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가 거쳐 온 직업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김이준 교수님이 박사논문 과정에서 저에게 인터뷰요청을 해 와서 정리했는데요. 제 이야기가 취업과 진로문제로 갈등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년에는 자전적 에세이로 다시 한 번 책을 출판해보려 합니다. 20대의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거친 각기 다른 직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왜 그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기록해봤습니다. 아직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정리해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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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가지 직업을 거친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모든 직업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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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통 사람들보다 이직을 많이 해서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도 있는데요. 그 내용이 무척 깁니다. 사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라는 제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서도 여러 글을 담긴 했는데요. 필요하시다면 참조하셔도 좋을 겁니다. 다만 그 책에서 제가 거친 이력을 모두 다 담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내년에 완전히 자전적 에세이로 새로운 도서로 출간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 이력서를 기반으로 그동안에 거쳐 온 직업을 소개합니다.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잘 정리해서 좋은 자료로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2006.7.1 ~ 현재 :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39세 ~ 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씨큐어넷이라는 회사의 자회사인 파워잡이라는 취업사이트 대표로 있다가 독립한 후에 ‘나 스스로 기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개인사업자를 등록하게 됨. 처음에는 ‘경력개발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이후 조금 더 포괄적으로 기업과 개인 측면을 고려하기 위해 ‘인재개발연구소’라는 사업자명으로 변경해서 지금까지 운영해옴. 도움 주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별도로 사무실을 내기도 했으나 사실상 1인 기업으로 활동. 주로 강의하고, 글 쓰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무를 맡아서 진행)
2. 2015.7. ~ 현재 : (사)한국직업진로지도 협회 설립, 부회장
48세~ 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오랫동안 취업진로분야에 있으면서 내가 배우고 익힌 노하우를 이 분야 강사와 상담사와 입직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에 ‘취업진로지도 강사’ 교육과정을 2012년부터 개설해서 지금까지 운영해옴. 이들이 교육 수료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교육과정 개설 다음해인 2013년도 ‘취업진로강사협회’를 설립함. 그러나 단순 민간단체로 머물러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보다 실질적인 구심체 역할을 하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 사단법인으로의 전환 작업을 시도함. 공선표 이사장님을 비롯해 의기투합한 이사진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한국직업진로지도협회’를 설립해서 고용노동부로부터 정식으로 민간 법정단체로 인허가를 받게 됨. 매월정기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취업교육과 취업캠프 등을 운영. 2016년에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진행함.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학교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취업, 진로 프로그램 운영해나갈 예정임.
3. 2013.12. ~ 2015 : 취업진로 강사협회 설립, 부회장
46세~48세 (설립 이유 : 2011년도에 취업진로지도 전문가들을 배출하겠다는 의지로 만든 강사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함께 공부하며 함께 할 사람들의 모임으로 ‘취업진로강사협회’로 설립. 기존의 ‘커리어코치협회’는 ‘커리어코칭’이라는 코칭 중심으로 움직이고 내가 설립한 조직은 ‘강사’중심으로 움직여보자는 뜻으로 만듦. 부산과 서울에서 각기 매월 1회씩 정기 강연회 진행함.
4. 2000. ~ 현재 : 방송활동 패널
한국직업방송, 캠퍼스TV, 법률방송, 한경TV, KBS문화한마당 등에 고정출연, KBS역사저널 그날, MBC신철도기행, KBS부산 아침마당 등의 방송에 100여 차례 출연
33세~ 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직업으로 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2년가량을 거의 매주 고정출연할 정도 방송활동을 하기에 별도로 기록해봤습니다. 2000년대에 취업전문기관인 리크루트라는 회사에서 근무한 덕분에 방송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취업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간간히 방송을 하게 되었는데요. 독립한 후에 도서출판이나 취업문제로 갈등한 인재, 강사로, 멘토로 방송에 종종 출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도부터 KBS라디오에 10개월간 매주 고정출연하기도 하고, 한국직업방송에 거의 매주 출연하며 방송 출연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5. 2010.4.1 ~ 현재 : 커리어코치 협회 부회장
43세~현재 (가입 이유 : 내 나름대로 배우고 익힌 것들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취업, 진로 분야 강사들을 조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산에서 협회를 설립하려고 윤영돈 부회장에게 자문을 구함. 그러나 그렇게 협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당시 이미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좋겠다는 제안에 커리어코치 협회에 참여함. 커리어코치 양성 프로그램에도 참여.)
