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를 올해초 봤습니다. 주연으로 출연했던 윤정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였다는 생각에 제 소감을 글과 영상으로 담아봅니다. 편집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주저주저하다가 인생의 작은 깨달음과 위로와 위안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영상을 공유하오니 끝까지 시청해보시길 권합니다. 글이 편하신 분들을 블로그를 통해 봐주셔도 좋겠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더 깊은 울림을 남기는 영화 ‘시(詩)’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VxJ104SXDSk
블로그로 보기: https://careerlab.tistory.com/3704
혹,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라면 꼭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시(詩)’가 무엇인지,
‘인생(人生)’이 무엇인지,
‘추함’이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추하고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찰(考察) 하실 수 있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되실 겁니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의 다큐멘터리 같지만 정말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이해하려면 5,60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2,30대임에도 그 깊이를 헤아리는 청년들을 보면 참 부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 세상에는 희망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는 평범하지만 순수하게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창동 감독은 인간이 그리 순수하게 살아갈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 더럽고 추잡하고 어두운 측면을 뚫고 들어가야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깨움을 줍니다.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진 주인공 미자는 손자와 둘이서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입니다. 조그만 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늘 예쁜 모자와 꽃무늬에 구두가 어울리는 멋진 할머니죠. 어쩌면 남들 눈에는 철이 없어 4차원적으로 보이는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미자는 우연히 시 창작수업을 발견하고 정원이 이미 마감되었음에도 부탁하여 수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시인은 수업과제로 모두 시 한편을 써야한다고 말하죠. 미자는 그렇게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애씁니다. 아무리 시를 써보려 해봐도 한 구절 쓰기도 쉽지 않아 시인에게 ‘시상은 언제 떠오르냐’고 소녀처럼 묻죠. 시인으로 출연한 김용택 시인은 시상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먼저 다가갈 때 그때 어느 순간 떠오르게 될 거라 대답합니다.
어쩌면 영화 시는 주인공 미자의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도 불 수 있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들려주는 <아그네스 노래>라는 이름의 시는 무척이나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그래서 각종 카페와 블로그와 SNS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회자되기도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이 시를 제가 한 번 읊어볼까요.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 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에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 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저는 이 시만 읽어도 눈물이 울컥 날 정도로 감정이 들었는데요. 실제로도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오늘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고 마음먹고 조용히 읊어 봤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의미를 한 번의 대사로 되새김질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의 그 뜻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읽고 또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 의미도 살펴보지 않고 이 시의 아름다움만을 가지고 ‘와, 좋다’고 하지 않나 싶어요. 다른 부분은 다 생략하고 아름다움만을 취하려고 하는 거죠.
물론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합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고 ‘와, 예쁘다’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맥락과도 일치하는 거죠.
그러나 나무와 꽃은 그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온 자신의 온갖 시련과 고통을 참고 생명의 에너지를 내뿜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주인공 미자는 자신 육신을 내어줄 정도로 자신의 손주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또 한편으로 자신의 영혼을 내어줄 정도로 세상에 피어난 꽃과 시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영화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놓아서는 안 될 순수한 마음을 잔잔히 전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마음이죠.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선한 생각과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이 영화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주인공의 미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시로부터 벗어나 아무런 욕심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크게 이룬 것은 없고 남다르게 특별한 일도 없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잔인한 운명의 여신은 평범한 우리들이 그렇게 평온하게 살아가도록 내어두지 않죠. 폭풍우치는 비바람과 같은 잔혹한 시련과 역경으로 우리의 운명을 옭아맵니다. 주인공 역시 그랬습니다. 사실 알츠하이머라는 초기 증세만 하더라도 앞으로 변해나갈 불운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영화는 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인 상황으로까지 내몰려가는 잔인함을 너무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어도 당장 그 순간에는 온전히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감당하기 싫은 마주치기 싫은 운명의 잔인함을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운명의 여신은 그렇게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한 불행을 만들어 내며 우리 인생의 길목을 가로막기도 하는 것이죠. 죽은 자는 그렇게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애써 그런 불행을 남모르는 척 살아가는 부조리를 드러냅니다.
주인공 미자는 피해자의 엄마를 찾아서 화해를 잘 시도해보라는 또래 부모들의 설득으로 피해자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집에는 없어서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는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요. 밭으로 가는 길에 떨어진 살구를 먹으며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떠오른 시상을 붙들기 위해 수첩에 기록해 둡니다.
살구는 스스로 제 몸을 땅에 던진다.
깨어지고 밟힌다.
다음 생을 위해.
