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561 병든 자식에게 평생토록 죄의식까지 느끼며 살아온 부모님 형님은 정관복원술 후 한 달가량 쉬었다가 필리핀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은 풀리지 않았다. 사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리핀 사람들 밑에서 몇 푼 받지도 않는 돈을 받고 일하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대개 막노동의 일인데, 해봐야, '너 같은 한국인이 왜 이런 일 하느냐?', '너 때문에 우리 일자리 없어진다.'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형과 같은 한국인에게 주어질 만한 필리핀 주재 한국 회사도 없었다. 형이 그동안 해놓은 사무직쪽의 경력이나 능력도 없기에 좋은 회사에는 취직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성실하게 일하는 것 뿐. 형은 자신을 채용해주겠다고 말한 한 한국인 사업가의 말만 믿고 거의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내가 봐도 답답할 정도.. 2009. 7. 28. 백반증형, "태어날 아이에게 유전될까" 걱정스러 정관수술했으나... 부제: 아이가 백반증에 걸릴까 우려해 정관수술했던 형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복원수술 고민... 형님은 자신의 ‘백반증’이라는 처지 탓에 결혼 자체를 포기했다. 하지만 비록 늦게나마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집안 식구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결혼식이 진행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작은 공장에 함께 취업했다. 공장에 딸린 방도 있어서, 그곳에서 근무도 하고, 야간 경비 업무도 할 겸해서 두 사람이 함께 지냈다. 덕분에 돈도 착실하게 모을 수 있었다. 제법 안정된 생활이 2년가량 지속되었다. 자동차 부품회사였다. 자동차가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이라 생산이 못따라갈 정도였다. 주문량이 많이 늘자 공장 확장 작업이 필요했다. 형은 야간 근무를 할 경우.. 2009. 7. 27. 내 아들 준영이의 꿈은 무엇일까? 물어보니... 부제: 어린시절의 꿈은 무엇일까? 아들에게 물어봤다! 어린 시절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꿈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들 준영이에게 꿈을 물어봤습니다. 준영이의 꿈은 경찰관이다. 그냥 좋단다. 약한 사람을 돕고, 착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말해 아빠 입장으로는 경찰관은 싫다. 경찰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어떤 꿈이든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좋으니깐.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일까.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라고 제비 뽑듯이 꿈을 선택하려는 아들 그런 녀석의 꿈이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배우라 될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며칠 후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어느 것을 할까요, 이거 저거’하며 손가락을 오.. 2009. 7. 26. 일개 국민 입장에서 미디어법 통과,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볼까요? 부제: 미디어법 통과,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데도 관계있는 삶의 중요한 사건이다!!! 지난 22일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준영이가 ‘아빠, 저 사람들 왜 싸워’라고 하는데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더군요-_-;;; 잘못된 것 같지만, 아이에게 딱히 뭐라고 짧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또 한편으로 제가 따진다고 올바르게 시정될 일도 아니고,,, 그냥 안타까워만 하며 넘어갔습니다. 블로그에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모른 채하기가 참 민망하더군요. 솔직히 뭐, 딱히 아는 것도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제 개인 신상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2009. 7. 24.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려했으나, <길은 여기에> 부제: 제2차 대전 패배 후 선생으로서의 가르침을 후회했던 한 일본 지식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라는 책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자전적 소설이다.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한 여선생이 있었다. 그녀는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서 재직하고 있었다. 패전 후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학교를 나온다. 자신이 옳다고 가르쳤던 일들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중에서, 일본 영화 의 한 장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 그녀는 가치관에 대한 혼란을 겪으며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린다. 사랑에 대한 소중함도 모르고 여러 남자들을 생각 없이 만난다. 그러던 중 결핵에 걸려 10년 이상 병원.. 2009. 7. 23. 병으로 결혼 포기했던 형,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생각하게 되고... 형님 역시 다른 백반증 환자들처럼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로 취직했다. 밤에는 백반증이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비록 밤일이었지만 형의 보수는 꽤 짭짤했다. 월급보다는 팁이 더 많았다. 새벽에 돈을 한 뭉텅이씩 가져오곤 했다. 대학생인 나에게 용돈도 조금씩 주곤 했다. 가끔 만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꺼내 쓰기도 했다. 미안해 말은 못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 갚았다. 웨이터 일이란 급여보다 팁이 많은 일이다. 그러니 손님들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술 취한 취객을 다룬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손님들과 다투는 일도 많았다. 2년가량 일하다 때려 치웠다가 일했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그만 두었다. 