6. 2013.9.1 ~ 2015.2.28. 부산 외국어대학교, 취업전담교수
46세~48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구대 1년 계약이 종료되고, 정교수 제안이 있었으나 막상 5일 근무하려니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음. 그래도 학생들하고 정이 들어 지원했으나 학교 내부 사정상 여러 가지 이유로 산학협력중점교수직 지원에서 탈락함. 이후 수도권 대학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은 있었으나 이미 부산으로 이사를 한 상태라 교수직 제안을 거절함. 그러다가 모교인 부산 외국어대학교에서 계약직 교수 제안이 있어서 들어오게 됨. 학생들 평점도 높고,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으나 학교 내부적으로 특강 강사료를 높게 받는 사람들에 대한 구조 개편 등의 이유로 1년 반을 강의하고 나오게 됨. 대학 1,2학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취업과 진로를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실용과목 교육함.)
7. 2011.3.1 ~ 2012.2.28. 대구대학교, 초빙교수(취업전담교수)
44세~45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나사렛대학교에서 학생들 반응도 좋았고,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 그러나 그 사이에 가족들이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나 역시도 통학을 하기가 번거롭던 시기에 2배 이상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대구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옴. 게다가 1년 초빙교수로 계약직 이후에서 정교수로 전환된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자리를 옮기게 됨. 대학 1,2학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취업과 진로를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실용과목 교육함.)
8. 2007.3.1 ~ 2011.2.28 나사렛대학교 진로개발 겸임교수
40세~44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파워잡이라는 조직을 키워서 코스닥에 상장을 시켜보고 싶다는 욕심도 내었으나 회사 구조상 그 정도로 투자할 여건은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 실적압박의 스트레스는 견딜 수 있었으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대로 월급만 받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무작정 사표를 쓰고 뛰쳐나옴. 앞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으나 ‘자기계발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주말부부 하는 두 달 동안 집에 틀어 박혀 두 번째 책을 집필함. 그 덕분인지 그동안 알고 있던 대학교의 교직원 추천으로 나사렛대학교에 저학년들을 위한 취업진로 교과목을 맡아서 운영하게 됨. 대학 1,2학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취업과 진로를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실용과목 교육했는데 사실 저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공공기관들의 채용대행 업무와 헤드헌팅 실무를 맡았기에 고학년이 더 최적화된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학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분들은 많았으나, 고학년보다 더 광범위한 진로를 꿈꾸는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사람이 없어 저는 주로 저학년만을 가르쳐왔습니다. 고학년들도 2,3개 대학에서는 강좌로도 운영을 했지만 대개 고학년은 특강을 했고, 저학년들의 경우에는 특강도 많았지만 학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8년 동안 저학년 전담교수로 활동했습니다.)
9. 2007년 6월 ~ 현재 : 블로거
40세~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먼저 ‘블로거’를 직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들 수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야 이름 있는 파워블로거나 수익을 올리는 블로거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무려 1,000만 명 이상의 방문자들이 블로그에 방문하는 인기 블로거이기도 하고 일정 부분 수익을 발생하는 부분도 있어서 하나의 직업으로 올려봤습니다.
계기는 블로거들에게 초대받아 강연을 하게 된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파워 블로거였던 ‘혜민아빠’의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10년가량을 꾸준하게 블로그에 글을 올려왔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일주일에 3개 이상의 글을 올려왔습니다.
