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대학만 들어가면 시험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면 그게 얼마나 허무한 착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바로 학점 때문이다. 학점은 학교 내 평판은 물론 가정이나 사회에서나 여러모로 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사용된다. 그러니 학생으로서 학점을 무시하는 건 사실상 쉽지 않다.
하지만 학점 위주의 사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학점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자신이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 잊어버릴 수 있다. 또 나중에는 과제도 과제지만 시험에 질려버려서 형식적으로 공부하게 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시험 보는 것을 싫어했다. ‘금방 잊어버릴 걸 왜 달달 외워야 하는 거지?’ 생각한 적이 많았다. 실제로도 그때를 떠올리면 공부했던 내용보다는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이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와 같은 경험을 사람이 많은 탓인지 그래서 공부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지출처: 다음 카페)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학교에 가야 하는 걸까? 도대체 왜 배우고 익혀야 할까?’ 이 질문에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이자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한 마디로 명쾌하게 대답한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습득한 지식의 대부분을 잊어버린다. 말 그대로 지식이나 정보만 쌓자고 다니는 학교라면 고작 그거 얻으려고 그렇게 공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공부는 배워가는 과정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얻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헤이스케는 이에 대해, 지혜가 생겨나는 공부는 설사 배운 지식은 잊어버려도 그 가치가 남는다고 말한다. 그는 학문을 “즐거운 것, 기쁨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문에는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 이 모두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지혜를 얻는 것도 즐겁지만,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배움을 통해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즐겁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 역시 늘 흥미롭다. 창조는 꼭 예술가나 과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라는 개념을 살펴보면 ‘일상 속에서 자기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자신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것’,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쁨’,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는 것’ 등의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모두가 바로 배움이 주는 즐거움이다. 배움에 통달한 석학들이 식욕이나 성욕보다 더 즐거운 게 공부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공부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건, 사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부는 일단 자극적인 재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꾸준히 오랫동안 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게임은 어떤가. 쉽고 재미있다. 처음 접해도 쉽게 그 룰을 익히기 재미를 들일 수 있다. 이에 반해 공부는 어떤가. 몇 년 아니라 몇 십 년을 해도 모르고 모자라는 게 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우리 아이들을 붙들고 자리에 앉혀만 봐도 안다. 공부 한번 시키기가 여간 쉽지 않다. 아이로부터 “아빠 싫어! 미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온갖 아양을 떨어서 겨우 앉혀놓아 봐야 겨우 20-30분이다. 때론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
물론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때로는 역효과만 낼 수 있다. 그러나 공부에도 어느 정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무조건적인 타율적 학습이 아닌, 일정한 강제력과 더불어 자기 주도적 학습을 잘 균형 잡아줘야 한다. 결국 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나중에 학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면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게 된다.
물론 ‘학문의 세계로 걸어간다’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쉽게 말해 이는 ‘꾸준히 공부한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학문이라는 것도 사실 그 내용이나 방법 면에서는 어린 시절의 공부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성인의 공부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계획을 짜고 주제를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면에서 다르다. 시험이 없고, 정답이 없다는 면에서도 역시 다르다.
‘어떤 문제든 더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 자신을 조금 더 성장시켜 나가는 것. 책에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 결국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모든 행동,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도전정신’, 이 모두가 배움과 학문의 길 아닐까.
필자 역시 학창시절에 뒤쳐지는 학생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결코 공부하는 직업을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더니 결국 대학 강단에까지 인연이 닿았다. 비록 뒤늦게 책을 손에 들기 시작했지만 그로 인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책뿐만 아니라 무수한 경험과 관계 속에도 역시 배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덕이었다. 진짜 공부는 시험 점수를 더 좋게 나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다.
책 읽는 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책 그 자체가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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