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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사회약자를 위해 병주씨와 함께한 특별한 동행취재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4. 9.
 

부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이동권 보호’를 위해 지체장애인 박병주씨와 함께 나선 뜻깊은 나들이.


박병주씨를 만나기 위해서 부산 영도 남항동으로 향했다.

사회약자 보호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장애인과 동행취재를 위해서다.

병주씨는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다른 장애인에 비해서 목발을 짚고 이동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가벼운 장애 정도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도로 향했다.


좁다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많은 집들. 한 눈에 봐도 그리 넉넉해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박병수씨에게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이라고 해서 수당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조금은 놀랐다.



생활보호대상자나 차상위계층이 되어야만 수당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부유한 경우에는 그렇다손 치지만 사실상 벌이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부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주씨 집으로 들어섰다. 계단이 너무 가팔라 보인다. 아~, 담담하게 앉아 있는 박병수. 그와 가볍게 첫 인사를 나눴다. 나들이를 위해 나서는 걸음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가 하체를 빗자루 쓸듯이 끌면서 신발장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남자 인어였다. 하반신을 거의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 발은 오그라들고, 나머지 한 발도 겨우 땅을 지탱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때 다치면 목발 짚는 정도의 가벼운 상태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도 취재당일 시종일관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 역시도 사람들이 너무 오버하면서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부끄러울 것 없다는 그의 당당함에서 오히려 작은 일에도 남의 눈치나 살피는 내 자신이 한량없이 부끄러웠다.


3살 때 열병을 심하고 앓고 난 후, 장애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된 입장으로 마음 아프기 그지없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곧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일단 그의 고향이 함양이었다. 그곳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다. 나 보다 훨씬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둘은 서로 갑장이었다. 나이는 스물아홉,,,ㅋㅋㅋ, 마음만,,,ㅎㅎㅎ

                        (지체장애인 박병수씨와 함께 나선 특별한 나들이에 동행한 사람들)

오늘 체험행사는 일체 병수씨를 도와주지 않고 평소에 그가 활동하는 모습 그대로를 취재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을 나오자마자 무단횡단을 하려고 했다. 건널목 있는 것으로 둘러가기 힘들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모두 같이 무단 횡단했다. 그의 마음이 이해는 되어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말 한 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못했다.


“병수씨, 절대 무단으로 건너지 마세요. ‘절대’라는 말이 너무 힘들다면 ‘가능한’이라도.”


몇 발자국 걸었는데도 벌써 힘이 드는지 버스를 기다리며 벽에 기대선다. 버스가 왔다. 그는 가뿐하게 버스에 오른다. 너무 쉽게 버스에 올라 그가 힘들게 오르는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버스 타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버스 계단이 너무 높아 몸에 통증이 많이 온다고 한다.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버스 계단이 없는 차량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그런 버스를 보고 이유도 몰랐었다. 그런데 그동안 영도에 그런 차량이 단 한 대도 없었다. 부산시와 버스조합에 수년간에 걸쳐 탄원한 결과 겨우 2대의 차량을 지난해 확보했다고 한다.


사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시설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지하도 상업시설이 점령해 쉴 곳이 없고, 지하철 승강장에도 텅빈 공간만 있고 쉴 곳이 없다. 장애인 뿐 아니라 노약자나 시민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인다.)


버스를 타고 남포동역에서 하차했다. 아래 계단을 보니 벌써 갑갑했다. 계단이 막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겨우 계단을 내려왔으나 쉴 곳이 없다. 상업시설들이 줄지어 늘어서면서 시민들의 쉴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이윤도 좋지만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정도는 배치해놓은 배려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쉴 공간이 없어 역사에 기대어서 잠지 쉬고 있는 박병수씨, 동행한 우리도 힘든데 전혀 힘든 기색을 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장애인 이동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관련 동영상:


그는 원래 일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포기했다. 나이 18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혜성고’라는 부산 유일의 특수학교를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덤덤한 직원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된다고 잘라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안 사실이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 들어간 장애인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때 나이가 이미 20대 후반이라 고등학교를 들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불친절한 전화 한 통이 한 장애인의 꿈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곳곳에 이런 아픔이 많았다. 한 개인의 무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기술이나 배우라고 해서 도장기술을 배웠다. 동네 사람들에게 수천 개를 파줬다. 별 소득원도 안 되었다. 바로 집어 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이십대를 보냈다.


병주씨와 최종 목적지까지 가면서 이야기 나눈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최종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마지막 편은 꼭 기대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 사회 약자인, 장애인의 이동권 보호를 위한 동행 취재 연재기사
1.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의 피해자는, 결국 또 다른 장애인?
2. 반송선, 수익성 논리로 대형 참사 초래할 우려
3. ‘이동권 보호’를 위해 병주씨와 함께한 특별한 동행취재
4. 사랑하는 연인 만나러 가는 병주씨와의 아름다운 동행 (예정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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