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스완>에 출연한 나탈리 포트만이 8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소식이 전해지자 관객들이 영화에 몰렸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아카데미 징크스를 깨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탈리 포트만은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영화 레옹에 나온 천진난만 소녀가 더 이상 아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녀의 광적인 연기에 관객들마저 신들린 느낌으로 영화관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 필자 역시 술 취하듯이 영화에 취해버린 느낌이었다. 영화가 이렇게 관객을 압도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지만 완벽하게 몰입한 그녀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결코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 니나는 발레 능력은 뛰어나지만 순수하기만 하고 나약한 이미지로 인해 새롭게 각색되는 ‘백조의 호주’에 프리마돈나에 발탁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한 ‘백조’와 사악한 ‘흑조’의 1인2역을 소화해야만 하는데 ‘흑조’역할에서 필요한 관능적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 감독은 자신의 유혹을 뿌리친 그녀에게 오히려 기회를 부여한다.
니나는 감격해서 무대에 오르기 위한 준비에 성실히 매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약한 내면으로 인해 점점 정신적 압박감이 커진다. 거기다 기존의 프리마돈나 베스가 감독에게 버림받고 교통사고까지 당하며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자 불안감을 느낀다. 거기다 새롭게 입단한 릴리는 자신과 달리 에너지 넘치는 관능미와 카리스마로 그녀의 자리를 위협한다.
니나의 내면에 숨겨진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예술 감독은 니나에게 일탈과 자위행위까지 할 것을 요구한다. 서서히 피폐해져 가는 딸을 걱정한 그녀의 엄마는 급기야 딸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사면초가에 놓인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서 서서히 숨겨진 본능의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현실과 무의식을 오가며 끔직한 환상에 시달리지만 결국 무대에 올라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비참한 결말에 관객들은 경악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성공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조금 돌려서 뒤틀어보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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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융은 인격의 가면이라고 불리는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연기자들이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함으로써 연기를 소화해내듯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페르소나에 몰입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물론 지나치게 팽창한 페르소나는 니나처럼 끔찍한 결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술 단장이 원하고 니나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니나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강한 욕망, 그러니까 사악함을 연기력으로 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동양사상으로 보자면 성선설과 성악설에서 ‘악’의 힘을 끄집어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융은 그러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그림자’라고 불렀다.
이런 ‘그림자’는 남들에게는 아주 낯 뜨거울 정도로 민망한 충동성을 가지고 있다. ‘식욕, 성욕, 폭력, 배설욕, 자기충족욕 등’으로 온갖 숨겨진 욕망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이 모두 통용될 수는 없기에 사회적으로 억압된다. 부모에 의해서 종교에 의해서 도덕에 의해서.
하지만 그림자에는 아주 강렬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경험과 에너지와 위대한 창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자 맥그리거가 주장한 X이론에 따르면 이런 어두운 본능은 무조건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업원들은 일하기 싫어하며 가능하면 일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통제하고 위협해야 한다. 대다수 종업원들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며, 안전을 추구하며, 야심도 없기 때문에 지시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맥그리거는 Y이론으로 종업원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들이 일하는 것을 놀이와 같이 즐길 수 있다고 믿게 된다고 말한다. 종업원들을 조직 목표에 관여하게 할 경우에 자기지향과 자기통제를 행할 뿐 아니라 책임을 수용하고 스스로 일하고,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도전하면서 일을 성취해나간다는 것이다.
X이론은 저차원 욕구가 개인을 지배하며, Y이론은 고차원 욕구가 개인을 지배한다고 가정을 하는 것이다. 맥그리거는 Y이론의 가정이 X이론의 가정보다 더 타당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종업들에게 적절한 의사결정, 책임, 그리고 도전적인 직무에 참여시켜야만 직무 동기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X이론을 신봉하는 경영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직원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통해 그렇게 실패한 기업 사례로 버로스, 러버메이드, 크라이슬러 등의 회사를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폭군이라는 말을 내세울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내세웠던 러버메이드의 CEO 스탠리 콜트는 매일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서 매주 80시간을 일했으며, 관리자들도 자신과 똑같이 하길 요구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회사 제품을 쓰고 있는 청소부가 길거리에서 투덜거리는 불평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엔지니어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품을 당장 다시 설계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엄격하게 하나하나를 지시했다. 그로 인해 콜트가 있을 당시에는 극적으로 회사는 성장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 회사는 시장에 비해 59%나 뒤진 실적을 보이다가 결국은 뉴엘에 인수되었다.
1978년 크라이슬러 CEO로 취임한 아이아코카는 썩은 회사를 엄격하게 도려내야해야 한다며 혹독하게 직원들을 몰아붙인 덕분에 3배의 성장까지 끌어올리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재임 후반기에는 경쟁시장에 비해 31%나 수익률이 뒤쳐져 미끄러지며 결국 회사는 또 한 차례의 파산 위기를 맞았다.
실패한 기업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X이론으로 폭정을 휘두르던 순간에는 회사가 성장했지만 폭군이 떠나고 나면 결국 회사가 몰락했다는 사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짐 콜린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몰락한 기업들은 성공 기업들에 비해 5배나 자주 감원을 단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들에서는 끝없는 구조조정과 마구잡이 난도질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1971년 다윈 스미스라는 한 평범한 인물이 다른 기업은 주가가 오르는데 20년 동안이나 주가가 36%나 주가가 떨어진 케케묵은 제지회사, 킴벌리 클라크의 사장이 되었다.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는 20년간이나 CEO로 재직하며 킴벌리 클라크를 세계 최고의 종이 소비재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전체 시장에 비해 4.1배나 달하는 누적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는 3M, GM, 코카콜라와 같은 쟁쟁한 기업들까지도 앞지르는 실적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거만한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스미스 사장은 경비 담당자나 생산직 직원이나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며 한결같이 직원을 믿고 신뢰했다고 한다.
샐러리맨의 천국을 만들었다는 평까지 듣는 일본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채찍은 필요 없다. 오로지 당근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경영자들이 성선설을 100% 믿어야하며 인간 중심의 경영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 블랙스완 속의 예술 감독은 니나 내면의 숨겨진 엄청난 에너지를 이끌어 내며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국 유능한 인재를 끔찍하게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황금알을 놓는 거위의 배를 통째로 가르고 만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인재개발 전문가, 정철상
주요저서 : <가슴 뛰는 비전>,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등 다수
인재개발 전문가로서 대학과 기업에서 강연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거(www.careernote.co.kr)로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젊은이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그들에게 오늘도 꿈과 희망을 넣어주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다.
*참고로 상기 글은 SK그룹 사보에 기고했던 원고로 사보에서는 [<블랙스완>과 Y이론,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4월호에 게재되었다. 편집을 통해 실제 원고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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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출간작 1.가슴 뛰는 비전 2.서른 번의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7월경 3.심리학이 청춘에게 답하다:10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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