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제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선생님 블로그를 보게 되어 메일을 드려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진이 하고 싶어서 매주 주말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 학원을 다니고 방학마다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서 몇 달간 지내면서 사진공부와 수능공부를 했었습니다.
목표는 서울의 모 상위권대학의 사진학과를 잡았는데요, 사진이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점점 입시에 시달리다보니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고 오히려 힘들고 지치기만 하더라구요. 그래서였을까요. 결과는 당연히 낙오.
다른 학교는 찾아보지도 않았던 터라 불합격소식이 난 날 급하게 모집 중인 전문대들을 찾아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 경기도에 있는 한 3년제 공과대학입니다. 이공계열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어려워했죠. 그래서 고등학교도 문과를 선택했던 저로썬 뜬금없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1학년 생활은 나름 잘(?) 마무리했습니다만 요즘 들어서 제 미래에 대해서 자꾸 불안해지게 됩니다. 저희 학교는 모 대기업의 생산직으로 취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입학당시엔 어쨌든 생산직도 일은 힘들지만 연봉이 쎄니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요즘 들어서는 3년 학교 다니고 나와서 제대로 된 목표도 꿈도 없이 그저 공장에 들어가 3교대로 근무하며 돈만 벌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이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가 없어요. 굳이 있다면, 막연하게 안위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잘 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그것을 개발해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도 없고.. 주변에선 냉정히 조언을 해 줄 사람들도 없어 고민하느라 심신이 지쳐가네요.. 생산직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의 영향도 있을 테지만..
선생님의 조언 부탁드립니다ㅠㅠ
답변:
진로 조언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조언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정된 정보여서 조심스러운 면도 있지만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 아닐까 해서 더 조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언의 방향을 가슴 뛰는 꿈을 가지고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방향이 있을 테고요. 그러면 당장에는 설레는 마음까지 들면서 기분도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만일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여러모로 차가운 현실이 기분 좋지 않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냉정하게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불우하게 성장해서 그런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탓인가 봅니다. 지금 현재 상황을 냉혹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좋게만 평가하거나 너무 불행하게만 평가한다면 현실과는 자꾸 거리감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과 문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다만 시간이 소요됩니다. 적어도 3년에서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과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의 모습을 살아가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만일 제가 똑같은 상황이라면 일단은 보수가 좋은 기업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다른 직종도 알아보겠지만 안 된다면 일단은 생산직이라도 일을 시작 하겠습니다. 그런 형태로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한 다음 차근차근 제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병행해나가겠습니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면 틈틈이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출사도 많이 나가고, 관련 전문가들의 모임에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틈틈이 일상생활 속의 사진들도 담고, 블로그 등을 통해 내 자신과 생각들도 담아보겠습니다. 경우에 따라 학원에서 별도로 공부를 할 수도 있겠죠. 필요하다면 사이버 대학이나 특수대학원 같은 곳에서 학사나 석사학위까지 취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3,4년 이내 소규모 대회에 입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5년 이내 조금 더 큰 규모의 대회에 입상하고, 7년 이내 내 이름을 건 도서를 출간하고, 10년 이내 작은 전시회를 개최하고, 15~20년 후에는 내 작품들을 상시로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나가겠다거나 나만의 스튜디오를 가지겠다는 비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평범한 사진가가 되기보다는 ‘생산직 직공 출신의 사진작가’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상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더 할 말이 많겠지만 보고 듣는 사람 입장으로도 흥미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작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른 일이라도 좋습니다. 현재 하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을까요. 분명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 나아간다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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