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유한양행 연만희 사장의 3가지 성공전략
어떻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입사한 연만희가 유한양행 그룹을 이끄는 회장직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성공비결을 배워보자.
관련글: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연만희에게 전문경영을 맡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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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 1 : 네 인생의 스승을 모셔라!
우리는 흔히 ‘스승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직장인 연만희를 보면서 우리가 스승을 몰라보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배울 수 있는 겸손한 자세가 안 되었기 때문에 스승을 모시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모셔야 할 상대에 대해 귀하게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것만 잡고 늘어지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연만희는 유일한 박사의 고매한 인격에 매료되어 그를 위해 평생을 바친다.
사실 연만희는 유한에 입사해 나름대로 승승장구를 하며 승진을 했으나 영어도 못해서 유학파들에 비해서 심한 열등감과 고립감마저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서 타회사로의 스카우트 제의에 솔깃해하나 그래도 끝까지 유일한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각오로 유한에 남아 유 박사의 죽음까지 지켜보는 측근이 된다.
성공 비결 2 :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
연만희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교육받고 자랐다. 덕분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6.25 당시 명령체계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군대에서 군수품을 빼먹는 등의 비리가 발생해서 일부 군대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어느 정도 물건을 빼돌리는 분위기가 군부대마다 관례처럼 남아있었다. 그러나 연만희는 그러한 부패한 조직문화를 타도하기 위해 고위 장교들을 압박한다. 예비사단의 소위들의 중지를 모아서 이러한 군대비리를 척결하자는 서명을 112명에게나 받아서 연대장 눈 밖에 나기도 한다.
연대장은 군수품 유출문제로 상부에 불려 다니며 고초를 당한다. 하지만 연만희로 인해 사전에 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던 연대장은 그 이후로 연만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인사권까지 모두 맡길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소신 있는 행동은 ‘지금 당장은 인정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리라’는 연만희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유일한 박사의 외동딸 유재라씨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가 서거한 다음 ‘고인의 뜻을 가장 잘 이어받아서 유한재단을 이끌 이사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임원 회의를 했다. 이사회 전원이 고인의 따님인 유재라 여사가 이사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만희는 유여사의 역량과 인격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사장 자리를 가족이 맡는다는 것은 고인의 뜻에 위배될 수 있다고 이사진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대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연만희의 주장은 관철되지 못했다. 그 후 자의반 타의반 계열사로 좌천되었다. 21년이나 몸담았던 유한양행을 그렇게 떠나게 된 것이다.
성공 비결 3 :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라!
그렇게 좌천되다시피 회사를 나왔지만 연만희는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해서 일한다. 계열사인 스미스 클라인사에서도 전력을 다해 유한의 기업이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한다. 연만희가 유한을 떠나있는 동안 유한양행의 사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갔다. 국내 기업 중에서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기업일 정도로 우량기업이었던 유한양행은 극심한 시장 침체와 경영악화로 창업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유한재단의 유재라 이사장은 1987년도에 연만희에게 연락을 해서 유한의 사장직을 맞아줄 것을 요청한다. 아버지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뒤따랐던 연 사장이 맡아줘야만 회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며 유한으로 돌아오길 간곡히 부탁한다.
이렇게 1988년에 유한양행으로 되돌아온 연만희는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유일한 박사가 서거하신 후에 마치 주인 없는 회사로 손가락질을 받은 면도 있다면서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일단 조직이 젊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직급 정년제를 실시한다. 일정기간 내에 승진이 안 되는 직원들은 승진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직급 정년제를 실시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
그 결과 유한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80년대 중반까지 답보상태를 보이던 유한은 연만희가 경영을 맡은 1988년부터 매년 20%의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1993년에는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끄는 유한의 미래 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신약개발에서부터 해외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말단사원의 의견을 사장이 직접 듣는 ‘사원 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더불어 ‘기업은 일터이면서 동시에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실천했다. ‘무리하게 빚지지 말라’는 창업자의 경영방침을 지키기 위해 안정적인 재무구조 시스템을 확립했다. 결국 다시금 유한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유일한 박사의 기업이념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연만희는 ‘선배 경영인이 모범을 보여야 후배 경영인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우리나라 전문경영인 1세대로서 한국 전문경영인 학회를 이끌기도 했다. 선진 경영으로 미래의 유한을 이어가기 위해 경영자 양성에 힘썼다. 현재는 유한양행 고문으로 재직하며 한 평생을 유한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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