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갑과 을의 계급
우리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다.
분명 자유민주의의가 발달한 민주사회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때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며 군인들의 계급에 따라서 그들 가족에 대한 대우까지 달라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군부대에서 시내를 오가는 버스에서 빈자리가 있어도 직급이 낮은 가족들은 앞에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마치 흑인사회의 변화바람을 불러일으킨 몽고메리 보이콧과 같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고 일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는 지위와 계급이 여전히 나눠져 있다.
비단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는 한때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솔직히 한때가 아니라 여러 번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했던 모든 일은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었다. 물론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러한 사회적 차별조차 느끼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처우 개선을 말할 처지도 못 되었다. 사회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굳이 비정규직이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솔직히 직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모 방송국에서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경험했다. 모 방송국 내부에서 일했지만 외주 제작팀 직원이었기에 직업 사회의 구조와 차가운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물위에 혼자 떠 있는 기름 한 방울과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방송국에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 외주 제작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화려함만큼이나 어둠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 있으면 그 사람 능력이 뛰어나건 그렇지 못하건 그의 소속, 직급, 직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계약직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실제로 계약직 정도만 되어도 양반이다. 곧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정규직에 가까운 연봉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규직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보다 더 불안정한 프리랜서들을 깔보기도 한다.
정규직은 귀족인 셈이고, 계약직은 양반이 되고, 단기 근로자들은 평민이 되고, 외주 제작은 상민이 되고, 허드렛일을 하거나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천민이 되는 셈이다. 소위 잘나가는 임원이나 방송인들은 왕족이나 황족처럼 거들먹거린다.
일반 기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속된 기업 규모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왕족이다. 중견기업 정도 되면 양반이다. 대다수의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직원들은 평민이다. 그래서 평민 소속의 직원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왕족 출신의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나마 평민들은 하도급 기업 직원을 천민으로 취급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실 사회생활에서는 어떤 위치에 있든 갑과 을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최근에 갑과 을의 불공정 상황에 대해 언론에 언급된 한 부분이다. 이때 을의 학벌, 나이, 직급, 환경이 소용없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조건 갑에게 엎드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먹이사슬 같은 계급이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비정규직 일자리가 앞으로도 더 증가하고 세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물론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들 중에는 오히려 직장인보다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능력이 출중하지 못한 대다수의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의 박봉으로 착취당하곤 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명분 아래 동일 업무 시 겪는 불평등은 표면적으로는 없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불평등을 뛰어넘어 불가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특정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제한적으로 작용해 한 개인의 발전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의 창구 직원이다. 예전에는 은행 창구 일을 해도 진급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일부 은행의 경우 평생토록 창구에서만 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도 여러 번 쟁점화 되었지만, 정작 그때뿐인 경우가 많다. 내가 아니면 다들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화려해 보였던 나의 첫 직장 역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불안한 고용 상태로나마 붙어 있던 걸 감사해야만 했던 방송국 일은 외환 위기가 겹치며 귀한 경험을 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비정규직의 쓰라림은 오히려 나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잡초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신은 보이지 않은 계급 차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러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이해하는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빛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말을 건네봤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 그들을 향해 따뜻한 인사말이라도 건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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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청춘의 진로나침반>,<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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