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철상님.
저는 경기도 모 지역에 사는 한 예비 고3 남학생 입니다. 진로 관련 상담을 하고자 이렇게 보내 봅니다. 사실 이것을 편지로 썼다면 액체가 마른 자국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지금 울고 있거든요.
하루에 많은 상담 메시지가 올 것으로 압니다. 더군다나 프로필을 보니 여러 가지가 있던데 맨 앞에 '현' 자가 많이 있더군요. 많이 바쁘시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그래서 저의 답변도 늦어질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늦더라도 꼭 정철상님의 답변을 받고 싶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쯤 제가 아는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거예요. 이제 고3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도무지 공부를 못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이과라서 내용이 너무 어렵습니다. 1993년생부터 이과는 '수학의 달인'이 아닌 이상 '거지'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모두 6권의 수학 교과서를 공부하게 되었거든요. 그렇다고 과학은 되나? 그것도 아닙니다. 3학년 과정을 미리 봤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갑니다. 수학, 과학이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세상이 너무 맛이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공부할 마음이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6:00에 눈비비고 일어나 11:00까지 학교에 앉아 있어야 할까요? 유대인들은 학교만 졸업했다 하면 노벨상인데 우리들은 이렇게 죽도록 공부해서 졸업하면 노동자가 될까요? 아무리 죽도록 공부해도 수학은 50점인데 다른 학생은 항상 수학 90점 이상입니다. 그런 제가 왜 공부할까요? 왜 핀란드 학생들은 우리보다 절반만 공부해도 성적은 우리가 더 나쁠까요? 왜 지구상에서 우리만 유일하게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하지요? 왜 선생님이 매로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욕을 해도 되는 법률이 있나요? 왜 부모님은 제 학번과 나이는 모르고 과목별 등급은 아는 거죠?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학교에서는 성적 우수자들은 따로 공부하는 곳도 마련해 줍니다. 상은 물론이고요. 그리고 선생님들도 성적 우수자들만 아십니다. 저 같은 보통 학생, 쓰레기 학생은 반을 가르치는 데도 이름도 모르십니다. 그들이 부도덕적인 행동(저를 성적 가지고 저희들 끼리 짜고 따돌렸습니다.)을 해도 선생님들은 '걔? 공부 잘하는 얜데? 그럴 리가 없어!' 라고 하십니다. 수업 중에도 '걔가 우리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서울대 갈 놈이야 하하하.', '걔가 전교 일등이잖어.' 라고 하십니다. 선생님은 모르시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저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아마 다른 쓰레기 학생들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겉으로는 박수를 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뭐하러 살고 있나...' 그런 생각도 할 겁니다.
이렇게 만든 사회가 밉습니다. 교육계 사람들이 밉습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로 딱 세워놓고 그것도 '현재의 능력'을 가지고 말입니다. '1등 아래는 모두 꺼져!' 식인 교육이 싫습니다. 억지로 오후 11:00까지 공부하는 교육이 싫습니다. (미국의 '믿거나 말거나' 라는 방송 프로그램 에서는 한국의 '야자'가 나왔다더군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꼴지도 행복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선생님 밑에 모두가 평등한 그런 나라, 학교 어디 없나요? 라는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공부는 안 되고, 부모님은 저한테 그것 때문에 호통을 치고, 선생님은 그런 저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이런 세상이 너무나도 싫습니다.
명문대는 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수도권 대학 안에만 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계속, 심지어 자는데 깨워서 호통을 치시더군요. '다른 얘들은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잠 자면 안 된다.'라면서요.
그래서 회한이 듭니다. 어차피 성적 우수자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차라리 사라져 주는 게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 못하는 "놈"들은 모두 깡패, 조폭 된다고 부모님이 말씀 하셨거든요.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자살까지 시도했다는군요. 그런데 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요. 그런 용기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저 길바닥에서 구걸하거나 깡패가 되는 게 제 미래겠지요. 아니면 하늘나라에 있거나요.
