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무수히 고민하고 갈등하는데, 하물며 직 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야 오죽 막막하겠는가. 그렇게 직업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변화경영 전문가 故구본형 소장의 이야기가 직업선택의 중요성과 직업관에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 같아서 그의 강연 내용을 요약해 전달해보고자 한다.
그가 살아생전에 필자가 운영하던 행사에 초대해 강연을 했던 시간이 불과 2년 전이었는데, 너무나 건강해보이던 그가 올해 4월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고인이 되었지만 살아생전에 남긴 말씀은 귀한 씨앗으로 열매를 맺지 않을까 한다.
대학원 시절에 늦은 시간에 수업을 들어야하다 보니 허겁지겁 수업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참석할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배가 고팠었다. 그런데 배부르게 먹고 수업에 참석하면 꼭 졸음이 쏟아졌다.
‘여러분들 중에서 굶고 오신 분들도 있을 것인데, 귀한 시간을 내면서 왜 여기까지 오셨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봤다. 아마도 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1인 기업가’라고 이야기한다. 10년 전에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냥 1인이 기업을 할 수도 있다는 개념이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해 나의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으로 보면 내 삶의 변화과정이 여러분에게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무실이 없다. 임대료 나가지 않아서 좋다. 집이 곧 사무실이다. 여기서 일이 시작되고 여기서 일이 끝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사무실이다. 현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나의 사무실이다. 이것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가치다. 나 자신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서 사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고용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을 부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를 직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의 줄임말을 ‘고된자’라고 하더라.
나는 한 외국계회사에서 20년을 일했다. 고된 삶이었다. 사실 일 자체가 고된 것은 아니었다.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자신을 고용하는 자는 이런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직장인에게 ‘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직업을 왜 가질까? 직업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직업은 본질적으로 다음의 것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1) 밥 먹는 일
2) 일을 통한 성장
3) 조직과 사회에 가치구현
1) 밥 먹는 일
여러분은 일을 왜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밥이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 그런데 밥이란 무엇인가? 밥이란 단순히 연봉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다음과 같이 밥에 대해 정의를 잘 내리고 있다.
‘밥이라는 것은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서 먹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슬픔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공양한 생명체들의 은덕도 모르고 살아가는 배은망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은혜를 갚으려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주적 존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일을 통해서 보답해야 한다.
2) 일을 통한 성장
그러면 나를 위해 희생한 우주적 존재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의 일을 하면서 더 나아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직장인의 비극이 초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영학자 드러커는 1년짜리 경험을 10번 반복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10년간 일해 봐야 행정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문가가 되기는 없을 것이다. 반복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다 성숙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맨다.
3) 조직과 사회에 가치구현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직무를 통해 조직과 사회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기업에 도움이 되고, 내가 속한 이 사회에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일할 의미가 무엇일까.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만 직업의 본질이 충족될 수 있다. 직업을 갖는 사람들의 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젊은 조직’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은 젊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젊은 조직이란 뭘까? 한 기업 담당자를 만나 ‘젊은 조직’이 뭔지 물어봤다. 담당자는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르다고 말하더라. 젊은이들은 젊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이든 사람들은 생각이 젊으면 된다고 받아들이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까지는 부모가 경제적인 지원을 대부분 해준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일하는 기간을 따져보면 대략 25년 정도 된다. 그 시기가 50대인데, 50대 중반이 되면 조직에 남아 있으려고 해도 남아 있기 힘들어지는 시기다.
아직도 남은 인생은 많기에 하긴 뭘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할 것이 없다. 장사나 하려고 해도 돈도 많이 들고 해서 조그만 커피숍이나 분식집이나 음식점 정도를 운영해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매일 먹고 마셔왔던 일이기에 그 정도 일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 자영업이다.
그러면 50대 이후의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마땅한 대안이나 모델이 없다. 단지 10% 정도의 사람들만이 제 몫을 하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가 10% 안에 들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자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20년간이나 몸담았던 직장생활을 나와서 성공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IBM이라는 곳에 20년을 근무했다. 역사학을 전공한 나는 우연히 IBM에 입사했다. 원래 내 꿈은 역사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내 꿈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1980년도에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원을 들어갔다. 아시겠지만 1980년대는 군부 시대로 우리 시대에 암울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존경하던 스승이 지식인으로 운동을 하다가 대학교수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유학을 못 가게 되었다.
그렇게 졸업하자 취업 일자리부터 찾게 되었다. 내 기준은 초봉이었다. 초봉이 많은 곳에 들어가면 유리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초봉이 많은 곳은 국내 기업보다는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에 있는 외국계기업 100여 군데에 영문이력서를 발송했다. 3군데 밖에 연락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역사학과이다 보니 기업들이 선호하는 학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군데 연락 온 기업 중에 IBM이 있었다. 학과도 따지지 않고, 게다가 토요일까지 휴무인 회사에서 이 회사를 다니게 됐다.
첫 4년은 외근업무만 하고 그 후 7년까지 변화경영을 하였다. 이때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일을 좋아하긴 했지만 정작 스스로의 인생에서 뭘 해야 될지 몰랐다.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느끼다
많은 기업들로부터 변화 요구가 있어서인지 IBM에서는 체인지 에이전시(Change Agency: 변화주도자)를 필요로 했다. 160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도 변화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IBM 싱가포르에 지원했다. 거기서 경영 컨설턴트로 만3년 간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를 느꼈다.
사실 그 전까지는 ‘경영혁신 팀장’, 이것이 내 직업적 정체성이었다. 이후로 나는 ‘한국 최고의 변화경영 전문가가 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하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생각의 전환을 겪은 다음에는 공부해야 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싱가폴 일자리는 묵묵하게 컨설팅 현장의 자리만 지켜야만 했던 별 볼 일 없는 직무였다. 하지만 초라했던 그 자리가 나를 깨닫게 만든 중요한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따라서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어떤 직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개인의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코멘트:
국내 1인 기업가로서는 최초의 활동가라고 볼 수 있는 구본형 소장이 지난 4월 13일 향년 59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충격을 받았는데요. 아무런 조의도 표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제가 운영 중이던 자기경영 클럽에 모셔서 강연을 해주셨는데요. 당시에 너무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고 건강해보이셨는데 하는 생각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에 직장인들에게 들려준 밥철학은 지금도 제 삶에 작은 교훈이 됩니다. 밥 한 톨이라도 함부로 먹지 않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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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청춘의 진로나침반>,<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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