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24살로 지방에서 살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엄밀히 말해 이젠 학생이 아니네요. 이번에 자퇴를 했습니다. 교수님이 취업전담으로 계시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계신걸 알았으면 찾아뵙고 꼭 상담을 청했을 텐데 하는 정말 많은 아쉬움이 남네요.
저는 저를 잃어버렸어요. 제 스스로도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막막해요. 우선 저희 가정은 부모님이 제가 7살이 된 때에 이혼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꼭 드라마 같아요. 유치원 가는 길에 어머니가 몰래 데리고 집으로 가 며칠 뒤에 아버지가 다시 저를 데리러 오시고, 다시 싸우고 데려가고 이런 일들이 몇 번이나 반복이 되었어요. 그 당시 제가 6~7살이었지만 그 장면들이 이상하게 생생히 기억이 나요. 그렇게 하다 어머니가 저를 데려가게 되었고 절에도 묶고 이리저리 떠돌다 한 촌에 자리를 잡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항상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집에선 혼자인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말이 없고 숫기도 없어졌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신경을 쓸 시간조차 없었지만 초등학교 생활은 저에게 너무도 좋았습니다. 저는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특히 구기 종목들을 잘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과 농구, 축구, 야구 가리지 않고 항상 당연하게 끝나면 모여서 해질 때까지 운동하며 놀았습니다. 그래서 육상부도 했었고, 축구부도 했었어요. 축구는 다른 축구 단체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었고, 육상으론 도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서 메달까지 얻었습니다.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놀았고 운동을 잘해서 친구들에게도 항상 인기가 많았어요. 아침이면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제가 중학교 올라가던 해에 갑자기 사정으로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래서 친구들과도 생이별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엔 몰랐지만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는데 우연히 임대아파트를 얻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너무 적응을 못했습니다. 여기 친구들은 저와 달랐던 것 같아요. 항상 모르는 컴퓨터게임 이야길 했고 학교시간이 끝나면 다들 학원으로 갔어요. 전 무뚝뚝해지고 말문이 닫혔습니다. 정말 갑자기 변해버렸어요. 대화도 안통하고 외모도 혼혈 같은 생김새를 가져서 놀림에 충격을 받고 점점 움츠려졌어요. 저는 그 전까지 제 외모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잘 지냈는데 당시엔 많이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엔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기 좋아하고 무서운 것 없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뭐든 하곤 했는데, 변해버렸어요.
고등학교 때도 똑같았습니다. 더 심해졌죠, 외모 콤플렉스에다 게임중독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에 외모로는 더 놀림 받고 상처받았어요. 그 이후로 밖에 나가면 항상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만 같고 뭘 해도 주변이 신경이 쓰여 자신이 너무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생각도 안했어요. 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그래도 주변에 저를 챙기려는 친구들이 있어 가끔 대화는 했지만 항상 남에게 맞추는 대화를 했어요. 그냥 맞장구 쳐주고 웃어주고. 제 이야긴 회피하며 남에게 배려하며 이야기 속에 저는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고등학교 때엔 정말 학교가기가 싫었습니다. 친구들이 놀리는 것도 싫었고 정말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는 말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겠네요..
집에서는 항상 혼자여서 무기력했고 저를 챙겨주려는 친구들의 연락은 무시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집에 있게 되었고 결국 인터넷만 하게 되고, 점점 움츠려들고 저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생활하는데 제가 없어요.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졌고 삐뚤어지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별 생각 없이 들어간 대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다른 학생들 하는 대로 따라하고 늘 뒤쳐졌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졌고, 자기 주도로 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하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하기 싫어져 버렸어요. 그렇게 저를 잃어버린 채 지내다 걱정하던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에서는 저를 찾은 것 같았어요. 운동도 곧 잘하고 말이 없고 숫기가 없으니 겸손하고 착해보여서 선임들이 잘해줬어요. 저는 그대로 후임들에게도 항상 따뜻하게 대해줬었고, 항상 힘든 게 없는지 살피고, 도와주며 동기들과도 너무 잘 지냈고 간부들에게도 인정받으며 웃으며 생활했습니다.
다시 초등학교 때처럼 제 생활 중심에 제가 있었어요. 거긴 남에 시선도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외모도, 학벌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깐요. 그저 맡은 일, 본인이 가진 계급에 따라 주어진 일만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 되었고, 제 자신에게 난 왜 그 동안 이렇게 살았지? 학창 시절에 왜 내가 주체가 되지 못했지 라는 물음도 처음으로 제 자신에게 물을 수 있었습니다. 21년만이었어요.
그래서 휴가를 받으면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열정을 가져봐.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을 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긴 모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잖아요? 너무 포괄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제 자신이 창피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신기했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의 생활로 인해서 제 진로를 정하는 방법도, 정할 경험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박혀 인터넷만 하고 있었으니 밖에 나가 뭘 해야 하는지 까마득했습니다. 앞이 캄캄했어요. 군 특성상 컴퓨터 인터넷도 못하여서 정보도 얻기 힘들었습니다. 모두 핑계이겠지만요..