처음에 주제는 취업으로 시작하려 했으나 도서로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게 되었고, 이후 자기계발, 여행, 가족 등의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다루긴 했으나 취업진로 상담글을 많이 올리게 되었습니다. 블로거 덕분에 언론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10. 2005.5.30 ~ 2006.6.30 파워잡 대표
38세~39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열심히 일해서 본부장이 되었고, 대외적으로 회사를 보다 더 알리기 위해 내가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회장을 설득해서 법인 대표로 등기함.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처음으로 일산에 집도 사게 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됨. )
11. 2001.10.22 ~2006.6.30 ㈜씨큐어넷 (HR사업본부 본부장 겸임)
-담당업무: 경영,관리,기획,교육,컨설팅,영업,마케팅 등 전반적 경영업무와 실무
34세~39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리크루트라는 회사를 키워서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으로 보상받으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을 했으나 오너의 경영마인드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투자유치 제안이 무산된 후에 퇴사를 결정함. 당시 자금압박으로 매월 급여연체가 있어서 큰 기업의 외부 투자자를 유치했으나 투자는 받으면서도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사장 덕분에 투자는 무산됨. 실제로 그 이후로도 이런 일이 반복해서 있었고, 리크루트라는 회사는 결국 파산함. 그로 인해 옮기게 되었던 회사가 파견업체인 씨큐어넷이라는 회사였음.
당시 회장이 인터넷사업을 뛰어들고 싶어서 취업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싶었으나, 내부적인 반발로 지연되고 있던 상황에 내가 제안서까지 들고 프레젠테이션해서 사업부를 만들어 책임자로 신사업을 운영하게 됨. 취업사이트를 기획, 개발, 운영, 관리하게 됨. 이 당시에 사업부 책임자로 직원들을 동기부여 해야 되어서 책도 많이 읽고, 강연도 많이 듣게 되었는데 그런 활동이 나중에 독립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됨.)
12. 2002.8. ~ 현재, 작가
35세~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제 직업을 ‘작가’라고 부른다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나 그래도 ‘비즈니스 분야의 실용서적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라고 별도로 분류해봤습니다. 지금까지 10여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도 평생토록 글을 써나갈 터인데요. 적어도 10,20여권 이상 책을 써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저는 책을 쓰리라 어림도 못 냈던 평범한 사람인데요. 1999년도에 제가 좋아하는 명언을 모아서 제본 책을 한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글을 쓸수록 두려움을 많이 느끼기는 했지만요. 처음으로 쓴 대중서적은 ‘취업 및 경력관리 요령’이라는 책이었는데요. 불과 2,3개월 만에 쓴 책이라 졸필 중에 졸필입니다. 당시 취업사이트에서 근무하면서 입사지원해오는 분들을 위해 취업 조언해온 경험을 담아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경력관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정말 멋도 모르고 이렇게 쓴 책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10여 권의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13. 2000.10 ~ 현재, 칼럼니스트
33세~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칼럼니스트’도 직업으로 볼 수 있느냐 싶기도 하겠지만 한 달에 적게는 5,6건에서 많게는 30여 건의 글을 기고하고 있고 웬만한 사람의 급여 수준이 되기도 해서 하나의 직업으로 올렸습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리크루트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로 당시 회사에서 운영하던 ‘월간 리크루트’라는 잡지 때문이었습니다. 그 잡지에 글을 간혹 기고하는 계기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잡지는 1년 후에 다른 곳으로 매각되었으나 이후에도 10여 년간 글을 기고했습니다. 사실 이 잡지로는 원고료를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사에 기고하거나, 기업의 사보나 여러 언론, 잡지, 인터넷 매체에 글을 기고하면서 한 달에 적게는 5,6건에서 많게는 30여건까지 칼럼을 작성했습니다. 어떤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나, 도서에 게재했던 글을 활용하기도 해서 손쉽게 쓸 수 있는 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글은 하나 작성하는데 보름 이상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칼럼은 나중에 도서를 집필하는데도 유용해서 거의 거절하지 않고 모두 수락하며 지금까지 글을 써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할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14. 2000.10 ~ 현재 직업상담가, 커리어코치, 진로상담가
33세~현재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기업에서 요구하는 채용대행과 헤드헌팅 업무를 맡으면서 지원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상담하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이메일 상담을 하기도 하고, 대면상담을 하기도 했는데요. 처음에는 제가 밥을 사주며 상담을 해주다가 나중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유료코칭으로 전환해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료상담은 해주고 있기는 한데요. 다만 이메일 상담이나 학교에서 교육받는 학생으로 국한했습니다. 이메일 상담의 경우에는 공개하는 조건으로 무료상담을 해주는데요. 한 달에 적게는 30여 통에서 많게는 200여 통의 메일이 날아옵니다.
