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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5

25살에 시각장애인이 된 청년이 말하는, '행복' 만일 25살에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당연히 바라보던 가족들과 하늘 조차 바라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저는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저는 나사렛대학교에서 ‘진로개발과 생애설계’라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100여군데의 대학과 기업에 강연을 나갑니다. 소위 가르치는 일이 제 업이죠. 잘나서 가르치는 것은 아니죠. 그러다보니 가르치면서 오히려 너무 많은 배움을 얻곤 합니다. 제 미약한 지식으로 풍부한 삶의 실제적 지식을 전달하지 못할 때 스스로에 대한 안스러움으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늘 따뜻하게 지지해주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제가 겪은 작은 배움을 하나 이야기할까 .. 2008. 2. 3.
피터 드러커 생애 - 유럽에 대한 실망 함브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시절: 기업과 사회에 대한 관찰 드러커는 1927년 빈 김나지엄을 졸업하고, 그 해에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근무했다. 1927년이 다 저물어 갈 무렵, 견습서기로 취직한 지 4개월 만에 드러커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어 빈에 돌아왔다. 그런 드러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주간지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Austria Economist)의 신년 특집호의 편집회의에 나오라는 초대장이었다. 드러커는 열 네댓살 무렵부터 그 잡지를 애독하고 있었으나 편집자와는 만난 일은 없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에서도 이름있는 잡지였다. 창간 당초는 [런던 이코노미스트](London Economist)를 모델로 하..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지적 분위기속에서... 살롱과 도서관 드러커가 어린 시절부터 유럽 상류사회의 사교 및 지적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게 된데는 전술한 헴의 처 게니아 여사가 운영하는 살롱에 초대되면서 부터였다. 그녀의 살롱에 출입하는 사람 가운데는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도 있었다. 드러커는 "내가 그녀의 살롱에서 만을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만은 노벨상을 받기 수년 전이었는데, 그는 이미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게니아의 살롱에서는 누가 언제 [주역]이 될지 몰랐다. 내가 출연자석에 최초로 앉은 것은 14, 5세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세계무역에서 파나마운하의 영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개통한 지 10년 안팎이라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고 회고.. 2007. 12. 13.
피터 드러커 생애 - 격동의 20세기 초 2005년에 작고한 피터 드러커 교수는 내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다. 드러커 교수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과 교훈은 '나의 인생, 나의 꿈'에 별도로 올리도록 하겠다. 국내에서 드러커 교수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대구대학교 총장출신의 이재규 박사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드러커 교수에 대한 정보를 옮겨본다. 죽는날까지 완벽을 추구하신 그 분, 또한 그 분을 뛰어넘고자하는 분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리라. 1. 격동의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과 부모의 영향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F. Drucker)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그의 모친.. 2007. 12. 13.
잡코리아 김화수 대표- 뚝심있게 밀고 나가라 웹리크루팅, 쉽게 말해 취업사이트는 내가 몸담았던 산업 중에 하나였다. 이 분야에 자세한 내용과 내 사업의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경영란에 한 번 더 다루겠다. 이 카테고리는 인물을 다루는 곳이라 기사에 올라온 사람들을 그냥 가볍게 캡쳐하면서 올려본다. "하고 싶은 일과 연애를 시작해라!" 국내 1위 취업포털 잡코리아 김화수 사장 우경희 khwoo@newsva.co.kr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연애하듯 사랑에 빠져,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997년 대학원 졸업반 시절, 뜻이 맞는 4명의 친구와 함께 5000만원으로 창업한 잡코리아를 10년만에 매출 400억원 규모의 온라인 취업포털 1위 기업으로 키운 김화수 사장.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 2007.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