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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故김수환 추기경도 생전에 죽음이 두렵다고 고백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3. 5.
 

세속화된 기독교 반성해야-김수환 추기경
과학자들의 무신론적 풍조 문제라고 지적.

흉악범 마저 회개하면 맑고 평화스러워.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당신.

유학자들, 천주교 죽음의 태도 존중했다.

다산 정약용, 하느님이 있기에 홀로 있을 때 삼갈 수 있다고 말해.

 

김수환 추기경

아인슈타인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했다. 종교와 과학을 통해서 신의 이야기를 했다. 현존하는 과학자 중에 물리학 노벨상 칼 루비아라는 과학자가 있다. 유럽 공동체 안에서 핵물리학 자문 연구기관 소장으로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태양계를 말한다고 하거나 분자를 말한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연과학자로서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우주가 이뤄진 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우주 전체를 관할하는 존재가 있다고 믿고 있다.’


도올 김용옥

전통적으로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똑같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유학자들이 천주학을 반대했던 것이 어떤 하느님이 우주 전체를 관할하는 존재라고 말할 경우에는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도깨비나 인간처럼 존재하는 하느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비판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는가?


김수환 추기경

처음 듣는 이야기다. 천주실의에도 나온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달리 말할 수 없다.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의 비판이 아닐까 한다.


도올 김용옥

정약용 같은 사람의 경우 심독, 즉 홀로 있을 때 삼갈 때 진정으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사람이 왜 산중에 홀로가면 두려워하는가. 이유는 호랑이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동묘지를 갈 때 두려워하는 것은 귀신이 있기 때문이고, 혼자 있을 때 두려워하고 삼갈 때 상제가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용의 심독이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게까지는 받아들였지만 정약용은 상제로서의 하느님 혹은 우주의 지배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하느님의 구체적 형상을 가진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수환 추기경

그것은 도올 선생이 일부분만 읽으신 것 같다. 강진 유배시에 다산 정약용은 회개하였다. 복음의 전도사가 되었다. 복음서를 쓰기도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없어졌지만 프랑스 신부의 비망록을 통해서 다산의 복음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의미로 과학자들이 신을 인증하지 않는 듯한 학풍이 있는 것 같다. 공자도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하느님의 뜻 천명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인간관과 공자의 인간관도 같이 합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존엄하게 창조하였다. 당신의 모습과 같은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이 인간에게 세상을 지배할 권한과 능력을 부여하셨다.


인간을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선악과의 죄악을 짓고 죽음을 초래했다. 생명의 근원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하셨다. 죄에 떨어진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한 드라마를 담은 것이 성경이다.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인간 모두의 죄를 대속해 죽기까지 하셨다.


우리 인간 하나하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다. 만일 누군가 ‘하느님의 제일 큰 관심사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바로 너’고 말할 것이다.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역시 ‘바로 너’다고 하실 것이다.


인간이 어떤 처지에 있든, 희망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존재조차도 귀한 하느님의 존재다.


심지어 흉악범, 살인범까지도 감화되어 신자가 되고 나면 달라진다. 다른 신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주로 가톨릭 신자들을 만난다. 회개하면 그 얼굴이 맑고 평화스럽게 변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다. 태연할 정도가 아니라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정도가 된다.


편집할 때 다 커트할거지. 내가 이런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청중 하하하)


공자님은 천인합일에서 보았듯이 하느님이 언제든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셨다. ‘나를 알아보는 것은 저 하늘뿐이구나.’ 하는 말씀도 하셨다. 그것도 인격의 신이라 하더라도. 하늘이 나에게, 이렇게 내편이 되는데 누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말인가.

물질주의적 현대와 다르다.


도올 김용옥

정약용 같은 분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도덕적인 절망감이었다. 조선의 여러 가지 병폐, 주자학의 소모적인 이기론 논쟁에 지쳐가던 때. 하느님이 인간을 존엄하게 지으셨고, 항상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변할 수 있지 않겠느냐하고 천주교를 수용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 기독교가 그렇게 순교와 박해를 받아왔지만 일정부분 유교의 나쁜 점을 본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세속적 공명, 파벌싸움, 현세적으로 과시하고 그야말로 유학자들이 반성하며 바꾸어오고 싶어 했던 것을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어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오히려 기독교가 종교적 병폐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수환 추기경

반성해야 한다. 하느님의 믿음과 복음을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올바르게 나아가야 하는데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세속화된 부분도 있다.


도올 김용옥

유학자들이 기독교 선교사에게 감동을 받았던 것 중에 하나가 죽음에 대한 태도였다. 제사를 통해서 자신의 영속이 된다는 믿음, 자손이 있어야 하고, 아들이 있어야 하고, 그 아들에게 돈이 있어야 하고, 이렇게 제사 받을 환경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 죽음에 대한 상당한 부담감이 많았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 밥을 드리지 않는데, 영면을 하셨는데 거기다 밥을 드리면 얼마나 부당한 일이냐고 말씀하셨던 유학자도 있었다. 어떻게 나무속에 조상님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


더불어 어떻게 홀가분하게 죽을 수 있느냐하는 고민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천주교의 도움이었다. 그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김수환 추기경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죽음은 두렵다. 사실 나도 그렇다.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왜 이렇게 죽음과 병고의 고통을 주는가하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고통에 방치하는가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 참고로 이 내용은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 생전에 KBS 도올논어 특강에서 하신 말씀을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의 군더더기가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도올이 나눈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종교 토론은 다음 마지막편에서 좀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기록을 저장한 USB가 망가부서져 자료가 늦게 연재되었음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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