남들은 군에서 시간이 안 간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전 반대였어요. 다가오는 전역이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컸습니다. 간단한 스펙조차 없고, 뭘 해야 될지 몰랐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 갔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전역을 했습니다.
군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남들에 대한 시선이나 제 나름대로 몸과 마음들은 나아졌지만 사회에서 생활할수록 다시 움츠려 들었습니다. 다시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와 버린 기분이었어요. 군에서 전역하기가 무섭게 다시 제 주체를 잃어갔습니다. 그냥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이겨내려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번은 공장에서 면접을 봤는데 당시 전역해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지 않고 자퇴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고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처음 보는 시선이 달라져 버리더라구요, 다시 학벌, 외모, 외향인이 주요한 사회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다시 집에서 두문불출 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사람들과 잘 마주치지 않는 노가다나 물류센터에서 1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몸이 불편한 대신 많은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어서 참고 했습니다. 그러다 1년 가까이 하다 보니 올해 초에 허리에 무리가 왔고 팔과 무릎이 다치는 바람에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제게 너무 많은 것들이 엉켜있다고 생각합니다. 회피, 낮은 자존감, 사회 기술 등 집에 있으니 또 어찌나 그렇게 무기력해버리는지, 독립하고 싶었어요.
집이 제겐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공간이니 다른 곳에서 원룸을 구해 살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러면 사회성도 길러지고 남들의 시선에 익숙해질 것 같았죠, 하지만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군에 있던 전 없어졌고 다시 방향 없이 시간만 그대로 흘려보내버리는 저로 돌아왔습니다. 군에서 지내는 연락 오는 후임들이나 밖에서 절 아끼던 선임들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얼마나 서운할까요..하지만 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결할 실마리조차 찾질 못했습니다. 알아도 못한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낮은 자존감에 부정적인 기대가 미치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엔 무기력해져 노력은 하지 않고 불안은 높아져서 실패로 악순환이 되어버려요.
인터넷에서 저 같은 고민을 많은 분들이 많은 분들이 하고 있더라구요. 그 고민들을 보면 같은 입장인 저로써 느낄 수 있는 것이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이 치열한 생존사회에서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 안에서든 밖에서든 외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늦더라도 제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싶습니다. 남에게 신경 쓰지 않고 저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저를 찾고 싶어요. 세상이 바라보는 기준과 잣대에 저 자신을 끼워놓고 싶지 않습니다. 남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다고 제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를 찾고, 맞는 일을 공부하며 가져서 이젠 부모님 걱정 덜어드리며 항상 긍정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답변:
마음 아픈 세월들을 참 오랫동안 보내오셨군요. 가정생활에서나 학교생활에서나 내외부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향한 모든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으세요. 물론 자기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도 내려놓으셔야만 합니다.
지금 현재 24살의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어린 아이 같은 마음과 행동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따뜻한 환경 속에서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육체적으로 이미 다 성숙해버린 님의 내면에 남아있는 어린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에 갈등이 증폭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더욱 힘들 수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한 순간에 아이가 다 커버릴 수 없듯 내면의 아이가 성숙해질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와 지지적 환경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시골초등학교나 군 시절의 조직과 같이 나름대로 위계가 있으면서도 우호적이고 따뜻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의 책임이 그렇게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은 환경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다시 군부대에 직업 군인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나 사회봉사 단체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가족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의 기업이어도 물론 좋겠죠. 몸을 움직이면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나 기술관련 계통 일도 좋아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 대기업 생산직이나 기능직 관련한 직종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은 반복적이어서 다소 질릴 수도 있겠지만 우선 안정적이고, 관계를 계속 엮어야만 하는 부담도 적을 테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기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상태로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상황은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므로 당장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에서 저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대학을 중퇴한 것도 잘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시간만 보내며 대학에 남아 있기보다는 사회로 나와 일과 경험을 통해 당장에 해야 될 삶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에 몰입하면서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만하고 고민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더 바쁘게 만들어서 그러한 불편한 심정을 털어버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젊은 날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죽고 싶었던 심정으로 인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너무 버거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럴 때 일수록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났죠. 깨어 있는 동안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익힐 수 있었고 내가 했던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힘들겠지만 매일 그렇게 자신을 동기부여 해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부모처럼 돌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제가 ‘취업진로지도 강사’ 교육과정을 개설했습니다. 정확하게 관련한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교육에 참여해보시면 분명 새로운 자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작은 동기도 부여받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교육이 아니어도 운명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과제를 부여하며, 마주치는 모든 삶에서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나간다면 분명 잘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겪어온 역경을 잘 딛고 일어서면 그 역경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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