온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몇 가지 사실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 형의 백반증이 고3 무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중2 때였다고 한다. 당시에 눈으로 표시도 안 나는데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지라 너무 어려서 뭘 몰라도 한참 모르던 철부지여서 흰 점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시계를 차던 형 손목에 실처럼 조그만 흰 자국이 나타났다. 형은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외관상으로 봐서 큰 문제는 없어 보여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형이 말을 안 들어서 생긴 흰 줄이라고 놀렸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건만 어머니는 그 때 아들에게 던진 그 농담.. 2009. 7. 30. 백반증 형과 결혼한 외국인 형수, 형 만큼이나 기구한 운명 부제: 백반증 형과 결혼한 형수, 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 형수는 집안 식구들의 권유로 결혼중개소에 들렀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국 남자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어딘가 우수에 빠진 눈빛이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어리고 훨씬 키 크고, 예쁜 여자들이 많았다. 당연히 같이 갔던 예쁘고 늘씬한 여동생이 선택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은 형수를 선택했다. 나중에 형수가 ‘좋은 여자들이 많았는데, 도대체 왜 나 같은 사람을 선택했냐?’고 물었다. 형은 ‘그냥 좋았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대답을 했다. 형수는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한 번도 어머니부터 포옹조차도 못 받아봤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 결혼한다고 하니 그제야 식구들이 처음으로 안아줬다고 하는 것이다. 형은 가족들이 너무 .. 2009. 7. 29. 병든 자식에게 평생토록 죄의식까지 느끼며 살아온 부모님 형님은 정관복원술 후 한 달가량 쉬었다가 필리핀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은 풀리지 않았다. 사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리핀 사람들 밑에서 몇 푼 받지도 않는 돈을 받고 일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대개 막노동의 일인데, 해봐야, '너 같은 한국인이 왜 이런 일 하느냐?', '너 때문에 우리 일자리 없어진다.'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형과 같은 한국인에게 주어질 만한 필리핀 주재 한국 회사도 없었다. 형이 그동안 해놓은 사무직쪽의 경력이나 능력도 없기에 좋은 회사에는 취직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성실하게 일하는 것 뿐. 형은 자신을 채용해주겠다고 말한 한 한국인 사업가의 말만 믿고 거의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내가 봐도 답답할 정도.. 2009. 7. 28. 백반증형, "태어날 아이에게 유전될까" 걱정스러 정관수술했으나... 부제: 아이가 백반증에 걸릴까 우려해 정관수술했던 형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복원수술 고민... 형님은 자신의 ‘백반증’이라는 처지 탓에 결혼 자체를 포기했다. 하지만 비록 늦게나마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집안 식구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결혼식이 진행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작은 공장에 함께 취업했다. 공장에 딸린 방도 있어서, 그곳에서 근무도 하고, 야간 경비 업무도 할 겸해서 두 사람이 함께 지냈다. 덕분에 돈도 착실하게 모을 수 있었다. 제법 안정된 생활이 2년가량 지속되었다. 자동차 부품회사였다. 자동차가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이라 생산이 못따라갈 정도였다. 주문량이 많이 늘자 공장 확장 작업이 필요했다. 형은 야간 근무를 할 경우.. 2009. 7. 27. 내 아들 준영이의 꿈은 무엇일까? 물어보니... 부제: 어린시절의 꿈은 무엇일까? 아들에게 물어봤다! 어린 시절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꿈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들 준영이에게 꿈을 물어봤습니다. 준영이의 꿈은 경찰관이다. 그냥 좋단다. 약한 사람을 돕고, 착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말해 아빠 입장으로는 경찰관은 싫다. 경찰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어떤 꿈이든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좋으니깐.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일까.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라고 제비 뽑듯이 꿈을 선택하려는 아들 그런 녀석의 꿈이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배우라 될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며칠 후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어느 것을 할까요, 이거 저거’하며 손가락을 오.. 2009. 7. 26. 일개 국민 입장에서 미디어법 통과,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볼까요? 부제: 미디어법 통과,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데도 관계있는 삶의 중요한 사건이다!!! 지난 22일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준영이가 ‘아빠, 저 사람들 왜 싸워’라고 하는데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더군요-_-;;; 잘못된 것 같지만, 아이에게 딱히 뭐라고 짧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또 한편으로 제가 따진다고 올바르게 시정될 일도 아니고,,, 그냥 안타까워만 하며 넘어갔습니다. 블로그에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모른 채하기가 참 민망하더군요. 솔직히 뭐, 딱히 아는 것도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제 개인 신상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2009. 7. 24. 이전 1 ··· 252 253 254 255 256 257 258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