어쩌면 이 대사는 미자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실제로 피해자 어머니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 멋쟁이 할머니가 길에서 떨어진 살구가 맛있다 하니 그렇게 떨어진 살구가 원래 더 맛있는 법이라며 응대해줍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미자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아무런 말없이 길을 떠납니다.
미자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다 큰 딸은 이혼해서 혼자 먹고 살고 있고, 손자는 큰 사고를 쳐서 난감한 상황이죠. 자신도 경제적으로 궁핍해 노인의 추파를 견디면서도 간병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고, 알츠하이머라는 진단까지 받은 어려운 상황이죠. 게다가 사고친 손자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5백만원을 구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늘 아름다운 것들 찾아나서는 미자. 실제로 온갖 꽃과 나무와 생명체들이 새롭게 보여 설렘마저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상이 잘 떠오르질 않는 겁니다.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순간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지만 사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이 무엇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손주가 죄를 짓고도 아무런 뉘우침 없이 TV보고 게임하고 친구들 만나고 학교 다니는 그 자체에서 인간 이면의 추함과 악함을 보았으리라 싶습니다. 비단 어린 손자 뿐 아니라 손자의 친구나 그들의 부모에서부터 자신이 간병하던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속물적 근성이 넘칩니다. 시를 배우는 모임에서 만난 경찰 역시도 가장 속물적인 이야기만 꺼내는 것이 몹시 불편하기만 합니다.
강노인과의 관계도 어쩌면 죽은 여학생이 겪었을지도 모를 수치와 분노 감정을 직접 체험해보려는 속죄이자 또 한 편으로 강노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함께 했으리라 봅니다.
이창동 감독은 말합니다.
한 인간이 가진 삶의 더러움, 추함, 고통 이런 것들을 경험한 뒤에, 그러니까 그 모든 고통을 통과한 뒤에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뒤에야, 비로소 시를 쓰게 될 수 있다는 그런 과정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인공 미자는 죽은 소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도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시 한 편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각본까지 모두 다 직접 쓰고 영화를 제작한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개봉후 관람객수가 21만명대에 머물러 있으니 참패라고 봐야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죽어도 시를 쓰려는 마음의 사람들이 있고, 예술영화가 죽은 시대에서도 진정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강조합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던진 질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바타와 같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영화 위주로 영화가 제작되며 단편적으로 흐르지 않나 안타까웠다는 겁니다.
주인공 미자는 시에 대해서 공부한 적도 없는 할머니에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까지 앓게 되어 단어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죠. 그러니 주인공 미자는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의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런 그녀가 시를 쓰려고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인물 그 자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시인들은 오히려 시가 다 죽었다며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시를 읽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으며, 시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주인공 미자는 시를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가 죽은 세상에서 시를 쓰려는 인물입니다. 영화 첫 장면의 흐르는 강물에서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과도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냉혹하게도 연어는 보이지도 않고 반대로 한 여자아이의 시선이 떠 내려오는 모습을 첫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철없이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보여주며 인간의 상반된 부조리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미자 역시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숭고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위치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냥 그렇게 묵묵하게 자신의 일과 삶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평범한 우리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안겨줍니다.
그 정도로도 이미 살아가고 계신 거라고...
마지막 엔딩에서 들려주는 시의 제목은 <아네스의 노래>인데요. 아네스는 영미권에서 흔한 여성의 이름입니다. 수녀의 이름으로 비롯되었는데요. 우리에게는 흔히 아그네스로 많이 알려져 있죠. 영어식 발음으로는 애그니스(Agnes)에 가깝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네스라고 부른 이유는 아마도 죽은 여자 아이를 범용적으로 부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 제목을 만든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시고 음미해보시라고 영화속 영상을 전해봅니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 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에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 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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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말합니다.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딛고 일어서면 또 한편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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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니아 정철상은...
중학교 때부터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버려진 버스집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던 그에게 영화는 유일한 인생 탈출구였다. 고등학교는 날마다 월담을 할 정도로 영화에 푹빠져 1년에 100여편씩 보며 지금까지 5000여편의 영화를 보아온 순수한 영화 마니아다.
본업으로는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강연과 집필과 상담을 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 푹빠져 《정교수의 인생수업》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영화가 던지는 인생질문》이라는 주제로 영상과 집필을 이어나가려 꿈꾸고 있다.
✔교육/상담문의처
이메일 career@careernote.co.kr
취업진로지도전문가교육 https://careernote.co.kr/notice/1611
✔ 따뜻한 카리스마와 인맥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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