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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창업

여행박사 신창연 창업자, 열정적인 자세로 네 모든 일에 도전하라!

by 따뜻한카리스마 2014. 5. 30.

 

남자들은 서너 살 많은 연장자를 만나면 쉬이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왠지 오글거리는 마음에 필자는 쉬이 그렇게 부르질 못한다. 그런데 여행박사를 창업한 신창연 대표를 만나면서 저절로 ‘형님’이라는 어휘가 입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비단 40대인 나뿐만 아니라 20대 청춘 남녀들도 ‘형님’이나 ‘오빠’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50대 임에도 불구하고 복근이 나올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그가 소박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본다면 누가 봐도 한 해 2천억 원에 가까운 매출액을 올리는 기업가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웃집 형님 같은 그에게서 따뜻한 친근함과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이 느껴질 것이다.

 

(여행박사 신창연 창업자와 함께 캄보디아 여행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던 중에 버스 안에서 한 컷^^)

실제로 그는 회사에도 사장이라는 권위를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200여명이 넘는 회사인데 사장실도 없다. 심지어 직원들은 그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일단 회의를 하지 않는다. 정기회의라는 것 자체가 없다.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다가 잠시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그러다가 다른 사원들처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직원들은 그럴 때 신창연 대표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보고도 없다. 특히 계획서가 없다. 이번 달이나 내년에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보고서가 없다. 물론 계획을 세우지만 모든 부분은 경영자에게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팀별로 계획을 세운다. 모든 일에 대해 일체 신뢰하고 맡기는 만큼 책임 역시 팀별로 확실하게 진다. 팀별로 수익이 적으면 적게 돌아가고, 수익이 많으면 많이 돌아간다. 그러면 팀원들이 저절로 알아서 한다는 것이 신 대표의 생각이다.

 

직장에서 떼돈을 벌 수 없다면 즐겁고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창연 대표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늘 ‘좀 더 재미있는 것, 좀 더 이상한 것, 좀 더 차별화 된 것’을 찾는다고 한다.

 

직원들의 행복 뿐 아니라 사회의 행복을 위해 수익의 10%는 사회에 공헌한다. 수익의 30%만 자본금으로 남겨두고, 30%는 직원들과 1/N로 나눠가지고, 30%는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모든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금 입출은 어떻게 되는지, 회사 대표의 법인카드 지출내역은 어떻게 되는 지까지 모두 다 공유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을 정도 기업 경영은 투명하다.

 

그러다보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이 파산에 직면했을 때조차 상당수의 직원들이 앞장서서 급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돈을 십시일반으로 회사에 투자해서 다시 회생시킨 경험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신 대표와 여행박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애정이 직원들 사이에 끈끈하게 형성되어 있다.

 

오죽하면 여행사 직원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가 경쟁사인 여행박사가 되었을지 그 뜻을 짐작해볼 수 있다.

 

신창연 대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도전해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필자기 보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가벼워 보이는 일들조차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 열정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가 있다.

 

신창연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날에 하찮게 보일 수 있는 일에조차 전력을 다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주간지 판매를 위해 이웃한 상가, 아파트, 술집 등등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단순히 뿌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드린다. 그 덕분에 하루 100부 이상의 주간지를 팔아치웠다.

 

포장마차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도 다른 포장마차보다 더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청결만으로는 승부가 날 수 없다고 차별화 전략을 스스로 고민했다. 그래서 주변 상인들이 대부분 곱창을 세제로 씻을 때 그는 주인아주머니를 설득해서 밀가루와 콜라로 씻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도 소주로 한 번 더 씻어 잡냄새를 없애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성황을 이뤘다.

 

그의 젊은 날 일화 중에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일본으로의 무전여행 경험이다. 3만 원 정도의 돈만 들고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비행기 표는 여행사에 취직한 선배들을 찾아가 무작정 협찬해달라고 졸라서 얻었다.

 

잠은 일본에 있는 선배 집에서 자고 그 다음 날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요코하마에 있는 인력시장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새벽 4시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이삿짐을 나르거나 소금을 나르는 등의 잡일을 했다. 운이 없어 일을 못하게 된 날은 이를 기회 삼아 일본의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15일간 일본에 체류하는 관광 비자로 입국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브로커들을 통해 더 연장할 기회가 있었지만 수수료도 비싸고 정말로 연장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서 꺼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는 체류 기한을 이틀 앞두고 영사관을 무작정 찾아가 열변을 토했다

 

“난 일본에 여행 온 학생입니다. 처음엔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잠깐 여행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에 와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일본에 와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좀더 머무르고 싶습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 일본 문화를 알리고, 일본과 한국의 교류를 넓힐 다리가 될 것입니다. 저를 믿어보십시오. 지금은 비록 학생이지만 전 곧 일본을 위한 많은 일들을 할 것입니다.”

 

영사관 사람들은 그의 말에 군소리 없이 체류 기간을 연장해주었는데 실제로도 여행박사는 일본여행 전문여행사로 출발해서 한국과 일본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던 것이다.

 

그는 지난 2013년 12월에 여행박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일부 언론은 ‘쇼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 하얼빈으로 올해 초에 떠났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추운 날씨’에서 그가 가장 싫어했던 ‘공부’라는 것을 하며 앞으로 남은 인생의 1년을 10년처럼 보내겠다고.

 

* 상기 글은 제가 매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국방일보 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일부 수정보완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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