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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창업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가족보다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넘긴 이유

by 따뜻한카리스마 2011. 2. 19.
부제: 연만희, 뚜렷한 소신으로 인생의 스승을 한평생 모시다!

오늘은 우리나라 전문경영인 1세대로서 평사원으로 출발해서 유한그룹의 회장까지 역임한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연만희 고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먼저 유일한 박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한양행의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창립이념을 가지고 1926년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유일한 박사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서재필 박사에게 선물 받은 버드나무 목각그림을 회사로고로 만들었다. 모진 비바람에도 꿋꿋이 일어나서 일제 압박을 견뎌내겠다는 뜻이었다.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서재필 박사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국민의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비전을 세운다. 사회에 공헌하려고 좋은 제품을 만들려 노력했을 뿐 아니라 평소의 뜻대로 사후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모범을 보여 지금까지 존경받는 경영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유일한 박사의 창립이념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웠던 사람이 바로 연만희다. 그는 1961년 평사원으로 유한양행에 입사했다. 한참 성장하고 있던 유한양행은 1962년도에 주식 상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만희는 이런 기업공개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유일한 회장이 어느 정도의 가격에 상장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질문하자 연만희는 회장이 제시한 액면가 100원은 너무 낮다고 말했다. 시장가치로 본다면 최소한 600~700원 정도가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 회장은 주식을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액면가 100원을 그대로 밀어붙이라고 지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연만희의 예측대로 주가는 상장 후에 1,000원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상장을 맡았던 증권회사에서는 유한의 시장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일정 부분의 주식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자신들끼리 나눠가져 이익을 챙겼다. 이때 연만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공헌으로 인해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연만희는 총무과장으로까지 승진하게 된다.


총무과장이 된 연만희는 유일한 박사와 더 가까이 지내면서 더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유일한 회장과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그 중에 서교동 일화가 유명하다.


광고탑을 세우기 위해 평당 30원에 사뒀던 서교동 땅이 도로가 건설되면서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었다. 서울시에서 제2한강교 건립을 위해 평당 4,000원에 매입하겠다고 했으나 지주들은 평당 12,000원은 받아야 한다고 고집하며 보상가격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연만희 역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는 나라가 원한다면 당장 나라가 원하는 가격에 땅을 내놓아야 한다며 호통을 친다. 그 말을 듣고 유일한의 애국심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다른 지주들은 조금 더 높은 가격을 받기는 했으나 결국은 유한 때문에 적절한 가격 선에서 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유일한 회장은 ‘박정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연만희를 떠보기도 했다. “역사가 평가할 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 경제적 형편이 조금 더 나아지도록 만든 것은 잘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 역시 그러한 노력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에 정치적으로는 불만이 있었지만 연만희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한다.


유한에는 유일한의 친인척이 근무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유일한은 자신의 가족이 회사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당신이 살아 있을 당시에 회사에 있던 친인척 모두를 내보냈다.


연만희는 비록 친인척이라고 하더라도 채용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무조건 해고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온 가족이나 친인척이 파벌을 형성하는 것을 두려워한 유일한은 1969년에 일체의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경영 일선을 떠난다. 회사는 창업주 가족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운영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일한의 사업성장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켜본 연만희는 유한양행의 역사에 아직도 깨지지 않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지 8년 만에 상무이사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유일한 박사 역시 영특하고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연만희를 누구보다 아꼈던 것이다.

성공한 우리나라의 기업주들은 유일한 박사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다음편에서는 연만희 사장의 성공전략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기대해주시라^^ㅎ

관련글: 평범한 직장인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연만희 사장의 성공전략
http://www.careernote.co.kr/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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