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하려던 꿈은 많았는데,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소방관, 만화가, 소설가, 역사학자, 심리학자.. 결국은 심리학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00대 심리학과 최종후보 2번으로 떨어졌네요. 제 키가 183이라 모델 제의도 종종 받아서 모델이나 해볼까 하는 헐렁한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모델도 기초연기 수업을 듣기 때문에 연기를 하게 됐고, 오히려 이게 저한테 맞는 길인 것 같아서 아예 연기로 전공을 바꾸고 지금까지 달려왔네요. 군대 가기 전까지는 마냥 연기가 재미있고, 내가 최고인 것 같은 생각만 들었는데 전역한 후로는 계속해서 슬럼프입니다.
10개월째 계속 연기가 잘 안 되네요. 올해 4월인가 5월에도 연기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 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공연 연습을 하는데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연기가 전 이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알면서 못 하면 계속 노력하면 될 텐데, 아예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니까 너무 답답하고 제 자신이 한심하고 그러네요.
술을 잘 못 마시기도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한 달에 한 번도 안 마시는 제가, 오늘은 너무 답답해서 술을 한 잔 했습니다. 그리고 또 연기가 제 길이 맞는지 회의가 드네요. 지금껏 연기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왔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연기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막막하기만 합니다. 평범하게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서 지금까지 해온 거라곤 오직 연기뿐이고, 연기를 제외하면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제 적성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원래는 지금 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 연영과에 편입-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사 학위를 따는 게 목표였습니다. 제가 연기로 성공할 수 없어도, 연기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면 취업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나마도 휴.. 학교공부를 하면서 연극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극 연습을 시작해서 집에 오면 거의 12시고, 씻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자마자 학교로 달려가는 생활에 지쳐갑니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왜 이렇게 지치는지 모르겠네요. 연기는 4-5년을 계속하다가 쉰다면 모르겠지만 1-2년 하다가 중간에 쉬게 되면 허사라고 다들 말씀하셔서 휴학하면서 잠시 쉬지도 못 하겠고, 계속 다니자니 가뜩이나 슬럼프로 힘든데 곱절로 지치고...
어쩌면 상담이 아니라 푸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연기를 계속하면서 석사 학위를 따는 게 좋을지, 다른 길을 찾는 게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연기를 그만두자니 정말 허허벌판에 발가벗겨져 남겨진 느낌이고, 계속 연기하자니 내 앞을 커다란 벽이 막아서고 있는데 뒤에서는 절 물려고 달려드는 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정말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갈까 라는 생각까지 머리에 떠오르더라구요. 취업을 하자니 스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학력도 없고, 영어도 안 되고 하ㅋㅋㅋㅋ 한심하네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까지 긍정의 힘을 믿고 살아왔는데, 사회를 알면 알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 긍정적 마인드라는 게 남들이 말하는 '허황된 자신감' 이 아닌가하는 불안함이 생깁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똑같을 수 없겠지만, 좋아하는 건 있어도 잘 하는 게 없네요.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걸 살려서 취업이라도 하겠지만, 20대 중반인 아직도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있으니..
아 너무 답답해서 말도 안 되게 혼자서 주절주절 떠들었네요. 그냥 제 글을 읽고 조언 한 마디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라도 붙잡고 싶고, 누구한테라도 매달리고 싶네요. 우울한 글 읽으신 터라 기분이 좋으실리 없겠지만,
좋은 하루 되세요 :)
답변:
답변하는 지금 KTX열차로 이동 중에 답변을 드리는데요. TV 프로그램에 마술사 이은결 씨 이야기가 나오네요. 지금은 사랑 받는 마술사로 국민들에게 사랑도 받고 그의 탁월한 마술 재능을 인정받고 있죠. 그런데 마술을 배울 때는 제일 못했던 학생 중에 한 명이었다고 하는군요. 그에게는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 있는데요. 그 분으로부터 ‘재능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좌절감을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재능이 모자라니 남들보다 2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다고 하더군요.
비단 마술 분야 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성실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소 우둔할 정도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인내가 있어야겠죠.
그렇게 긍정적 메시지만 던지고 님의 마음에 불을 활활 지피는 것도 하나의 위안이 되겠죠. 그럴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한 순간의 불길처럼 일어나지는 않죠-_-;;; 그래서 인간 삶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작심한다고 해서 변화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재능이 전혀 없는데도 굳이 매달려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란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노력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재능 두 가지를 모두 다 말하는 겁니다.
이도저도 못하게 하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방송연예학과에 들어왔고, 또한 연기도 마음에 들어 하므로 일단은 현재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하다보면 비록 잘못되더라도 그 열정과 노력 덕분에 다른 일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안 된다고 그냥 주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다만 연기이외에 생각해본 것도 없고 별다른 재능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인데요. 연기 일에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직무로 확장해서 관련한 일들을 찾아볼 수도 있겠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조연출부터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겠죠. 그런 식으로 작가, 엔지니어, 리포터, PD, 기자, 리포터, 홍보 담당자, 마케터, 모델, 보디가드, 보안요원, 강사, 레크레이션 지도자, 한국어 강사, 연기 지도자 등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서 생각한다면 아주 많은 일들을 고려할 수 있답니다.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배우는 발음, 목소리, 말하기, 연기력 등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더불어 유머나 레크레이션 자격증, 스피치 트레이닝 등도 배워두면 좋겠죠. 더불어 책을 통해 지식을 넓혀야 하는데요. 한 달에 최소 4,5권에서 7,8권 이상은 봐줘야 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풍부한 연기력, 표현력을 만들어내면 좋은데요. 그렇지 못할 경우 최상의 방법이 책입니다. 부지런히 책을 봐두면 연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향후 다른 일을 하는데도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년에서 3년 정도 죽도록 매달려봅니다. 길게는 4,5년 정도 매달려보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혀 뜰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면 그 때는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한 것은 분명한데요. 말씀처럼 아무 것도 제대로 안 하면서 ‘무조건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마인드는 말씀처럼 ‘허황된 자신감’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시고 일단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보시길 권합니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그 때 빠져나와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습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다른 일도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멋진 연기자가 되셨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정말 멋지게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답니다. 훨씬 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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