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면접관이 구직자에게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자신도 모르게 계산대 통과한 물건이 있다'는 것을 집에서야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내와 마트에 갔을 때 일이다. 계산을 다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에 물건을 실으려는데 카트에 계산 안 한 물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아내는 자기도 몰랐다면서 카트 바닥에 놓여 있다가 그냥 통과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장 돌려주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큰소리는 쳤건만, 돌이켜보니 나도 이런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다. 사실을 늦게 알아서 돌려주러 가기 귀찮은 데다 ‘그 정도야 괜찮겠지’ 생각해서 날름 먹어버린 것이다.
(이미지출처: 사진은 해당기사와 무관함)
그로부터 몇 주 후 아내와 EBS에서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아이들의 도덕성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 하나하나가 적잖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게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 프로그램은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음에도 나와 아내는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도덕성에 대해,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그날 나는 아내에게 고백했다.
“사실 난 그렇게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야.”
그 말에 아내는 의외라고 말했다. 결혼생활 10여 년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내 남편은 누구보다 정직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아마 아내는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 그 자체를 높이 샀던 것일 게다. 아내는 “그럼 언제 도덕적이지 못했는데?”라고 물었다.
찔끔했다.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아니 많았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 행동들을 거의 기억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여기서 내 치부 일부를 공개하기로 한다.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문방구에 동전을 넣고 과자를 뽑아먹는 기계가 있었다. 거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과자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문방구 아주머니에게 따졌다.
어린 나 아주머니, 동전 넣었는데 과자가 안 나와요.
문방구 아줌마 안 나오긴 뭘 안 나와. 돈을 안 넣었으니깐 안 나오지.
어린 나 아니에요. 넣었어요.
문방구 아줌마 어린 녀석이 거짓말은. 기계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냐? 돈 넣으면 나오지.
어린 나 정말 넣었단 말예요. 동전 돌려주세요.
문방구 아줌마 안 돼. 내가 못 봤는데 어떻게 알아. 저리 꺼져.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어린 나 저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나는 화가 났다.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다짜고짜 거짓말쟁이로 몰아대는 아줌마가 너무 미웠다. 당시 기계에 넣은 돈은 5원에서 10원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집에 진열되어 있던 딱지 하나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러면서 이건 정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내 도덕성은 무너졌다. 정당하지 못한 상점이나 불친절한 상인들을 보면 과잉 반응을 보이며 공격적으로 행동했다. 심지어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커닝도 했다. 그런데도 성적은 별로였다. 부모님 몰래 책값도 빼돌리고 부모님 지갑에서 몇 천 원씩 빼서 쓰기도 했다. 형 지갑에서도 돈을 빼서 썼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그런 식으로 나쁜 행동을 반복한 적이 제법 있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었다. 어느새 그런 일도 없어졌고, 모두가 어린 시절의 까마득한 추억이 되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기업의 중간 관리자가 되면서 그때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관리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피곤한 업무 중에 하나가 바로 경비 정산이다. 매달 한 번씩 사용한 지출 내역과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나는 숫자에 워낙 젬병이었던지라 그 일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스스로의 정직성을 의심하는 속마음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영업 활동비를 종종 다른 명목으로 기재했다. 분명히 회사 일로 쓰긴 했지만 영수증 미비 등으로 청구하지 못하다 보니 가짜 영수증을 쓰거나 일부 영업 활동비 항목을 부풀려 조정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회사를 위한 개인적인 지출이 이보다 훨씬 많으니, 이 정도는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내 도덕성에 또 다시 상처를 입혔다. 매달 정산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졌던 것도 바로 그 양심의 거리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만일 내가 경영자가 돼서 더 큰 규모의 돈을 다루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만 원이었던 돈이 몇 천만 원으로 불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자각이 들자 그 뒤부터는 나도 모르게 최대한 정직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돈 가까이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덕성에 상처 입을 수 있는 통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예 내 발로 기업을 떠났다.
그 뒤로부터는 마음이 너무 편했다. 내 돈을 더 내면 냈지 덜 내는 경우도 없어졌다. 들어오는 돈은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들어오니 세금조차 포탈할 일이 없다. 또한 모든 비용은 내 자율로 사용하니 다른 용도나 출처로 기록할 필요도 없어졌다.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도덕성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니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화면을 보면서 순간 꽁꽁 숨겨뒀던 치부를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심지어 부끄러움 때문에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동시에 내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직후, 한 출판사로부터 ‘정직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주제로 책 출간을 의뢰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의뢰를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출판계 흐름으로 볼 때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도 있는 주제였음에도 내가 그것을 거절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못 된다는 생각, 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정직하지 못한 기억은 가끔 이렇게
대박까지 놓치게 만든다.
‘정직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항상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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