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역시 다른 백반증 환자들처럼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
나이트클럽의 웨이터로 취직했다.
밤에는 백반증이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비록 밤일이었지만 형의 보수는 꽤 짭짤했다. 월급보다는 팁이 더 많았다. 새벽에 돈을 한 뭉텅이씩 가져오곤 했다. 대학생인 나에게 용돈도 조금씩 주곤 했다. 가끔 만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꺼내 쓰기도 했다. 미안해 말은 못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 갚았다.
웨이터 일이란 급여보다 팁이 많은 일이다. 그러니 손님들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술 취한 취객을 다룬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손님들과 다투는 일도 많았다. 2년가량 일하다 때려 치웠다가 일했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그만 두었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본인도 술도 많이 먹었다. 그러다보니 돈을 많이 벌어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그대로 상처만 늘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갔다. 일명 마도로스가 되었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운치있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막노동이었다. 1년에 겨우 한 번씩 들어올 정도였다. 그렇게 3년가량을 배를 탔다. 고생한 덕분에 돈도 제법 모았다. 5,6천만 원 가량의 돈이었다.
아프리카의 한 항구에서 쇠 체인에 묶여 목숨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일부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러나 급여는 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가서 크게 돈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큰일을 몇 번 겪고 선원생활도 때려치웠다.
한국에서는 못 살겠다고 했다. 다들 자기만 바라보고는 것 같아서 돌아다니질 못하겠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에티오피아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을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 그동안 모았던 돈을 거의 다 털렸다.
결국 한 푼도 못 건지고, 사기꾼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다시 원양어선에 올랐다. 2년가량 배를 더 탔다. 어느 정도의 돈을 다시 모았다. 이번에는 필리핀에서 살고 싶다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을 통해 새로 설립할 나이트클럽에 투자했다.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큼 지분 투자를 하면 크게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이 만들어지기 전에 부도가 났다. 다시 모았던 돈을 다 털렸다. 사실상 사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몇 년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한 달에 조금씩 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결국 원금은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사업도 안 되고, 일도 안 되었다. 결국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결혼도 못했다. 여기저기 공장도 다니고, 전국에서 진행되는 공사장의 잡부로도 일을 했다.
대개 막노동자들이 함께 기숙하는 곳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그런데 백반증이 있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하며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다투는 경우도 많았다.
공사장에 남은 못을 삽으로 긁어모으는 작업을 하다가 못이 튀어서 형님의 눈에 꼽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백내장 수술까지 하는 제법 큰 수술을 했다. 형은 자기 앞으로 보험 하나도 제대로 들어놓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산재처리가 안 된다고 우겼다. 내가 담당자와 연락한 후에 법적 조처를 하겠다고 하니 겨우 산재로 처리해줬다. 그런데 그 외의 위로비용은 한 푼도 받아내질 못했다. 공사장 일도 그만 두었다.
형님의 나이도 30대 후반이 되었다. 형은 여전히 미혼이었다. 결혼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백반증이라는 병으로 온몸이 헝클어진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외국 여성과 결혼 소개한다는 결혼중개소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서서히 바뀌었다. 꽤 많은 돈을 결혼 중개업체에 소개비로 내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우울했던 형의 마음에도 설레는 마음이 엿보였다.
2,3번에 걸쳐 필리핀 여자들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제일 처음에 형님과 소개받은 여자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형 말로는 예쁜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조금 불품 없는 그녀가 좋다고 생각했다. 키도 너무 작고, 몸무게도 적어 초등학생 같이 갸냘파 보이는 여자였다.
그에 비해 형은 키만 해도 180에 훤칠한 외모다. 80년대 후반 만해도 영화배우 ‘주윤발’을 닮았다고 할 정도로 주변에 인기가 좋았다. 젊을 때 멋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리면서 외모도 점차 평범해져갔다.
형은 여자가 너무 외모가 있으면 오히려 도망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형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30대 후반에 결혼식을 올렸다. 형은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형에게 이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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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09/07/22 09:54정말 파란만장, 좋은 일보다 궂은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2009/07/22 20:59형님이 행복하게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09/07/22 10:37네, 저도 그렇습니다^^
2009/07/22 21:42감사합니다!
고생많으셨던만큼.. 파란만장하고 행복한 날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9/07/22 11:43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한 날들을 많이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2009/07/22 21:42앞으로는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9/07/22 11:55모두 모두 행복하시길^^*
2009/07/22 21:43감사합니다!
형님의 쾌유와 행복을 빌어 드립니다.
2009/07/22 12:12누구나 들춰보면 아픔 하나씩은 다 있는 법이지만
숨겨진 아픔보다는 들춰진 아픔이 더 큰것 같습니다.
