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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사람들은 왜 억세다는 말을 들을까?

by 따뜻한카리스마 2013. 10. 10.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로부터 남해 팸투어 초대 요청을 받았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남해’라는 말에 두말없이 참여키로 했다. 일정상 이틀을 다 참여할 수 없어 하루만 참여키로 했다.

 

솔직히 말해 마지막 날까지 참여할까 말까 망설였다. 강연 일정에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픈 마음에 남해로 향해 떠났다.

 

 

(출처: 경남도민일보, 해딴에, 카약 체험전에 기념사진 촬칵^^)

 

그런 내 무의식을 반영했는지 아침까지 계속 일에 매달리다가 출발일정을 잘못 알아서 나 혼자 남해로 떠나야만 했다. 덕분에 다른 블로거분들은 고속버스에서 편하게 움직이는데 나 혼자 차 끌고 이곳저곳 따라다니느라 조금 힘들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학생의 고향이 남해였다. 20여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아직도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 내가 좋아한다는 말을 전한듯한데 그 아이는 단칼에 거절했지 싶다.

 

이유는 가볍다는 것이다. 아마도 철딱서니 없던 내 모습이 싫었던 모양이다. 당시에 이 친구는 남해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부산에 와서 자취생활을 했는데 예쁜 외모와 달리 투박한 말투에 억척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술이나 먹고 장난이나 치면서 돌아다니는 내 모습에서 남자다움이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싶다.

 

 

(문항마을의 갯벌체험장 사전 숙지사항 및 입장료, 갯벌체험장으로 입장하는 사람들)

 

그렇게 사귀어보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그 친구를 기억에서 지워야만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했을 때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상태여서 다시는 그녀를 만나보지 못했다. 당시에 같은 과에 다니던 2,3살 많은 선배와 결혼했다는 후문을 나중에 들을 수만 있었다. 그런데 결혼했다는 그 선배 역시 남해 사람이었다. 보기에는 유순하게 생겨도 이 선배역시 억척스러운 생활력이 있었다. 당시에 군 입대를 하지 않고 방위산업체로 들어가 군 생활을 대신해 학비를 본인 스스로 충당했던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알고 있던 남해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 인상 깊게 내 머리 속에 박혔다. 나중에 알게 된 남해 사람들 역시 억척스러울 정도의 성실함과 책임감이나 끈질김이 느껴졌다. 도대체 그 억척스러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늘 궁금했던 차에 이번 남해 여행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떠났지만 어쩌면 ‘보물섬’이라는 별칭을 부르고 있는 남해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도 혼자서 해봤다. 우리가 꿈꾸는 보물은 각자 서로 다를 것이기에. 남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감탄했지만 풍경보다는 남해 사람들을 보려 애썼다.

 

(사진출처: 블로거 김천령님, 후릿그물을 양쪽으로 드리우고 있는 모습, 그물이 300여미터 되고, 양쪽에 줄이 100여미터씩 되어서 500여미터를 포물선으로 그려서 물고기를 잡는 전통 물고기 잡이방식)

 

그런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남해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전국 어촌체험마을 전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항마을을 방문해 후릿그물 고기잡이 체험을 할 때였다. 까맣게 그을린 50대의 여자 사무장님이 후리그물 체험을 위한 이런저런 행사진행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자신감과 더불어 문항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갯벌체험을 먼저 해야 되나 시간상 그럴 여건이 못 되어 후리그물을 드리웠다. 500여 미터의 그물을 포물선으로 드리워 양쪽에서 그물망을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남해 전통방식의 물고기 잡이라고 한다.

 

(문항마을체험학습장의 박성아사무장님이 후릿그물 체험에 앞서 블로거들에게 체험 방법을 알려주고 계신 모습)

 

이 여자 사무장님이 메가폰을 들고 이쪽저쪽을 진두지휘하는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자 바로 욕설로 돌직구를 날리는 것이다. 물론 일반 시민은 아니고 마을 주민이었다. 그런데 그런 돌직구가 전혀 안 어울리지 않고 자연스럽고 따뜻하게까지 들리는 것이다.

 

남산을 등산하면서 그런 남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억척스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휘둘려 살아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다만 그 정도로 억척스럽기에 남편이 노는 경우가 있더라도 절대 굶기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출처: 블로거 김천령님, 500여미터에 이르던 후릿그물을 양쪽에서 힘겹게 모두 끌어모아 막바지에 이른 모습)

바닷가에 인근한 부산이나 목포나 포항 역시도 그런 투박한 기질이 있기는 하나 남해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을 따라가기는 힘들 듯하다. 특히 여성들이 더 억척스러운 편인데, 제주도 여성의 억척스러움과는 또 다른 면이 있다. 어쩌면 대륙과 해양이 마주치는 기운이라 그럴 것이라는 추정도 그리 거짓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해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절부터 부지런함이 몸에 익어왔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개간해야 땅이 거칠고 험한 곳이라 늘 일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모작을 통해 휴기 없이 1년 내내 농사를 지내왔기에 다른 지역의 농부들에 일에 많다고 한다. 어부들 역시 농사촌 이상의 억척스러움을 보여 왔기에 남해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익혀왔을 것이라는 게다.

 

(사진출처: 블로거 참교육 김용택님, 조개체험 후에 발도 씻고 캔 조개들은 씻어서 가지고 가는 가족들)

 

어쩌면 그 억척스러움이 남해를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내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이나 와 본 곳이었지만 볼수록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섬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팸투어였다.

 

남해군이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한 이번 팸투어는 그런 면에서 나를 한 번 뒤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내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어려운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사실 나뿐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남해 사람들의 강한 생활력을 잊지 않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출처: 블로거 김천령님, 모든 체험이 다 끝나고 잡은 물고기와 해산물 통을 가지고 돌아가는 박성아 사무장님)

 

여행이나 문화나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이야기해줄 프로페셔널한 블로거들이 많을 것 같아서 앞으로 나는 내가 보고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들로 팸투어 후기를 담아볼까 한다.

 

*추신: 혹시나 남해 사람들이라거나 남해 사람들을 가까이서 봐온 사람들이라면 남해 사람들에 대한 속성이나 기질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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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청춘의 진로나침반>,<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