사람들.. 2009. 7. 22. '네 발 자전거 아저씨'라 놀림받던 아이의 작은 성취! 부제: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 탄 아들에게서 배운 2가지 삶의 교훈! 여러분은 자전거 언제 처음으로 배우셨나요? 저는 군대에서 처음으로 배웠답니다. 엄청늦었죠^^ㅎ 형님은 초등학교 때 배웠죠. 그런데 형님이 자전거를 배우던 날, 브레이크를 못 밟아 지나가던 아주머니를 부딪쳐 욕 들어 먹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못 배웠습니다. 너무 지나친 핑계죠^^ㅋ 사실 제가 어릴 때는 어린이용 자전거 하나 사려고 해도 부자 아이들이나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은 어른용 자전거를 바로 타야만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죠. 운동감각이 없던 저로서는 어른들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 중과부적이라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다 큰 성인이 되어 군대에서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5,.. 2009. 7. 21. 농약 먹고 같이 죽자는 헤어진 남친의 스토킹, 어떡하죠? 블로그를 하는데다, 직업특성상 이래저래 상담요청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죠. 같이 울고 웃는. 그런데 한 번은 아주 심각한 상태의 스토커에게 시달리고 있는 가족으로부터 조언 요청이 왔습니다. 언니의 헤어진 남자친구가 회사까지 그만두고 언니만 따라 다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농약을 먹고 같이 죽자, 신고하면 네 가족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까지 협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 다음 쇼핑 '농약'으로 검색해서 나온 '농약, 쥐약, 살충제') 제가 답변 해드린 내용도 하단에 기재했습니다. 모두 읽어보시고, 조언을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나 법적이나 정신적으로 조언을 주실 전문가들도 동참하여서 적극적인 조언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2009. 7. 20. 72kg 분량의 피를 헌혈한, 20대 청년 허욱씨와 인터뷰 부제: 10년 동안 1백번 넘게 헌혈 해온 멋진 청년 허욱,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헌혈을 몇 번이나 하셨나요? 저는 태어나서 딱 두 번 해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거의 반강제로 했던 것. 그리고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한 것이 고작입니다. 군대 고참일 때 빈둥거리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죠. 그런데 당시 몸무게가 많이 빠져 62kg였습니다. 그런데 전투화와 전투복을 그대로 입은 채로 몸무게를 재더군요. 정상 체중이 아니라 전투화까지 모두 입은 상태의 72kg몸무게로 측정하여 피를 최대치로 뽑더군요. 기분도 안 좋고 몸도 너무 안 좋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헌혈 후에 심한 몸살감기를 앓게 되었고, 그 때부터 알레르기 비염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다... 2009. 7. 17. 여행가의 숙명을 선택한 함길수의 세계탐험 도전기 직장인 함길수. 그는 회사 내부의 부조리한 사안과 개선, 개혁에 대한 당당한 목소리를 높이며 개혁과 개선을 주창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기업의 안일함과 수동적인 대처, 그리고 끊임없는 눈치 싸움에 진력이 나고 말았다. 문제들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문제들을 맞이하는 자세뿐이었다. 교훈을 얻고 회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족하며 안주할 것인가? 더 이상 역동적이지 못한 이 조직 속에서 나를 방치했다가는 자신의 발전은 고사하고 회사의 경쟁력에도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방황이 계속되었다. 세계를 넘나들며 국제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던 야심찬 포부는 조직의 매너리즘 속에 좌절되어 갔다. 그렇게 방황하던 어느 날,.. 2009. 7. 16. 내 인생 처음으로 만난 '전문 탐험가', 놀랍고 신기 부제: 직장인에서 탐험가로 도전한 '함길수 대장의 인생여정' 해외여행 위해 중국집 배달원도 마다하지 않던 젊은 날의 함길수! 직장인의 가장 큰 동경 대상은 누구일까? 직장 상사일까? 아니면 최고 경영자일까? 물론 CEO를 꿈꾸며 도전 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그렇게 강렬하게 각자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직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한 번씩 ‘완벽한 자유인’를 꿈꾸지 않을까? 미지의 땅으로의 모험을! 심지어 다만 며칠이라도 마음 푹 놓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자유.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의 자유.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은 직장인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다. 탐험가 함.. 2009. 7. 15.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것이 더 좋겠다고 호소하던 형님 부제; 백반증 앓는 형, "차라리 암에 걸리는게..." 남들에게 공개하기 꺼리는 가족들의 비밀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남한테 말하기 조금 민망한 이야기가 있다. 형님의 ‘백반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뭐지?’라고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백반증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별 일 아닌 것 가지고 뭐 그래'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직접 겪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렇게도 여겨지지 않는 백반증.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주는 질병. 이 병이 형님의 인생을 엉망으로 망쳐버렸다. 내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식으로 몇 개의 글을 써볼까 한다. 형님이 스무 살 경에 흰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백반증의 기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2009. 7. 13. 이전 1 ··· 251 252 253 254 255 256 257 ··· 2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