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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203

실수와 실패가 주는 삶의 교훈 지난 달 중순에 조영관 박사님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직장에 근무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왕성하게 다양한 활동을 역동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 열정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굴의 한국인 발굴을 위하여 민간차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동안 인터뷰 해온 분들 리스트를 보내주셨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1. 강동형제주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숨은 공로자 강동형 회장 2. 국동전'심훈 상록수' 꿈꾸며 50년 농업계몽, 국동전회장 3. 권다현기차로 2,859Km 달린 권다현 기차여행 전문작가 4. 김덕만‘앉으면 죽는다’ 6년간 서서 일한 공무원- 국민권익위원회 홍보담당관 김덕만 씨 5. 김명수700명 인물 인터뷰한 '피플코리아 김명수' 6. 김순영12개국가.. 2012. 6. 10.
한국경제TV 왕종근 이세진의 성공파트너에 출연합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입니다. 이달 초에 한국경제TV를 통해 ‘왕종근 이세진의 성공파트너’에 출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소상공이라는 다소 한정된 테두리가 있어서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내가 맡을 몫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이 방송은 한국경제WOW TV와 소상공인 방송 YES TV로 동시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소상공인진흥원에서 하는 국책사업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작년에는 '왕종근 이세진의 성공을 부르는 밤'이란 제목으로 방송됐는데요. 올해부터는 불경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소상공인들에게 방송을 통해 소상공인으로서의 사업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성공노하우를 전하고 있답니다. 이 방송은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방송하고 있는데요. 저는 월요일 방송인 ‘성공특강 디딤돌’.. 2012. 4. 29.
북365TV 방송 동영상,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입니다. 지난 2월 6일에 북365TV를 통해 생방송 강연 토크쇼가 있었는데요. 보셨나요^^ 못 보셨죠-_- 그래서 고우성PD와 방송 관련자분들의 허락을 받아서 방송 녹화분을 건네받았습니다^^ 비록 인터넷 방송이었지만 반응도 좋았는데요. 여러분들도 보시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제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봅니다. 이날 방송은 청춘북밴드팀의 김민철님과 김영서님이 진행을 맡아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아마츄어라고 하셨는데 너무 편하게 잘 진행해주셔서 저도 편하게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1시간 분량의 방송으로 하려고 했는데요. 그날 방송에 참가한 분들의 열의 있는 눈빛 덕분에 1시간 40분가량으로 늘어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동영.. 2012. 2. 18.
직업적으로 갈등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생방송 강연 토크쇼 [청춘북밴드 제4회]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정철상 저자 생방송토크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입니다. 임진년 새해 잘 맞이 하셨는지요^^ BookTV365에서 진행하는 생방송 토크쇼에 제가 초대받았습니다. 이 행사는 오프라인으로도 진행하고 동시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도 동시에 중개된답니다. 오프라인 행사에 일찍 신청하시면 친필 사인이 들어간 제 도서도 받을 수 있으니 서둘러 신청하세요^^더불어 물리적 거리로 인해 참여가 힘드신 분들은 인터넷방송으로도 시청가능하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좀 더 다가가는 강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흑룡의 기운 받아 성장도 하시고 행복도 챙기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오, 삼포세대.. 2012. 2. 2.
버스에서 통곡하며 울던 한 청년의 사연 부제: 젊은 날 한 없이 울고 또 울었던 기억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 1학년이나 2학년이었을 때였지 싶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 때였다. 어쩌면 내 청춘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가 이때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했나 보다. 어느 봄 날. 친구들과 하교 길에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쳤다. 겨우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 친구들이 나를 자리에 앉혔다. 아마도 취했나 보다.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농거리를 하다가 차창 밖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밀려와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주변에 친구들도 있고 그것도 사람들이 많은 버스 안이었는데도 다 큰 청년이 소리 내어 우니 얼마나 민폐였을까. 돌이켜보면 참 민망한 일이.. 2012. 1. 27.
계속되는 불합격에 채용되었다 거짓말까지 하는 구직자 심정 계속되는 불합격에 채용되었다는 거짓말까지 하는 구직자의 심정 제대 후 복학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해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공부가 어디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전공이 영어였지만, 내 수준은 정말 엉망이었다. 외국인의 말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복학 후 무엇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전공이 영어인데 영어를 포기하면 공부도 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영어 실력을 쌓아보겠다고 다짐했다. 남들처럼 영어책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실용영어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복학 전에 학원에서 2개월간 초급회화 과정을 들었다. 집안 형편상 학원을 다.. 2012. 1. 16.
