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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 대학생과의 북한 이야기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10. 14.


이번 학기에 몇몇 특별한 분들이
내 강의를 듣고 있다.

그 중에 꼭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북한에서 귀순하신 분이었다.

요즘은 새터민으로 불린다.


처음에 가볍게 점심으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끝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3,4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들 공유하고 싶다는 욕심에 펜을 들었다.

키가 작아 대학을 못 들어가다니-_-;;;, 박탈된 자유!
제일 처음 들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키가 작아 대학을 못 들어갔었다’라는 그녀의 경험담이었다.
내가 어떻게 대학 신입생으로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북한에서 형편도 좋고, 성적도 좋았으나 키가 작아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라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을 들어왔다고 한다.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어느 정도의 신장이 되어야만 대학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북한도, 독서에 대해서는 비교적 개방적이다
그녀는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도도서관 비서를 할 정도였기 때문에 마음껏 책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 지도자도 문학가나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라 책 읽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방적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수령’이라는 호칭은 오로지 '김일성 주석'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호칭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일은 ‘지도자’나 ‘장군’으로 불린다고 한다. 민초들 사이에서는 ‘김평일’이 더 지도자감이라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재밌게 읽었던 책을 물어봤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보면서 해외 문학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너무나 재밌게 읽었던 책 중에 하나였다. 이어서 문학 작품 몇 가지를 서로 이야기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죄와벌, 폭풍의 언덕, 카라마 조프의 형제들 등이었다.

따: 한국의 대학생활에서 어려운 것은 없나요?
북: 다른 과목은 모르겠는데 ‘영어’과목이 가장 두렵다. 북한에서는 일체 영어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다. 너무 기초가 안돼있어 걱정이다. 그나마 1학기때 교수님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2학기 때 강사님은 전혀 도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다. 일방향적으로 독해 수업만을 진행해서 고역이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 수업, 재미없어...
재밌는 수업도 있으나 대부분 재미나 흥미가 없다고 한다. (물론 내 수업이 가장 재밌고, 유익하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ㅋㅋ) 다음으로 사람들이 낯설어 힘들다고 한다.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나고, 문화 차이도 나서 적응하기 조금 힘들다고 한다. 무엇보다 북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정을 느끼기 어려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정부에서 50% 지원하고, 학교에서 50%를 지원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졸업후 사회복지사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원래 북한에서의 집안살림은 풍족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난해 굶어죽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이후 가난과 굶주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 집안은 정치적으로 뼈대 있는 가문이었으나 가난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후 배고픔에 대해 알게돼, 1달치 식량배급되면 10일만에 모두 동나...
남편이 1달치 배급을 받아오면 10일 만에 쌀이 동났다고 한다. 그래서 본가에서 매달 식량을 지원받았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 친척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오는 물건들을 북한내 풀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따리 장사처럼 가볍게 시작했던 사업이 눈두덩이처럼 커지면서 한국 돈으로 치자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 평양으로 들어갔다가 사기를 당해 쫄딱 망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TV보다가 눈부신 한국의 발전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어머님을 찾아 새롭게 사업을 할 요량으로 언니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TV를 통해 한국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꼭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선교사를 통해서 입국하기 위해서 다양하게 접촉했으나 무산되었다고 한다. 결국 통로를 찾아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돈을 받고 루트를 알려주는 브로커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국정원에서 힘들게 조사 받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거의 3,4일 정도의 간단한 조사만 받은 후에 한국에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입국하기 때문에 입국 절차가 그 만큼 간소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 한국에서 정착금은 많이 주어지는가? 예전에는 3,4천만원의 정착금이라고 들었다. 어떤가?
북: 내가 들어올 즈음에 여건이 바뀌었다.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 1년 동안 매월30여만원 가량씩 정착 지원금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 정도의 비용으로 거처도 없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한국 생활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엘리트급들은 한국에서도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자신의 기업에 북한 출신의 부장이 있다고 말해줬다. 그는 북한 최고의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석,박사까지 취득하고 모대기업의 재직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아주 우수한 인재라 해외 프로젝트에 많이 투입된다고 한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중급, 하급 출신의 새터민(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에게는 사회 문제의 소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터민들 경제적 문제로 한국 정착에 어려움 많이 겪어...
자신과 같은 여자들은 어떻게든 생활고를 해결하며 살아가는데, 특히 남자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동생 같은 경우에도 어떻게해서라도 데려오고 싶지만 오히려 이곳 생활이 더 좋지 못할까 싶어 선뜻 데려오질 못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1류 기술자이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쓸모없는 기술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잡무에 시달리는 것을 비관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북한사람들은 게으르다’라는 시선이 가장 싫다고 한다. 간혹 북한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멸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어렵다고 한다.

[이미지출처: 적십자 삼척지구회(네이버 phs852님), 새터민 가족을 위해서 봉사하러 나가신 한 장면, 실제로 새터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실 이야기 나눈 분의 동의를 구해 측면 사진을 찍었으나 다소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올리질 않았습니다. 아직도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염려하시는 모습이 짙었기 때문입니다.]

따: 그렇게 어려움이 많은데, 북한을 벗어나 한국에서 살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북: 비록 작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유가 그리워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 자유를 나는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 북한에서는 자유가 없는가요?
북: 당에서는 자유가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허상인지 알게 되었다. 말 한마디 잘 못하고, 글 한 번 잘못 쓰고, 일 한 번 잘못하면 온 집안이 추방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살던 또래의 한 가족이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로도 자유에 대한 제약을 받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녀는 한국이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했다는 것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철저히 통제된 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지만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쩌면 더 심한 면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예 신분적으로 결코 성장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북한의 지나친 친일파 청산 문제지만, 친일파 청산을 못한 한국도 문제...
북한에서 가장 잘못한 정책 중에 하나가 해방이후 친일파 청산이었고, 한국에서 가장 잘못한 정책 중에 하나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고 두 체제를 동시에 지적했다.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이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했고, 무엇보다 이들 후손이 북한에서 성장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약 속에 갇힌 사람들 중에 아주 똑똑하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친일파들이 정부 요직에서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그들을 활용하는 우를 범했다. 그로 인해서 역사적 단죄 없이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도덕적 양심의 상실을 잉태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조금은 차갑고, 조금은 각박하고, 조금은 공기도 좋지 못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염려스럽지 않은가?
북: 나는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따: 아무래도 남편이 있었다면 그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괜찮은가요?
북: 남편은 비교적 간부직이라 문제가 없다. 게다가 내가 전향한 것을 알고 자신과 이혼한 것으로 바로 처리해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따: 다른 가족은 없는가요?
북: 다만 아직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 15살이 된 첫째 딸이 있다. 그래서 강연의뢰가 들어와도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도 6개월에 한 번씩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 가족들에게 송금한다고...
특히 15살 먹은 큰 딸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에 한 번씩 1,2백만원 가량을 북으로 송금한다. 주로 전문 브로커에서 2,30%를 공제하고 북한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1백만원 가량 송금하고 브로커 수수료를 공제하면 북한 가족들이 5,6천원 가량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율도 떨어지고, 경기도 좋지 못해서 4천원 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돈도 북한에서는 엄청 큰 돈이라 딸을 위해서 힘들더라도 꼭 보낸다고 한다.

먼 미래의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마음껏 가족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큰 딸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애써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문득 그녀가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와 ‘굶주림으로부터 도피’를 벗어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어서 우리 민족이 간절히 바라던 통일이 와서 모두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한겨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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