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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식 독불장군으로 살아남는 전략 “마이너리티 인플런스 전략"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12. 8.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종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마에 신드롬의 불씨는 남아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분출한 강마에의 카리스마에 대리충족을 느꼈던 것이다.


“나도 한 번 해볼까?”라고 마음먹고 강마에식으로 사회 생활했다가는 왕따 당하기 쉽다.

그렇다고 “우리 조직에 순응하면서 살기만은 싫다. 이미 나에게는 힘이 없다. 변화를 주고 싶다. 나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강마에가 사용했던 ‘마이너리티 인플런스’전략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인플런스(minority influence)’현상은 “집단이나 조직 가운데 소수파로 존재하면서도 다수의 의견에 양보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주장하면 다수파를 움직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의지와 주장이 집단의 의견을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즉, 소수파가 다수파를 움직이는 최고의 심리 작전이다.”이라고 <사람을 읽으면 인생이 즐겁다>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모난 돌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괜히 튀였다가 ‘한 대 얻어맞거나, 소외당하기 쉽다.’ 그러니 함부로 반대 의견을 표출하지 못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며 집단의 의견에 묵묵하게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다수가 오늘의 회의 주제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저는 오늘의 모임 결과에서 이런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원 취지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들이 논의되어야 했으나 오늘 회의는 이런 부분을 다루지 못했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는 의견을 표출했지만 이런 방식은 잘못되었다봅니다. 심각하게 제고하지 않는다면 저는 결코 이 모임의 의견을 뒤따를 수 없음을 밝힙니다.”



이런 말 한마디는 전체 분위기를 쏴하게 만든다. 발언한 사람을 즉각적으로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나도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아, 속 시원하네.’, ‘자기주장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야.’라고 동조자들이 늘어난다.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도 ‘맞아. 내가 생각을 못한 부분이 있어. 저 사람 의견이 맞을 수 있어.’, ‘뭔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야.’,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자구.'라고 생각하며 동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무 때나 아무 의견에서나 틔면 정말 돌 맞는다. 말하자면 강마에가 그런 식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주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너무나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줄 때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해야 됨에도 강마에와 같은 리더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지른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면서도 결국 리더의 말에 수긍하며 그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 MBC '베토벤 바이러스' 홈페이지중에서. 날카로운 눈빛과 특유의 음색과 케릭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강마에 역의 김명민의 연기가 돋보인 드라마였다.)

"여러분들은 너무 착해요. 아니 착한 게 아니라 바보입니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애 때문에 희생했다? 착각입니다. 결국 여러분들 꼴이 이게 뭡니까?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생활은 어렵고, 주변 사람들 누구누구 때문에 희생했다. 뭐했다. 이런 피해의식만 생겼잖습니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중의 한 대사. 음악계의 이단아로서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강마에. 순하고 착하게만 살아가는 그의 단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강마에식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다만 요즘 강마에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강마에 식으로 살다마 트러블이 많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특히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즐겨봤던 사람들이 사람들에 대한 비평을 공격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힘과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철저한 고립감을 견뎌낼 수 있는 신념과 믿음이 있을 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조직 생활에서 큰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덧글.
역사상 위대한 소수는 소크라테스와 예수 등의 선현들을 들 수 있다. 살아생전에 존경도 받았다. 하지만 질투와 시기심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대, 위대한 자로 살아가려면 영원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