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
30대 초반 조그만 외국계 기업에서 기술영업을 할 때였다. 대기업의 설계도에 우리 제품이 들어간 경우에는 영업하기가 쉬웠다. 가격 협상만 이뤄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 제품이 설계도에 들어가 있지 않을 경우에는 설계도에 들어간 타 회사 제품보다 경쟁력이 있음을 설명하며 치열하게 영업 수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해서 공급이 확정되어도 고객이 공급 가격 조정을 요구해 오기도 해서 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럴 경우는 사장으로부터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수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독일 본사에 연락하여 공급 가격 자체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제품마다 마진율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제품은 10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마진율이 2배가 넘는 제품도 있었다. 한번은 그렇게 마진율이 2배 가까운 가격에 공급하는 한 제품에 대해 고객이 제동을 걸어왔다. 사장으로부터 20퍼센트 할인 권한까지 위임받아 고객사로 찾아갔다.
고객사의 구매담당자는 수입원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거래하기 힘들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보여줄 수 없었다. 회사 마진율을 그대로 보여줬다가는 고객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로 수입원장을 보자며 우겨대는 담당자에게 나는 한마디 했다.
“김 대리님이 꼭 원한다면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도에 맞지 않습니다. 김 대리님은 옷을 살 때 판매 직원에게 ‘이 원단의 수입 원가가 얼마인지 보여 달라. 그러면 내가 이윤을 책정해서 가격을 제시하겠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내 말에 담당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람이 많은 사무실에서 김 대리가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은 ‘나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 상사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협상은 5퍼센트 할인으로 양자 간에 만족한 상태로 끝났다. 영업은 합리적 설득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외국계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실이 부담되기도 했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사장은 남자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회의 중에 욕설은 예사고 결재판으로 때리기도 하며, 심지어 재떨이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회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모 대기업에 들어가는 제품이 있었는데 고객사의 갑작스러운 설계 변경으로 인해 납품할 제품이 다른 형태로 변경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한 달 이내에 새로운 제품을 납품할 수 없었다. 본사에서 새 제품이 들어오려면 적어도 5, 6주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사장은 무조건 가능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 약속한 기일이 되었다. 나는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고 다른 방도를 물색해보자고 했으나, 사장은 며칠만 지나면 무조건 된다는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했다. 대기업 담당자와 사장 사이에서 괴로웠다. 뻔한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장이 싫었다. 약속했던 납기일을 이미 몇 번이나 어겼다. 이런 관행은 잘못됐다고 말하자 사장은 결재판을 집어던지고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이런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뒤 곧바로 회사를 나왔다.
막상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또다시 일자리 찾기에 나서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고민이 밀려들었다. 인근 도서관에 들러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일자리를 훑어봤다. 별로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영화라도 한 편 보자고 마음먹고 3시간짜리 영화를 봤다.
이튿날, 부모님께는 회사일로 며칠 출장을 간다고 말하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 바로 다음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엄밀하게 말하면 당시에는 삐삐)가 왔다. 사장으로부터 내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어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나의 결심은 흔들렸다.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 죄송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회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도 한 달. 더 이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결국은 내 뜻대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강압적인 상사로 인해 힘들기는 했지만 이때의 영업 업무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이는 나의 커리어 전환에 큰 자산이 되었다.
영업과 관련한 또 다른 경험이 있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이다. 당시 나는 사업에 엄청 관심이 많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직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니곤 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떠오르는 사업 구상에 대해 쉼 없이 떠들었다.
당시 미혼이었는데, 하루는 소개로 만난 여성에게 사업 구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냈다. 뜻밖에도 그 여성은 내 이야기를 흔쾌히 받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며칠 뒤 밤늦게 통화를 하는데 그녀가 “정말 좋은 사업이 있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당장 알려 달라고 재촉했지만 그녀는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 날 만나서 이야기해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다. 좋은 사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지 궁금했던 탓이었다. 다음 날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녀는 나를 한 중년 남자에게 소개시켰다. 교육장 같은 곳이었는데, 그녀는 뒤로 빠졌다.
소개받은 남자가 칠판 앞으로 갔다. 마커펜을 들고 유통산업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동그라미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하나가 동그라미 6개를 낳고, 6개가 다시 동그라미 6개씩 낳아 36개가 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그림이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다단계? 내가 할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잘하면 돈 좀 되겠다는 욕심 또한 나를 흔들었다.
사업은 하지 않더라도 소개받은 여성의 성의를 봐서 물건 정도는 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에게 다른 세미나도 들어보라고 계속해서 권유했다. 몇 번 거절하다가 ‘뭐, 세미나 듣는 것쯤이야’ 하는 생각에 몇 번 참석했다. 책과 오디오 테이프를 접하며 점차 이 사업에 호감이 생겼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매력까지 느껴졌다. ‘혹한다’, ‘홀린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마침내 소개받은 여성 밑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녀가 내 스폰서가 된 것이다.
‘그래. 어찌 되었던 딱 1년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력을 다해서 해보고 되면 하고, 안 되면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가족과 친구, 지인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덕분에 내 밑에 판매원도 제법 늘었다. 하지만 판매를 강요하지 않았기에 수익은 쥐꼬리만했다. 나는 매달 백만 원씩 1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상품을 구매하거나 사람들 만나는 곳에 돈을 썼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을 내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새벽 1시경에나 집에 들어가곤 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잠을 줄이면서 일에 몰두해보긴 처음이었다.
다단계 일을 하면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점도 많다.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세일즈에 필요한 설득 기술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경험도 쌓았을 수 있었다. 심지어 책도 한 권 썼다. 정식으로 만든 책은 아니었다. 채근담처럼 좋은 경구들을 모아 인쇄소에서 복사물을 제본한 형태의 책이었다. 그렇게 2백 권 가량의 책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지나고 보니 그런 작은 경험도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준 것 같다.
어느덧 1년만 해보고 결정하겠다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결정이든 선택해야 했다. 결국 ‘이 길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따르는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기대했던 진전은 없었고, 친한 친구들은 이 일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절친했던 친구 하나를 잃었다. ‘친구라면 적어도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욕심 탓이었다. 더불어 이 일에 환멸감이 느껴졌다.
사실 다단계 일을 할지라도 엄밀하게 말해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은 없다. 단지 이 일의 사회적 인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어리석게도 다른 사람이 이 사업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동조하리라 기대했을 뿐…. 나의 이러한 직업 경험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경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 가감 없이 드러내봤다.
세상에 어떤 경력도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
결국은 그 일을 대하는 한 개인의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참조문헌: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페이스북 코멘트:
30대 초반에 조그만 직장을 다니면서 ‘돈 벌 수 있는 사업아이템은 없을까?’라고 늘 고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미팅에서 소개받은 이성 분에게 다단계를 소개받아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싫어했던 다단계 판매원이라는 직업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것이라도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에 배움을 얻으려는 자세를 늘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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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청춘의 진로나침반>,<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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