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치인 뿐 아니라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유명인들에 대한 도덕성의 잣대가 날카롭게 서고 있다. 이름을 다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도덕성의 잣대에 무너졌다. 왜 그럴까? 우리가 마주치는 불편한 진실, '도덕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모든 사진은 EBS아이의 사생활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어느 날, 부모가 된 여러분에게 아이가 100점 맞은 시험지를 가져와서 말한다.
“엄마, 거의 아는 문제였는데. 한 문제가 헛갈려서 선생님 몰래 살짝 교과서를 봤어요.”라고.
이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EBS방송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방송 참여 며칠 전 작가가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내일 실험 때 뵙겠습니다. 참, 이번 실험의 사례비는 10만 원입니다.”
그리고 실험 당일에 남자 FD가 나타나서는 짐짓 모른 척 “사례비, 15만 원 맞으시죠?”라고 말하면서 15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넨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놀랍게도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들이 군말 없이 15만 원을 받았다. 그걸 보면서 사실 저 순간 ‘과연 정직하게 10만 원만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도덕적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덕성은 정치인이나 사회 리더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의 문용린 교수는 “도덕은 연습”이라고도 말한다.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 중에 하나가 ‘너무 착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도덕적 행동은 대단히 복합적인 고도의 심리적 판단의 결과이며 그 만큼 합리적인 결과임에도 이 부분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도덕성을 크게 ‘정서’와 ‘인지’적 측면으로만 나누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서울대 곽금주 교수는 이 개념에는 ‘행동’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세 요소의 삼위일체 균형이 한 사람의 도덕성과 인생관을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실험도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제작진은 아이들의 정직성 실험에 12명의 어린이들을 참여시켰다. 이 실험은 눈 가리고 표적물을 맞히는 게임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6명의 아이들은 도덕성 지수가 높은 아이들, 나머지 6명의 학생들은 평균적인 아이들이었다.
이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제작진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많이 맞히는 숫자만큼 선물을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덕성 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눈가리개를 걷지 않고 표적물을 향해 다트를 던진 반면, 평균치 아이들은 남몰래 반칙을 하면서 표적물을 맞췄다.
비단 이 아이들뿐일까? 이들보다 도덕관념이 성숙하다는 성인이라고 해서 과연 눈앞의 유혹과 충동을 완벽하게 참아낼 수 있을까? 당장의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실험 뒤에 나온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정직하게 모든 시험에 응했던 아이들을 살펴보니 거의가 집중력이 높고 또래 관계도 좋았다. 반면 부정행위를 했던 아이들은 문제 행동 경향과 공격성이 정직한 아이들보다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도덕성 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수능 점수와 사회생활 면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루거나 시험 등의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착하면 손해 본다’는 통념은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던 셈이다. 곽금주 교수 또한 이 실험과 관련해 “도덕적이면 오히려 경쟁력도 높아진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어서 밀그램의 실험을 응용한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됐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사진 한 장을 찢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이 사진은 선생님이 가장 아끼는 한 장 밖에 없는 사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저 없이 사진을 찢어버린다. 선생님의 권위와 명령에 복종한 것이다. 물론 “소중한 걸 왜 찢어요?”라며 거부한 아이들도 있었다.
실제 밀그램의 실험 내용을 보자. 예일대학교의 밀그램 교수는 “누군가 당신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요구한다면 그것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을 주제로 대규모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94퍼센트의 사람들이 “부당한 요구를 따르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밀그램 교수는 과연 설문조사대로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신문에 ‘공포감과 학습력’에 관한 연구조사를 한다며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찾아온 이들에게 각각 4달러를 주었다.
참가자들이 맡은 역할은 학생들이 질문에 오답을 낼 때마다 전압을 올려 전기 충격을 가하는 교사 역할이었다. 전압은 최하 5볼트에서 최고 450볼트 강도였고,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전압이 높아질수록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의까지 주었다.
곧이어 실험이 진행되었고, 오답이 속출되었다. 그때마다 참가자들은 전압을 송출하는 버튼을 눌러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압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물론 그것은 진짜 전기 충격이 아닌 사전에 약속된 연기였다.
그럼에도 무려 65퍼센트의 참가자들은 최고 450볼트의 전압까지 주저 없이 올렸다. 그들은 예일 대학교라는 권위, 제복 입은 사람들의 명령, 4달러를 받았다는 부담감에 복종하고 말았다. 방송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치의 부당한 요구에 복종했던 군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아가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상대가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권위에 복종하고 고통을 가했다는 양심의 가책이 그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나중에는 참가자들에게 별도의 심리치료까지 진행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사실 도덕성을 지키는 일은 한 개인의 신념만으로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결국 개인과 사회의 양심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해온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 실험들이 밝히고자 했던 것은 참가자들 개개인이 정직한지 아닌지에 대한 결론이 아니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도덕성 높은 아이들이 ‘삶의 만족도도 높고, 지능도 높고, 인생을 바라보는 낙관적인 태도 경향이 강하고, 문제해결에 대한 믿음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결국 연구진은 아이들에게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할 힘을 주려면 ‘아이들의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네 살 정도 아이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타인도 자신과 같은 구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들도 일곱 살가량이 되면 ‘사회적 거짓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행동에서 의도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고, 비록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린아이들은 어릴수록 사고가 유연해서 본대로 따라한다. TV를 보든 부모를 보든 마찬가지다. 비디오를 보고 공격적이거나 감성적이거나 무관심한 성향을 따라하는 아이들이 그 증거다. 부모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부모가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아이들도 도덕성이 고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실험들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매 실험마다 권위에 도전하고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피 실험자들이 나왔다는 점이다. 나아가 잘못된 결정을 한 사람들조차도 실험이 끝나고 나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점이다. 즉 부끄러움을 느끼는 양심이 있는 이상 인간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나갈 희망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셈이다.
문용린 교수는 “인생의 마무리는 도덕성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얼마나 큰 성취를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을 살았느냐’가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도덕성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정치인, 부유층, 사회 지도자층은 물론이거니와 한 평범한 개인도 개인적·사회적 도덕성을 가져야만 온전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도덕성에 새 피를 수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비록 한 개인이라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격적 성숙을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좀 더 올바른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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