직업군인으로 입대해야만 했던 이유 대학 등록금이 없어 시작한 직업군인 생활 사소한 경험의 사소하지 않은 의미 여자들이 남자들 이야기 중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군대 이야기와 축구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웬만해서는 군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사실 부끄러운 기억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직업 이야기를 꺼내면서 군대 이야기를 빠뜨리기는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4년 6개월간이나 직업군인으로 생활했으니 군대도 내게는 분명 하나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군에 들어가서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잃었는지의 경험들이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기에 여성분들의 질타를 무릅쓰고 군대 이야기를 꺼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축구를 .. 2012. 1. 13.
젊은 날에 분실자살을 꿈꿨던 이유 젊은 날의 나는 지독하게 나 자신이 싫었다. 가정도 싫었고, 사회도 싫었다. 어찌 보면 그래서 학생운동에 눈뜨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과 더불어 학생운동을 병행했다. 공부는 딴전이었다. 잘못된 사회체제와 군부 정권에 반발심만 컸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분노했다. 짧은 시간만으로도 학생운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학 2학년이 되어서는 총학생회의 간부 직책을 맡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학생운동은 사상 공부로 시작되었다. 모임과 토론을 많이 가졌다. 여러 대학모임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갔다. 내가 살던 부산뿐 아니라 타 도시까지 지원시위를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서면으로, 부산역으로, 서울역으로, 광화문 광장으로 거의 날마다 .. 2012. 1. 11.
내가 봉제공장 직공으로 취업했던 이유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웠던 데다 입학시험 점수도 엉망이었다. 부모님에 떠밀려 후기 대학에 입학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결정한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방황했다. 사실 대학은 1년가량만 다니다 그만둘 생각이었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술만 마셨다. 거의 매일 마셨다. 지금은 소주 한 병도 제대로 못 마시지만, 그땐 7병까지 마셔보기도 했다. 너무 취해 아스팔트가 내 앞길을 막아서는 환상을 경험할 만큼 죽도록 마셔댔다. 너무 나 자신이 싫었고, 술로 나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등록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봉제 공장에 취업했다. 집안 형편으로는 대학을 다닐 수 없었다. 봉제공장에서의 내 업무는 ‘시다’였다. ‘잡무를 하는 사.. 2012. 1. 9.
왜 학교만 가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들까?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초라한 열등생 공부라도 잘하면 좋으련만 내 성적은 늘 중위권이었다. 국어를 제외한 거의 전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놀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는 했다. 그런데도 성적이 안 나오니 나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분명 머리가 안 좋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친구들 앞에서는 일부러 공부를 안 하는 척했다. 공부 같은 것은 인생에서 쓸모없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행동했다. 시험 기간에는 특히 심했다. “야야, 공부 대충 좀 해라. 공부가 밥 먹여주냐?” 하는 식이었다.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돌머리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행동한 자존심 탓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둘 무렵, 집안 형편은 조금도 나아.. 2012. 1. 4.
KBS라디오 세상의 모든 지식, 생방송에 출연합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입니다. 묵은 해 잘 마무리하시고, 임진년 새해 잘 맞이하셨는지요^^ 정말 정신없는 지난 한 해도 결국 가버렸네요. 올해는 정신 좀 바짝 차리고 지내야겠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여유롭게 지내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초심을 가지고 더 낮은 자세로 배우고 익히는 한 해로 보내볼까 하는 다짐도 품어봅니다. 제가 1월2일 월요일 첫날부터 KBS라디오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사실 제 일정이 있는 날이어서 다음으로 미룰까 하다가 요청한대로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지난해 초 메이저 방송국에서 연락 온 TV방송을 제 일정이 있어 다음 기회로 늦추자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연락이 없네요-_-;;; 그래서 이제는 찾아주시면 기꺼이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수락을 했습니다. 방송은 그나마.. 2012. 1. 2.
가난이 축복이라는 말, 정말일까? 내가 태어나기 전이다. 아버지는 만석꾼의 귀하디귀한 외동아들이었다. 작은 동네였지만 꽤나 재산이 있었다. 40대에는 포드 자동차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 유년의 기억에는 한 번도 넉넉한 형편으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 젊은 날 아버지는 10여 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만 뜻하지 않게 불명예로 제대하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보급창고장이었던 아버지는 부하직원이 물건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아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억울하다고 통곡만 하다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직장생활도, 사업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하는 일마다 실패했다. 결국 만석꾼 집안의 재산을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모조리 날리고 말았다. 내가 여섯 살 무렵, 우리 집은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어머.. 2011.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