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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선생님 물먹인 어머니, 자식을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1. 17.


순하디 순한 어머님이 호랑이 선생님을
소위 물먹인(?) 기억이 떠오른다.


최근 자서전을 준비해볼까하고 과거를 돌아보다가 떠오른 사건이다. 자서전은 평범하다고 출판을 거절당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겼다. 그래도 나의 역사를 되돌아본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여하튼 그래도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기업의 전문경영인도 두 번을 거쳤다. 대학교 교수도 되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성취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부쩍 성장한 나 자신을 보면서 가끔 나도 놀래곤 한다. 그러면서 부족한 내가 이 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에 대한 어머니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성이 조용하시고 품위 있고도 여성적이었던 어머니. 어찌 보면 나약해 보이는 보통의 어머니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순하디 순해 보이기만 하는 그런 평범한 어머니님이셨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담대한 용기와 기개가 있으신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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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


이런 이야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으리라 생각해지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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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미팅이라는 것을 하게 되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잊어져버렸지만 아마도 무척 초조하고 긴장되고 설레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소개를 주선한 내 친구가 여자들이 나오자 담배를 물었다+_+

요즘이야 고등학생이 담배 피우는 일이 흔한 일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소위 노는(?) 극소수의 학생들만이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금 놀랬다.


 

자리에 앉아 어쩔줄 모르고 긴장하고 있던 나는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야, 나도 한대줘~”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뭐야, 너 담배
안 피우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냐, 나도 펴, 오늘 담배 안가지고 왔어, 한대줘~”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냥 지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친구한테 지기 싫었고, 누군가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 어리석은 판단이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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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흡연은 20여년 가량 지속되었다. 밖에서 담배 필 때야 비교적 마음대로 피긴 하였지만 학교에서야 마음대로 필수가 없어서 주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던 시절이었다. 단속하는 선생님들을 피하기 위해서 주로 망을 보는 친구 한명을 두고 돌아가면서 담배를 피우고 선생님이 근처에 오면 모두 나와 버려서 교묘히 단속을 피하곤 하였다. (이미지출처; http://blog.naver.com/kotr90 )


주로 3학년 화장실에서만 단속을 나오기 때문에 가끔 1학년 화장실에서 담배를 마음껏 즐기기도 하였다. 운 좋게 3학년이 되어서까지 한번도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학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임선생님에게 걸려서 화장실에서 안 죽을 만큼 실컷 얻어맞았다.


당시에 육체적으로는 튼튼하던 시절이었기에 맞으면서도 아픈 것 보다는 부모님께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실컷 때리고 나신 선생님은 “내일, 부모님 모시고 와!”라고 말하시는 것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시는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릴 것이 걱정스러웠다. 또 한편으로 불같은 아버님에게 어떤 화를 당할까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은 불안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초조한 저녁이었다. 부모님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하셨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면서까지도 망설이다가 어머니에게 넌지시 한마디 건냈다.

“어무이, 샌님이 함 보자카던데...”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대충 그렇게 중얼거리듯 이야기하고 나섰다.
 ‘오시면 오시고, 못 오시면
바빠서 못 오시는 것으로 선생님께 대답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학교를 향했다.


그 날 어머니는 중얼거리듯 던진 아들의 말에 “그래, 고3이 되었는데도 한번도 못가봤네, 가봐야지”하고 마음먹고 '오늘은 학교로 한 번 가야봐겠다.'하고 마음먹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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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아무 영문도 모르고 교무실에 오신 어머님은 선생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먼저 들으셨다. 아마도 큰 충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여하튼 어머니님이 있는 자리에서 선생님 앞에 불려가 엄청 꾸지람을 들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너, 이xx, 고3이 되가지고 공부안하고 어쩌려고 그러냐. 그래가지고는 공돌이 된다.”라는 등의 내용으로 다소 거칠게 꾸지람했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앞에 계신 어머니에게 무척 죄스러웠다. 시간이 멈춰진 듯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은 억겁같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갑자기 일어서시더니 내 손길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곤 “가자!”하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눈이 둥그레지셨다. 난 갑작스런 어머니의 제의에 놀라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어머니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한편으로 쾌재를 불렀다.

선생님이 내게 '너, 거기 못 서'라고 말하며 몇 마디를 던지셨다. 어머님은 아무 대꾸도 없이 내 손을 이끌었다. 그렇게 교무실을 벗어나고, 학교를 나서서도 한마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무 말씀도 계속해서 없으셨다. 조금은
두려웠다.

집에 도달할 즈음에 “아버지한테는
말씀드리지 않을테니 담부터는 그러지 마라”고 한마디 말씀하셨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님이 말을 건네주어서가 아니라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겠다는 말에 안도를 한 것 같다. 그 만큼 철부지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면 잘 들어주시고, 올바른 행동만 하시는 분이 선생님께 왜 그러셨을까 생각해봤다.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되었다. 그렇지만 왠지 신뢰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자식이 한 행동이 비록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게다. 하지만 내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보여주신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들을 온실에서 키우듯 감싸듯 하시는 분은 아니셨다. 그럼에도 그 날 보여주신 모습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되었다. 대개 그런 식으로 어머님은 나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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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어린이 대공원 나들이;  저 멀리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고 있는 우리 공주님 다리가 보인다.)


그 크신 어머님의 사랑을 마음에 늘 담대하게 살려고 용기 있게 살아왔다. 나를 키워준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매일 하루에 한통씩 안부전화를 드린다. 어머니는 나의 사회적 활동보다도 좋아하시지만 잊지 않고 매일 전화 드리는 행동에 더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주변인들에게 빠지지 않고 자랑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민들레영토의 지승룡 소장님을 세미나에서 만났다. 그가 이야기하는 mother마케팅이 바로 이러한 믿음과 신뢰에 근거한 주고 또 퍼주는 우리들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어머님이 나를 대하듯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였는가에 대해서 문득문득 반성하곤 한다. 가족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전한다면 지금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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