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지레짐작으로 자신의 꿈을 미리 접지 마라!
안녕하세요, 정철상 교수님.
일단 제 자기소개부터 하자면, 저는 지방국립대 문헌정보학과를 재학 중인 여대생입니다.
그리고... 저의 사회적인 위치를 좀 더 말해보자면.. 전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자그마치 12년 동안 ... 기초생활수급권자였던 것 같네요. 아빠는 6살 때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엄마 밑에서 2살 차이나는 여동생과 함께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정신이 약간 ...부족하셔서.. 나라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사기도 당하시고..종교에 빠지시기도 해서,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먹으면 쌀이 아닌 조로 지어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랬던 저의 청소년기는...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었어요. 이건 정말 말로는 더 표현 못하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땐 그냥 공부했습니다. 이상하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했고, 성적도 그럭저럭 잘 나왔습니다. 집에 컴퓨터도 제대로 없는 그런 환경이어서인지 .. 제 마음과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건 공부밖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네요..그리고 고등학교 땐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공부밖에 없단 걸 깨달아서였습니다.
그런 제 상태는 겉으로나 안으로나 많이 어두웠습니다.. 집에서 엄만 종교에 빠져서 나 몰라라 하고.. 동생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저를 무시했구요...아무 것도... 버팀목..이랄지. 애정을 쌓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없었어요. 그러니.. 제대로 친구들하고 관계도 못이어 갔구요. 이어가도.. 떠나기 일쑤였어요. 넌 너무 힘든 얘기만 한다구요..
아무튼..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좋지도 않은 머리를 붙들어가며 공부했습니다. 학원은커녕.. 문제집 한권 사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한 권 가격이면 밥을 몇 끼를 먹을 텐데.. 하면서요..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그나마 국립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형편의 제가.. 대학교를 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공부할 수 있단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따로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잠들기 전에 상상을 하고 잠드는 ... 그런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꿈이라고 해야 할지....목표라고 해야 할지,,하지만 분명한 건 항상 생각해왔던 저의 미래, 희망이었던..그림..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터디자인, 게임캐릭터,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이런 쪽에 관심이 있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매일 상상을 해요.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아니, 어떤 식으로든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자퇴하고 미대에 들어가는 상상... 그래서 제 세계가 가득 담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게임회사나 디자인회사에 내러 다니는 ..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잠듭니다.
이런 상상을 시작한 게.. 중학교 3학년 이후부터였어요. 그래서 이런 제 꿈을 이루려면 일단...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루어야겠다. 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헌정보학과로 진학했구요... 진학할 당시 ...
'책을 읽으면서 6시까지 근무하고.. 그 다음에 미술학원을 다니고 어떻게든 하면 난 만화가도, 일러스트레이터도 될 수 있을 거야.'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왠걸....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서라는 직업은 전문적이었고, 어려웠습니다. 다른 꿈을 위해, 단지 돈을 벌기위해 할 수 있는 징검다리식의.. 쉬운 직업이 아니었던 거예요. 이용자에 대한 봉사정신이 없이는 안 되는 그런 직업이었어요.
그런 거 저런 거 다 제쳐두고서라도 가장 중요한건 그 공부도 어려웠습니다... 근 2년간 전... 제대로 공부를 해본 게 손에 꼽힐 정도로 문헌정보학이란 학문에 정이 가질 않았고,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도대체 왜...돈이 뭔데..." 란 생각만이 맴돌았어요..그렇다고 .. 그런 만화예술창작과, 만화영상애니매이션과,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등등의 미대를 갈 수 있는 형편은 당연히 안됐죠...대학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지경인데요...
그렇지만, 이제 대학교 3학년... 2년을 억지로 붙잡고 ... 그래도 공부 ... 해야 하니까... 하면서 울면서 공부했고... 그렇게 보냈는데..앞으로 이 전공을 2년간 또 해야 한다니요...........
이젠 사서가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공무원 준비?.. 그런 거 할 엄두도 안 납니다. 하기 싫어요... 돈 하나 때문에 하고 싶은 꿈을 계속 족족 접어야하는 제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너무 밉습니다.
지금 학교 휴학하고 미대 편입 준비하고 싶은데...입시학원 돈이 ... 한 달에 45만원이래요. 그건 어떻게 1년간 마련할 수 있다 치면요. 그 다음 등록금은... 450정도 되는 사립 대학교 미대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할지.. 국가장학금으로 230만 원 정도 받고 나머지 200만원은 대출하면 되는데요..
사회 졸업할 때 대출 빚이 ... 1천만 원을 넘길 거 같구... 지금 대학은.... 제가 국가장학금으로 인해 아예 0원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거의 빚을 안내고 사회에 나갈 수 있는데...그래서 더 ............ 지금 편입준비를 하는 게 어이없는 거 같네요.
그냥 이 대학 다니면서 졸업하면 되지 ... 공부야 그냥 또 울면서 하고.......... 어떤 게 합리적이고 ... 그런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당연히 그냥 공부하는 거 참는 게 나은 거겠죠 ...?
앞으로 저는... 지금 이대로 이 대학에서 원하지 않는 학문 배우면서, 그냥 다니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서. 또 계속 그림은 그리고 싶겠죠..
사실은 지금 이 대학을 다니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공무원 사서는 절대 안 하고 싶어요.. 지쳤습니다. 그냥..졸업하면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돈 벌면 되겠지.... 란 생각만 하고 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론 "미대 졸업하면 여기 회사를 가고 저기에서 뭘 하고... " 이런 생각하고 있어요..ㅠㅠ
자세하고 상세하게 쓰라고 하셔서 상세하게 쓰느라고 좀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왠지 넋두리가 됐네요..
다시 한 번 읽어주시느라, 시간 써주시느라 감사합니다..
답변: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진로결정 순간에서 잘못 선택하셨네요. 당연히 원하는 학과로 가셨어야죠. 그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경제적 형편 때문에 등록금을 안 내도 되는 국립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국립대 중에서라도 해당 유관학과가 있는 곳으로 지원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 듭니다.
하지만 이제와 지난 2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겠죠. 비록 잘못된 학과 선택이었다 해도 편입준비에는 반대합니다. 준비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써야 하고 그렇게 편입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모르겠지만 또 다시 엉뚱한 전공을 선택한다면 말씀하신 직종으로 취업하기는 상당히 힘듭니다. 희망학과로 취업해도 4년제 대학에 편입해서 남은 2년 공부해봐야 경쟁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경제적 여력이 없어 계속 심리적으로 압박감에 시달리며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꼭 전공을 바꾸고 싶다면 저는 오히려 2년제 전문대학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체면을 버리는 것이 어려울지 모르겠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2년제 대학에서 보다 실용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정확하게 희망하는 학과로도 들어가기가 쉽고 졸업 후 취업도 용이할 겁니다. 잘만 알아본다면 과거의 성적이나 또는 새로운 수능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거 해야죠. 경우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이라도 둘러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혼자 ‘안 되겠지’라고 지레짐작해서 돌아갔다가는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존하는 방법도 있는지 늘 최우선으로 고려한 다음에 차기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좀 더 당당한 자세로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교제하는 방법도 기르고, 사회를 살아가는 생활 학습도 부지런히 해나가시며,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데도 절박함 없이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이 그 마음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독하게 가난이 싫었는데요. 결국 그런 마음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의 힘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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