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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대중교통에서 손톱 깎는 사람, 어떻게 해야 하나요?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8. 28.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몰상식한 인간들 만나신 적 있으십니까?

가끔은 '개똥녀만도 못한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백마역 통근열차에서 겪은
굴욕적인 사건을 솔직히 이야기 해드립니다.

 
일산으로 이사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직업 특성상 이동이 많다 보니 서울역에 자주 들린다.

우리 집 부근에 백마역이라는 곳이 있어 서울역으로 향하는 통근열차를 이용해 이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열차나 지하철을 타면 바로 책을 본다. 서울 생활에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이런 대중 교통시설의 혜택이다. 워낙 잘 만들어져 있다 보니 웬만한 곳은 모두 다 갈 수 있다. 1,2시간씩의 장거리를 왔다갔다하다보면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수도 있다.

대개 북적북적거리고 웅성웅성하는 소음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 책 읽기의 집중이 더 잘 된다. 소음의 패턴이 비교적 일정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일정하지 못할 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마역에서 찍어두어던 사진, 경의선으로 원래 북한까지 연결되었던 철로, 주로 이 경의선 열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곤 했다.)

시끄럽게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이 옆에 있거나, 외판원이 상품 판매하기 위해 침 튀기거나, 종교 믿으라고 소리치시는 분들이 고함을 지르거나, 술 취해 고성방가를 해서 대체로 데시벨(db)이 높을 경우다.

그런데 종종 아주 저음의 기계음도 상당히 거슬린다. 게임을 하거나, 문자 소리 들리거나, 모종의 기계음 등이 그렇다.

서울행 통근열차에 올라 책을 읽고 있는데 어르신이 타셨다. 책 봐도 볼 건 다 보인다. 아직까지 모른 채하기는 힘든 시대다.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똑딱똑딱하는 기계음 같이 귀에 거슬리는 저음 소리가 들린다. 참고로 통근열차는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긴 좌석이 있다. 내가 있던 자리도 바로 그런 자리였다.

집중이 안돼서 ‘무슨 소리지?’하고 뒤를 돌아다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바로 돌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찰나적 순간에도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훤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웬 20대 중반의 깍두기 같은 스포츠 머리의 떡대좋은 청년이 손톱을 깎고 있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사람들이 많은 이런 통근열차에서 그것도 바닥에다 손톱을 깎아 버리고 있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_-;;;;;;;;;

책에 집중해서 읽으려고 하니 도저히 집중이 안 되었다. 집중이 될 턱이 있나. ‘이런 몰상식한 인간이 다 있나?’하는 생각에서부터 ‘괜히 이야기했다가 시비 걸었다고 얻어맞아서 안경 깨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이런 상황을 알텐데도 다들 모른 채 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본 그 짧은 순간에도 깡패처럼 불량스러운 자태가 한 눈에 드러나는 인간이었으니 괜히 의협심을 내세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소위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작자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고 한 마디도 못한다면 선생 자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뒤를 돌아다 보고 한 마디 던졌다.

따(따뜻한 카리스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깍(깍두기): 왜요. 보면 몰라요? 손톱 깎고 있어요???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바로 주먹을 한 방 날리고 니킥으로 돌려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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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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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__-;;;


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죠. (강경 모드)
깍: 그래서 뭐 어쩌라구요??? 네에~~~(시비조 모드)


따: 주워야죠. (의기소침해지며, 비굴 모드 전환-_-;;;)
깍: 못 줍겠어요. 왜요. 기분 나빠요??? (전투 모드 돌입)

‘아, 이거 어쩌나’하는 난감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략 난감. 이거 한방 치고 받고 오늘 일정은 쫑 내야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라는 공포가,,,‘설마 죽기야’,,,하는 등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안 도와주었다. 허긴 도움을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다. 사실 당시에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계속 그런 상태로 옥신각신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깍두기 곁에서 자고 있던 한 여학생이 벌떡일어나더니 용감하게도 그 청년을 잡았다.

순간 당황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저를 구해주려고 하다니.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하고?

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자기 빨리 내려-__-;;;

휴, 그 깍두기의 여자 친구였다. 그런 친구도 여자 친구가 있다니 기적이다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서울역에 도착해서 여자 분이 그 남자를 이끌고 내렸다.

모든 승객이 내렸는데도 저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래도 남은 손톱을 보면서 씁쓸했다. ‘내가 치울까?’라는 정신도 없었다. 그냥 멍하게 남은 손톱들을 바라만 봤다.

한편으로 지나고 보니 그 청년이 이해되기도 한다. 젊은 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공중도덕과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개똥녀보다도 못한 예의없는 괴물들을 우리사회가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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