그렇다고 저는 노는 것도 아닙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게임이나 하고... 그러지도 않아요. 그것도 하기가 싫어요. 그저 집안에 쳐 박혀서 혼자 누워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눈물을 흘리지요. 그리고 상상을 하지요. 모든 학생이 행복하게 다니는 학교. 공부는 못해도 최소한 이름은 아는 선생님. 등급, 등수가 없는 통지표. 뜨는 해 또는 지는 달을 보지 않는 등교길, 지는 해 또는 뜨는 달을 보지 않는 하교길. 출신 대학을 쓰는 칸이 없는 자기 소개서. 등등.. 상상을 합니다.
짧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저는 또 따돌림을 당하겠지요. '난 올 일등급인데, 넌 하나도 없지~!' 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넌 뭐니?' 라고 하겠지요. 11:00에 끝나서 집에 오면 '공부해라.'를 부모님은 연발하시겠죠. 그러면 전 또 혼자서 밤에 울겠지요. 그리고 졸업 후에 저는 'xx파', 'oo파' 조폭에 들어가서 사회의 쓰레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을 잘 못 때리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하거든요. 다른 아이들은 상대방을 잘 때리고 욕도 잘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얘들보다 더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철상님께 묻고 싶은 것은요.
저는 지금 미래를 위해 뭘 해야 할까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관련이 없을지 모르겠는데..
저... 진짜 '쓰레기' 일까요? 블로그에 A4용지 7장 글의 답장에서 하신 것처럼 '글을 왜 못쓰나.' '가지런히 해라.' 라고 하시겠지요? 그리고 전 그저 쓰레기겠지요? 위에서 저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도 정철상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심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변:
저는 단순하게 누군가를 위로하는 형식적인 말은 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쓰레기라뇨?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오버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90% 인간은 쓰레기가 될 겁니다. 그 중에 저도 그 쓰레기에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요.
공부를 못하면 거지나 조폭이 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잘못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단지 공부를 잘 하고 잘 못하고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피하지 않고 얼마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는가, 노력하지 않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에는 지독하게 공부하기 싫고, 성적도 나오지 않고, 주변에 휘둘리기만 하는 이 상황이 지독하게 싫을 겁니다. 하지만 견뎌야 합니다. 내 삶의 가치를 찾아내고 빛을 발하기 전까지는 일단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단지 주변 핑계만 늘어놓으며 그래서 나는 그런 교육적 환경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학교성적은 늘 중위권이었습니다. 수학과 과학, 물리 등의 성적은 항상 바닥권이었고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했지만 그래서 좋은 대학도 못 들어가고, 좋은 기업도 못 들어갔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삼십대 중반부터 상황이 하나씩 하나씩 바뀌며 좀 더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좀 더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어 봅니다. 학교 공부와 더불어 틈틈이 책을 읽길 권합니다. <아카바의 선물>,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자기암시: 인생을 변화시키는 긍정적 상상>, <나폴레온 힐의 성공한 노트 1,2>, <뇌내 혁명> 등의 책을 추천하고 싶군요.
일단은 잘 하든 못하든 현재 주어진 공부에 충실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배움도 구해보세요. 선생님 비평 많이 하시는데요. 궁금한 것들은 선생님께도 물어보세요. 솔직히 말씀드려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라 그랬죠. 사실 장난꾸러기에 둔재라 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겠죠. 하지만 설령 그렇게 선생님이 대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너무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만 성실하게 풀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더불어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을 탐색하기 위해서 자신의 흥미, 적성, 가치관, 직업관, 비전, 목표, 삶의 의미를 하나씩 찾아나가야 합니다.
학업성적이 모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을 부지런히 배워나가려는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위 핑계되지 말고 자신이 해야 될 인생의 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노력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일단 잘못된 제도라도 받아들이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잘못된 교육제도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힘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ㅋ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dream^^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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