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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실명 공포의 희귀병, <스타가르트> 앓는 학생의 기구한 운명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10. 19.
 

만일 나 자신이 점점 시력을 잃어가 결국은 실명될 희귀병을 앓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실명할까봐 날마다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렵다는 한 학생과 나눈 기구한 사연을 공개한다.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주로 학생들과 식사한다.

식사원칙은 1:1이다. 여럿이 뭉쳐서 식사하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같이 하자고 해도 왠만하면 안 한다. 상담 순번이 돌아온 한 여대생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식당 가면 안 될까 하고 남학생 한 명이 기웃거린다.

식사를 같이 못해서 아쉬운지 나중에는 커피 캔까지 사주고 간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너무 고맙다. 사실 용돈도 몇 푼 못 받는 학생들의 형편에 이렇게 캔 하나 선물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학생은 너무나 밝고 유쾌해 보이는 K군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여자들에게 인기도 좋아 보이고, 잘 생긴 친구다. 키188에 80정도의 체형이니 신체조건도 좋다. 멋지게 생겼지만 또 한편으로 순박해 보이는 모습도 보기 좋다.


(‘스타가르트’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해맑은 청년 K군, 기사를 올리기 위해 사진 찍는다는 말에 활짝 미소를 머금는다. 그 모습에서 밝은 영혼이 느껴진다.)

그 다음 주에 K군의 상담 차례였다. 가볍게 밥이나 먹으면서 고민을 들어줘야지 마음먹었다. 내 강의가 너무 좋다며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듯 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K군의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내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는 말 때문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었기에 더욱 놀랐다. 2만 명에 한 명 꼴로 걸린다는 ‘스타가르트’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진단비용도 비싸기 때문에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수치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1,2천 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2만 5천 명이 있어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K군은 어릴 때는 시력이 1.5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차츰 시력을 잃어서 이젠 정상적인 시력 측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무런 고통 없이 갑작스럽게 증세가 나타나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희귀병이라 환자가 안고 있는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현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지금은 어머니와 누나와 같이 힘들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주변 친구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순간 동정심과 연민의 눈빛을 보내오는데 그것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거들려고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고3 시험에는 자기 혼자 확대 복사한 시험지를 가지고 수능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한 정보지 신문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로 다뤘는데 기사를 보고 무슨 동물 취급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무척 황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사에 대한 허락을 했지만 내가 자신의 기사를 쓰는 것에 작은 두려움도 있는 것도 같았다.


K군의 전공은 점자문헌정보학과다. 이 학과를 졸업하면 도서관 사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눈 때문에 책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사서가 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이 안마사인데, 죽어도 안마사는 하기 싫다고 한다. 친척 중에 한 분도 시각장애인이 있는데 안마사 하기를 그토록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안마사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도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렵다고 한다.


꿈이 뭐냐고 물었다. 원래 어린 시절의 꿈은 ‘법관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시력을 잃으면서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글씨 크기가 8포인트 정도 밖에 안 되는 두꺼운 법조문의 책을 보고 바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기 눈에는 글자로도 비취지질 않았다. 확대경으로도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시각장애인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다. 학생도 그 분의 기사를 읽어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각장애인은 원래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생이었다고 한다. 대학 3학년까지 정상시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법률적 지식과 학습경험을 사전에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지 일반 시각장애인들로서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법관이 된 그 시각장애인보다 국립박물관에 들어간 한 장애인이 더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이 분은 책을 볼 수가 없어서 아예 복사기를 하나 사서 모든 책을 확대복사해서 공부했다는 것이다.


치료를 해보려고 노력해봤느냐는 내 말에 어머니와 함께 중학교 때부터 노력했다고 말한다. 병원이라는 병원은 모두 쫓아다녔으나 거의 대다수의 의사들은 처음 보는 질병이라고만 하고 처방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질병의 정확한 원인도 처방도 없다. 어쩌면 깨끗하게 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이 시력을 잃을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혹시나 어머니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할까봐. 그래서 일어나면 어머니부터 바라본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너무 두렵다고 한다. 꿈속에서와 같이 영원히 어둠에 갇힐까봐...


인간의 의학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나 인간의 의술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 친구에게도 좋은 치료법이 생겨 이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도와줄 뛰어난 안과의사가 있다면 부디 연락주시길 바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low vision care' 치료법이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떻게 치료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의 기간과 비용이 드는 것인지, 어디서 치료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잘 아시는 분이 알려주신다면 좋으리라.


지금 이 학생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부족한 가정 형편 덕분에 누나도 원하던 미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장에 나가 일하고 있다. K군은 용돈이라도 벌어보려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꿈을 가지려고 해도 앞으로의 상황이 너무 불안해 앞으로 어떤 꿈을 가져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일단은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장학금을 후원해줄 분이 나타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삶의 빛과 희망으로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해본다.


용기와 위로의 말을 남겨주는 것만으로도 작은 힘이 되리라!!!

                                                (DAUM메인 베스트기사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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