왜냐면 숨겨진 아픔은 우리가 볼수도 없잖아요.
그러니 같이 나눌수도 없구요...!
형님의 아픔을 애잔하게 올려주신 카리스마님께도 행운이 함게 하시길 빕니다.
아픔을 함께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009/07/22 21:43고생이 많으셨군요. 앞으로는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09/07/22 12:21네, 감사합니다.
2009/07/22 21:44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2009/07/22 14:47앞으로는 힘겨운 일, 어려운 일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고생 많으셨죠.
2009/07/22 21:45따뜻한 응원에 감사 드립니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이 있으셨겠지요.
2009/07/22 16:13얼굴에 뾰루지 하나 나도 신경에 거슬리는데요.
앞으로라도 행복하시길 바래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남들의 아픔은 무시하고,
2009/07/22 21:46자신의 아픔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저 역시 반성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형님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형님이 살아온 삶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가슴이 아려옵니다. 단지 피부의 색깔 때문에 가지 않아도 될 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더욱 힘든 삶을 살아 오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 끝에 형님 앞에 있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이롭지 못했다는 내용에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저의 인생을 조금 말한다면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마 1-2학년 때부터 백반증이 발병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유년시절, 사춘기, 청년시절, 그리고 지금도 백반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수없이 “이 백반증만 없다면 난 무엇 무엇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현실성 없는 상상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거울 속에 있는 제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 찍기를 두려워했고, 어쩌다 찍힌 사진 속에서 내 흉한 모습을 볼 용기가 없어 사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길가다 그냥 한번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내 흉한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아 절망했고, 화상 입었냐고 물어보는 의미 없는 말 한 마디에 크게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저의 삶은 백반증으로 인해 심하게 굴곡되었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했고, 내 삶을 원망했고, 왜 내 삶만 이래야 되냐며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절망하고, 절망 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절망할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삶이 유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비참한 내 삶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도 당당히 맞서보자는 오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백반증을 핑계로 아무런 삶의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백반증이 치료되어 정상적인 피부가 되었다고 했을 때 백반증으로 인해 허비한 지나간 세월들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아니었습니다. 백수인 상태에서 백반증이 나아도 계속 백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폐인이 된 상태에서 병이 나아도 계속 폐인으로 살아야 하며, 대졸 학력을 가진 상태에서 백반증이 나으면 대졸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백반증 치료로 정상적인 피부가 되었을 때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렵지만 백반증이 있는 상태에서 인생을 계획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백반증 병 자체는 그렇게 까지 내 인생을 파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내 스스로 백반증을 핑계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의식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현실을 직시하고, 버틸 때까지 버티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전신의 피부 색소가 탈색되어 현재는 제가 백반증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가끔씩 저의 하얀 피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피하고 도망가면 그 어려움이 끝까지 쫓아와 괴릅게 만든 반면,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그동안 그렇게 괴롭혔던 어려움들이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백반증으로 인해 뒤틀린 형님의 삶이 지금부터라도 방향을 바로잡아, 형님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당당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2009/07/23 02:05형님이 사명님 같은 분 뵙고 형이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2009/07/23 21:47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명님을 존경합니다.
형에게도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행복하시고...앞으로도 계속 행복하셔서
2009/07/23 07:18힘드셨던 과거 모두 다 보상받으실겁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2009/07/23 21:48보상은 안 되더라도 부디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도 나쁘지 않은것 같아요.
2009/07/23 07:19주위에서 보면
알콩달콩 잘 사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좋은 여성 만나서 행복하셨음 좋겠어요
그럼요. 외국인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깐요.
2009/07/23 21:49게다가 형수님이 너무 좋으신 분이라서, 더 좋습니다.
형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차후에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비밀댓글입니다
2009/07/23 11:23첫 댓글을 이 글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7/23 21:52현재 형님의 상태는 백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반이 온몸에 다 퍼지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정도로 많은 상태입니다-_-;;;
그렇지만 않다면 말씀하신 그 교수님을 찾아가 치료를 받고 싶군요.
좋은 정보주시려고 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행복한 날들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 ^
2009/07/23 18:10저 역시 행복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2009/07/23 21:52많은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형님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2009/07/24 18:22그렇죠. 아이러니하게도 형님의 아픔을 풀어준 사람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점이 좀 가슴아픈 점도 있습니다.
2009/07/25 11:29형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향후 별도로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가족의애환이네요 형수님과 애들 낳고 행복하게 사셨으며 좋겠습니다
2009/07/25 10:52지난해 아이를 가졌답니다^^
2009/07/25 11:30그 이야기도 별도로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