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00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인 이제 2학년 되는 학생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술계열 학과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실기시험도 치고 수능도 매우 잘 나와서 당당히 내로라하는, 원하는 학교에 들어왔지만 저는 요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 1학년, 저는 대학교에 적응하는 데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방을 떠나 혼자 사는 서울생활도 외로웠고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인정받는 수업도 매우 힘들었어요. 정신노동 이라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생각이 나면 좋았지만 반대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정말 답답했지요. 또 매우 내성적이라 크리틱을 하는 것도 참 벅찼습니다...말도 더듬고 횡설수설.. 울고 싶었지요.
여러 가지로 저는 지쳐갔고 그 결과 성적은 아주 안 좋았어요. 1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2학기에는 잘 하자 마음먹었지만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해버렸습니다. 저는 방학이면 방에 틀어박혔고 그렇게 한 것 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제 자존감은 땅을 쳤어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고..
주위 사람들도 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1년 만에 완벽히 정신이 바뀌었달까요. 사실 고등학생 때만해도 전 내성적이긴 해도 자신감도 있고 또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정말 다시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예전부터 제 마음에 걸려오던 것은 이 과를 나와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고 그것은 제가 1년간 방황하게 만든데 기인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어요.
학점은 엉망이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제가 그림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제는 과연 내가 이 과에 맞는 것인지 의심도 가기 시작했어요.
고작 1년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막연히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들어왔는데 취업과 연관해 생각하니 저는 장래희망도 없었고요. 작가라는 직업.. 고등학교 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성적인 저로서는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저는 그때 철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희 집 형편..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저는 지금 비싼 미술대학 등록금과 재료비, 하숙비로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고등학교 때의 미술학원비도 정말 죄송스러웠는데요.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가라는 직업도 저에게는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실 성공을 할지 안할지도 미지수이고..
저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유학, 대학원.. 막연히 꿈꿔왔던 것이었으나 돈도 넉넉지 않고 쉬운 결정도 아니에요. 간다고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구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습니다. 한심하게 집에서 놀고먹는 모습은 지난 1년이면 되었어요.
그러던 중 2학년에 신청해서 3학년에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는 교직이수라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고등학생 때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미술교사라는 직업은 제 전공도 살릴 수 있구요. 참 즐거울 것도 같고요. 전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아주 좋거든요^^
저는 이론적인 수업에 강하기도 하구요. 제 학점이 많이 구멍나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열심히 재수강과 계절 학기를 들으며 교직이수를 하고 싶은데 사실 좀 힘든 얘기 이긴 합니다. 성적이 많이 안 좋아서요.
하지만 그냥 신청은 해 볼 생각이에요. 학점도 메꾸고 교직과목도 조금 들으면서요.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교육대학원이라는 곳을 알아봤는데요. 교육대학원 생활 2년 반 정도는 선생님이 된다면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임용고시죠.
임용고시는 정말 어려운 시험이기도 하고 사범대 나온 학생들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해도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정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리는 건가요. 나이 먹어서 부모님께 폐나 끼치고. 그때 가서 취업으로 전향하기는 정말 힘들 것입니다. 학력도 일반대학원이 아닌 교육대학원인데다가 남들이 하는 스펙 쌓기는 하나도 안 된 상태겠죠.
하지만 전 취업보다는 선생님이 훨씬 적성에 맞을 거 같긴 해요. 어른들보단 애들이랑 대화하는 게 더 재밌기도 하고..
바로 지금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할 때인 것 같은데.. 정말 고민됩니다. 또 후회가 됩니다. 저는 왜 고등학생 때부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까요.
이 길이 아니면 이 과를 나와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바쁘실 텐데 글이 너무 길어서 죄송해요; 그치만 저는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는 기분이에요.
또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많이 불안하고 제 미래에 대해 걱정스럽구요. 참 제 자신에 대해 자신감도 정말 상실했구요. 제가 너무 조급한 걸까요. ㅜㅜ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부럽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림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다보니 막상 예술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저 같이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습니다. 꼭 화가 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와 다른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도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화가 안 된다고요? 아니요. 저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제주도에 강의차 갔다가 한 펜션에서 화가로 지내는 모녀를 만난 적이 있는데요.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지금 다니시는 대학교 들어갈 정도의 그림 수준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보통 사람들보다는 뛰어난 재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재능을 썩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교직을 이수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임용고시를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립학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립학교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무원이나 임용고시에 무작정 매달리는 것에는 반대하는 편인데요. 님의 경우에는 성격적으로나 재능적으로나 미술선생님으로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수업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최대한 학교 수업은 기본에 충실하도록 유지하도록 하시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형편이 좋지 못해 여러모로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드실 것 같은데요. 경제적인 보탬을 주기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가르치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 교습이나 학원 강사 일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경험은 교사로서의 간접 체험도 되니까 적성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본인의 미적 감각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있으므로 그러한 기본적인 디지털 도구를 다루는 방법도 틈틈이 익혀두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나 임용고시도 안 되고 미술가로서의 길을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나가면 어떨까요. 프란츠 카프카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면서 퇴근 후 틈틈이 습작을 해서 세계적 작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또한 반드시 정상적인 루트의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벽화라든지, 디자인이라든지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방법도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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