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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병으로 결혼 포기했던 형,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생각하게 되고...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7. 22.
 

형님 역시 다른 백반증 환자들처럼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로 취직했다.

밤에는 백반증이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비록 밤일이었지만 형의 보수는 꽤 짭짤했다. 월급보다는 팁이 더 많았다. 새벽에 돈을 한 뭉텅이씩 가져오곤 했다. 대학생인 나에게 용돈도 조금씩 주곤 했다. 가끔 만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꺼내 쓰기도 했다. 미안해 말은 못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 갚았다.


웨이터 일이란 급여보다 팁이 많은 일이다. 그러니 손님들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술 취한 취객을 다룬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손님들과 다투는 일도 많았다. 2년가량 일하다 때려 치웠다가 일했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그만 두었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본인도 술도 많이 먹었다. 그러다보니 돈을 많이 벌어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그대로 상처만 늘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갔다. 일명 마도로스가 되었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운치있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막노동이었다. 1년에 겨우 한 번씩 들어올 정도였다. 그렇게 3년가량을 배를 탔다. 고생한 덕분에 돈도 제법 모았다. 5,6천만 원 가량의 돈이었다.

아프리카의 한 항구에서 쇠 체인에 묶여 목숨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일부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러나 급여는 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가서 크게 돈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큰일을 몇 번 겪고 선원생활도 때려치웠다.


한국에서는 못 살겠다고 했다. 다들 자기만 바라보고는 것 같아서 돌아다니질 못하겠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에티오피아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을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 그동안 모았던 돈을 거의 다 털렸다.


결국 한 푼도 못 건지고, 사기꾼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다시 원양어선에 올랐다. 2년가량 배를 더 탔다. 어느 정도의 돈을 다시 모았다. 이번에는 필리핀에서 살고 싶다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을 통해 새로 설립할 나이트클럽에 투자했다.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큼 지분 투자를 하면 크게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이 만들어지기 전에 부도가 났다. 다시 모았던 돈을 다 털렸다. 사실상 사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몇 년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한 달에 조금씩 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결국 원금은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사업도 안 되고, 일도 안 되었다. 결국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결혼도 못했다. 여기저기 공장도 다니고, 전국에서 진행되는 공사장의 잡부로도 일을 했다.


대개 막노동자들이 함께 기숙하는 곳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그런데 백반증이 있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하며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다투는 경우도 많았다.


공사장에 남은 못을 삽으로 긁어모으는 작업을 하다가 못이 튀어서 형님의 눈에 꼽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백내장 수술까지 하는 제법 큰 수술을 했다. 형은 자기 앞으로 보험 하나도 제대로 들어놓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산재처리가 안 된다고 우겼다. 내가 담당자와 연락한 후에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하니 겨우 산재로 처리해줬다. 그런데 그 외의 위로비용은 한 푼도 받아내질 못했다. 공사장 일도 그만 두었다.


형님의 나이도 30대 후반이 되었다. 형은 여전히 미혼이었다.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백반증이라는 병으로 온몸이 헝클어진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외국 여성과 결혼 소개한다는 결혼중개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서서히 바뀌었다. 꽤 많은 돈을 결혼 중개업체에 소개비로 내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우울했던 형의 마음에도 설레는 마음이 엿보였다.


(형과 형수, 키 차이가 거의 30cm 가량 차이난다. 그래도 두 분 금슬좋게 지낸다. 형의 아픔을 받아주는 형수가 고맙다. 형님도 형수의 아픔을 이해해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2,3번에 걸쳐 필리핀 여자들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제일 처음에 형님과 소개받은 여자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형 말로는 예쁜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조금 불품 없는 그녀가 좋다고 생각했다. 키도 너무 작고, 몸무게도 적어 초등학생 같이 갸냘파 보이는 여자였다.


그에 비해 형은 키만 해도 180에 훤칠한 외모다. 80년대 후반 만해도 영화배우 ‘주윤발’을 닮았다고 할 정도로 주변에 인기가 좋았다. 젊을 때 멋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리면서 외모도 점차 평범해져갔다.


형은 여자가 너무 외모가 있으면 오히려 도망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형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30대 후반에 결혼식을 올렸다. 형은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형에게 이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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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형님 내외분을 필리핀에서나 한국에서 채용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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