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은 하루 내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 중에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너무도 황당한 문자라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옛 직장동료의 아내가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난 문자이길 기대하며 전화를 바로 걸어봤다.
문자내용:
00도 00시 00의료원 발인 4일 고인이 된 000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그동안 00가 고생 많았네요.
옛 직장동료 정도가 아니라 계속 연락해온 가까운 지인이었다. 사실 내가 좋아했던 지인이었다. 그런 그의 배우자 역시 몇 번을 만나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창창한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스스로 마감하다니. 자살이라는 것이 유명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더니 내 주변에도 일어난 것이다.
(최근에 생을 마감한 한 유명 연예인의 장례식장 모습, 뉴스엔의 기사와 티브이데일리 기사 화면캡쳐함)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예정된 7시간 동안의 1일 워크샵 교육을 마쳤다. 예약된 열차표를 취소한 다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옛 지인들에게 이곳저곳에 연락했으나 바쁘게 살아가는 터라 다들 참석치는 못했다. 조금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지 않았던가. 누구를 탓하랴. 혼자 들린 장례식장에서 2시간 넘게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소식을 듣자마자 2시간을 달려온 동료가 있어 그와 같이 맥주 몇 캔을 먹으며 상주(喪主)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발인될 때까지 같이 밤을 세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다음 일정도 있다는 핑계로 마지막 기차를 겨우 타고 집으로 향했다.
여러 생각들이 맴돌았다. 망자(亡者)는 평소의 우울증과 더불어 여러 가지 단순하고도 또 한편으로 복잡한 문제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로만 듣던 자살을 막상 내 곁에서 일어나니 대한민국 자살률이 OECD 국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믿긴다. 그러고 보니 처가댁의 외갓쪽 친척 중에 음독자살을 했다가 시급한 일이 있었다.
이렇게 일반인들이 쉬이 생명을 끊는 경시현상은 유명인들에게도 일부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사실 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거나 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그들이 자신의 몫을 다해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저렇게 잘 나가는 사람도 죽는데, 나 같은 존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은 보다 쉽게 생을 마감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유명인들의 자잘한 행실에 대해 너무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잘못한 일이야 꾸짖음을 당해야겠지만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로 상처를 주는 일들만은 삼가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직업상 여러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다보니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이 참 많다. 그런데 상담 내용의 절반 정도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민이다.
결국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아프게 만들고 있기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결과지향주의적 사회 풍토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 한 개인 개인의 무심함과 소홀함도 피할 수 없으리라. 물론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라 한없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망인(亡人)의 안타까운 죽음에 삼가명복을 빌며,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