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 번 직업을 경험했다. 누가 보면 밥 먹듯이 직업을 바꾼 셈이다. 그러니 친구들이 “정신 좀 차리고 한 군데 딱 붙어 있어” 하고 걱정 어린 한마디를 건네도 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싶지 않았으니까…. 좋은 직장 한 곳에 딱 붙어 있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젊은 시절의 내 능력으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특출한 능력이 없어 입사 관문에서도 수백 번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나마 취업한 직장은 규모도 작고, 보수도 적고, 고용형태도 늘 불안했기에 뜻하지 않게 직장을 옮겨 다니는 일이 많았다.
(독서를 사랑하는 모임 We CEO 강연을 마친 후, 유료에다 토요일 저녁에 한 강의였으나 좌석을 가득 메워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www.weceo.org)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봉제 공장 직공에서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직업을 거쳤다. 어떤 친구들은 이런 내게 “참 능력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능력이 좋아서 직장을 옮긴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들어간 방송국이라는 허울 좋은 직장은 해고로 끝이 났다. 누가 첫 직장에서 해고당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실 정규직도 아니었다. 외주 제작팀에 속해 있었으니 언제든 내몰릴 수 있는 처지였다.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가 당한 일일뿐이다.
내게는 학벌, 인맥, 집안, 지능, 재능, 의지력, 어학 능력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만한 것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누구의 힘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는 현실을 어린 시절부터 온몸으로 터득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이곳저곳 직장을 헤매다 서울에 겨우 올라왔건만, 내 연봉은 대기업 신입직원의 반 토막 수준이었다. 헤드헌터로 일할 때였다. 헤드헌팅을 의뢰해온 내 또래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나보다 두세 배나 연봉이 높다는 걸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그나마 있던 재산도 주식으로 모두 날려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조그만 월세 단칸방과 아내 몰래 숨겨둔 빚더미뿐이었다. 도저히 더 이상 삶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면 뛰어들고 싶었다. ‘뛸까 말까’ 고민했지만 못난 놈은 그럴 용기도 없었다. 사실 죽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결코 아니었다.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갈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니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빚더미밖에 없는 밑바닥이지만 일어서야만 했다. 분명, 혼자 힘으로.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버거웠다. 과거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뼈저린 후회가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어딘가에 몰입하지 않고는 바보스러운 나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일에 매달렸다. 죽어라 매달렸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을 예사로 여기곤 했다. 일에 몰입하지 않고는 어리석은 회한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몇 년을 허위허위 살아갔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는지 돌이켜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내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삶의 냉혹한 현실이 아니던가. 나는 또 다른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 비록 끊임없이 직장과 직업이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어느 순간 내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삶의 길도 보였다. 볼품없던 내가 기업 책임자가 되고, 어느새 대학 강단에 서고, 텔레비전에 출연도 하고, 여러 권의 책도 썼다. 내가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갈구했던 내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돕는 위치에 서고 보니 나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직업적으로 갈등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가진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글을 쓰고, 강연하고, 커리어 코칭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직업 전문가로 10여 년간 살아오면서 내가 들여다본 이력서만 해도 2만 통은 족히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지면으로 만났다. 더불어 한 달에 20, 30회 정도 강의 행군을 하며 수많은 청중을 만났다. 상담하고 코칭한 사람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만난 사람들까지 헤아리면 몇 천 명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한 명 한 명, 그들과 나눈 소중한 이야기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러한 배움과 내가 만난 무수한 삶의 애환을 담아보고자 펜을 들어 [서른 번의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집필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서른 번 넘게 직업을 바꿔야 했던 내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굴곡진 삶의 굽이굽이를 오르내렸던 나만의 생존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일과 직장으로 갈등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면서 곧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애면글면 살아온 내 삶의 이야기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정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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