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는
"집단 따돌림(일명 왕따, 이지매)"
초등학교에만 왕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에게도 왕따가 있다.
최근 송명근 교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다들 '왕따'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야기다.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평생 "왕따의 그림자"가 뒤따른다.
한 대학생의 고민이다.
(토론학습 중인 학생들 풍경. 어떤 집단에 들어가면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학교 보내기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따돌림을 경험을 한 아이의 가슴에는 깊은 상처가 패인다.)
상담한 친구에 대한 동료 대학생들의 충고와 조언이다.
1. 저도 그런 경험 있습니다.
거의 유사한 경험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니깐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단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의 장점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만일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면 그 시점에서 미리 마음을 정리해서 이별을 준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나만의 가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느껴지지 않을까요?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느껴지지 않는가요? 친구니깐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3.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안 좋아도 나에게 진실하다면 그것으로도 좋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친해지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와 만났다고 피해볼 일이 있겠는가 싶습니다. 주변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친구와의 트러블 때문에 거의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관계로 학교까지 그만둔다.’니 ‘너무 안됐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단 따돌림은 한 친구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따뜻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결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똑같은 경험 있습니다.
나는 당시에 그 친구를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크게 후회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좋은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친구들도 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의 단점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친구들과의 문제를 중간에서 조절해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를 버림으로 인해서 중재자는 사라져 버렸죠.
결국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준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가 있다’라는 느낌 때문에 그 친구를 버렸던 것이죠. 하지만 ‘내가 있었더라면 오히려 끝까지 중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후회가 됩니다. 따라서 저와 같이 그 친구를 버려서 후회하지 말고 다른 친구들과의 중재자가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5.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꼭 그 이야기만 떠오르는 경향이 있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판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친구와 함께하기로 한 첫 결심이 맞지 않을까 싶군요.
6. 딱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그 친구의 단점보다 장점을 바라보고 편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ism7625님, 일명 '내 마음의 풍경', 왕따가 되기 싫어서 닌텐도를 가지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제가 고민하는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따: 하나 물어볼까? 네가, 지금 두려운 것이 무엇이지?
학: 피해가 오는 것 같아서입니다.
따: 결국 두려운 것은 너도 그 친구처럼 버림받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것 아니니?
학: 네, 맞습니다. 저 역시도 무리와 떨어져서 지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리 속에서 함께 살기 원한다. 그래서 누구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과 맞지 않으면 소외를 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어떤 그룹으로부터 고립되는 친구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고민을 하는 친구처럼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왕따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집단 따돌림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친구가 그런 기회가 생길 때 상대를 집단 따돌림 시키는 현상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작은 문제가 사회적인 불신과 무관심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내가 피해를 입는다 해도 힘들어하는 상대를 포용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껴안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사람을 냉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경우에 따라서 나 보다 잘난 사람들을 '집단 따돌림'시키는 경우도 있다. 학회나 집회나 그룹이나 단체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왕따'시키는 것이다. 최근 송명근 교수의 이야기도 그런 형태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그의 수술법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살아오면서 느낀 한 마디가 떠오른다.
‘내가 준 상처는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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