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스스로 계속 고민을 해왔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22살의 대학생입니다. 대학은 지방에 위치해있고, 전공은 러시아어와 러시아 지역학을 배우고 있습니다(학교에서는 통상이라고 하는데, 뭐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통상을 배우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미거시 같은 경제학을 배우고 제 2외국어랑, 지역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희귀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술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되고 담배를 피어서도 안 됩니다.
사실 이 문제가 저로 하여금 진로를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됩니다. 선배들이나 주변의 어른들에게 듣기로는 술을 하지 않고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터디를 짜서 공부를 한 적은 거의 없고요. 객관적으로 협업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승부근성도 좀 떨어지는 편이고요. 그리고 굉장히 고지식한 편입니다.
리더십은 더욱 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융통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미련하다는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자주 듣고는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성실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나름 책임감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꼼꼼한 편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그렇게 내성적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를 하거나 하는 데에 있어서는 떨지 않고 남들보다 더 잘하는 편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판단과 주변에서 하는 말로 결론을 도출한 것인데, 수학적인 능력보다는 언어적인 능력에서 더 탁월함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학적인 부분도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 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스트레스가 되고 먼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술을 먹어야 되는지, 영업을 해야 하는지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많은 생각을 해왔지만, 갈피가 쉽게 잡히지 않네요. 주변에서는 제가 술을 먹지 못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이 아니라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공기업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특히, 제가 남들과 무엇인가를 하기 보다는 혼자 무엇인가를 파는 편이기에 더욱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이민을 가고 싶은 생각도 큽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정말로 제가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네요. 저희 선배들은 주로 해외 영업 파트에 진출을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영업을 하는 것이라서 술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대학원에 가고 싶은 생각도 내심 가지고 있지만, 솔직히, 나가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대학원 문제는 일종의 도피 같더군요. 제가 아는 형님은 제게 전문직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을 하시던데, 전문직은 오히려 영업력이 더 빛을 발하는 직업이 아닌가요?
저 같은 경우는 희귀병으로 인해서 군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시간이 다른 남자들보다는 2년이나 더 많습니다. 선생님, 인생의 선배로서 제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내년이면 이제 4학년인데, 아무것도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점점 불안합니다. 대인관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실력만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은 없나요? 아니면, 정말로 외국에서 일을 해야 하나요(러시아에서 10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했고, 미국에서 일을 했던 인도인과 친해졌습니다. 제 사정을 이야기 하니, 영미권이나 유럽 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술문화가 없다고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귀중한 시간 내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답변:
술 문제는 깨끗하게 잊으시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문제가 풀리지 않고 괴로움에 시달리다 상담문의를 하셨을 것인데요. 술 문제는 깨끗하게 잊으라고 하니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정답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이라는 것이 어떤 생각(또는 관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지나치게 그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자신의 온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대개 왜곡된 믿음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술을 강제로 권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그런 회사나 그런 상사 밑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도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권에서 사원으로 시작해서 본부장까지 되신 분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입행원 시절에 호랑이 같던 상사분이 있었는데요. 이 분이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군소리 없이 따르는 엄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식날 이 분이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술을 한 잔씩 따르는데요. 이 신입행원이 ‘본부장님, 저는 술을 먹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그러하오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회식장소가 순간적으로 냉랭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본부장님이 ‘허허허. 이 사람. 주관이 뚜렷하구먼. 보세요. 자기가 싫은 것은 확실히 싫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이런 기개도 없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지 않았나 반성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 신입행원이 외향적이거나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느냐 하면 그런 분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주 내향적이고 조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해나갔고, 누가 뭐라고 말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나갔습니다. 지금은 은행에서 퇴임하고 대학교수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이것은 비단 특정인의 사례가 아닙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례들이 많습니다. 물론 꽉 막힌 상사를 만나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때가서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미리 지레짐작해서 ‘영업이란 술을 마셔야 한다’, ‘직장일이라는 것이 모두 다 술로 결정된다’는 왜곡된 고정관념부터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도저히 견디지 못할 압박이 오더라도 내 실력만 확실하다면 살아남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탁월하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성을 키워나가시는데 초점을 맞춰야지 술을 안 먹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시면 안 됩니다.
어떤 희귀병을 앓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도 생존방법은 국내든 해외든 결국은 전문성이 결정하게 될 겁니다. 나 스스로 내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분명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을 누구나 쉽게 대체할 수 있다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일을 시작하는 경력초기부터 그런 전문성을 구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전문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분야 저 분야 공부하느라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나와 맞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역량을 쌓고 해당 분야의 경험을 쌓아 경력을 구축하고 성과를 창출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군대 면제로 시간을 번 부분은 있지만 그 시간도 금방입니다. 그 시간으로 어떤 분야의 공부를 하는데 쓸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능한 보다 직접적인 사회경험을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배워나가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보다는 직장이라는 새로운 일터에서 그 삶의 현장에서 배워보시길 권합니다. 필요하다면 휴학을 통해 직장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직장을 다니면서 배움을 병행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빠르게 졸업하고 또래들보다 빨리 사회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 그것도 술 때문에 지나치게 자신의 진로를 제약하고 있지 않나 생각 듭니다. 자기 입장이 아니라 상사나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근무하는 직장인이 ‘술을 먹느냐 못 먹느냐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업무를 수행할 역량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오로지 역량을 구축하고 태도를 바로잡는 데만 힘쓰시고 불필요한 염려로 젊은 날의 열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시길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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