유료상담의 경우에는 대면상담이 많은 편인데요. 1회성 상담에서부터 1년 간 진행하는 상담도 있습니다.)
15. 2000.2.10 ~ 2001.10.20리크루트 (웹마케팅팀, 인재개발팀 팀장 역임)
- 헤드헌팅, 채용대행, 상품개발, 기획, 사업/컨텐츠 제휴, 마케팅/영업 등
33세~34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투자했던 벤처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아 서로의 관계가 뒤틀어지고 내 업무도 해외 마케팅에서 무역업무로 바뀐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돈도 더 벌고 싶다는 생각에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채용전문기관인 리크루트라는 곳에서 자체적으로 인력을 채용 중인 채용공고를 보고 그곳에 지원하게 됨. 이미 여러 번 이직을 해서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워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한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됨. 창원시청에 1년 정도 파견상담 업무를 했으나 나를 채용했던 상사가 그만두게 되어서 본사HR팀의 책임자로 활동하게 됨. 멋몰랐지만 그 덕분에 성장하게 됨. 아무도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매달리고 공부하고 실수했던 것이 오히려 전문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개인적으로는 주식투자로 모든 것을 다 잃었으나 내가 속한 분야에 전문가로 성장해서 모든 것을 보상받자라는 다짐을 하게 됨)
16. 1999.5 ~ 2000.2.9. 하림 물산 (소프트웨어 해외 마케팅 – 해외 마케팅 팀장)
32세~33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6개월간의 한국 시장 조사 후 한국에서는 승패가 없다고 보고했으나, 독일본사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했으나 도의상 그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섬. 무역회사였으나 벤처 회사에 투자해서 그 회사의 소프트웨어 해외 마케팅을 맡는다하여 지원하게 됨. 이곳 회사에서 근무하며 당시 검색엔진 홍보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 보름 정도로 해외출장을 처음으로 나가게 됨. 주로 소프트웨어 해외 마케팅 업무를 맡음. 나중에는 수입 업무를 맡아 수입할 물품 조사하는 업무를 맡게 됨.)
17. 1998.10~ 1999.5 GRM 코리아 (경영, 마케팅, 기술 - 지사장, 대표)
31세~32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이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인정을 받았으나 기존 사장의 부도덕성과 인격으로 인해 퇴사 후 신설 사업의 지사장으로 한국 시장조사 역할을 함 )
18. 1997.11~ 1998.10 바이드뮬러 코리아 (외국인회사-기술영업 대리-전기,전자부품)
30세~31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IMF가 닥치며 방송국 구조조정으로 나오게 됨. 계약직, 외주직, 프리랜서의 4,50%가 구조조정 되어서 밀려 나옴. 그 후 어학연수라는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할까 생각도 함. 관련 에피소드에 대한 경험글: http://careernote.co.kr/1866
도피라는 생각이 들어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영업직이라는 업무에 도전해서 일하게 된 외국계회사임. 이곳에서 기술영업이라는 업무를 맡게 됨.)
19. 1995.12~ 1997.11. 부산방송국 외신부 기자 (계약직, 기사작성, 번역, 영상편집)
28세~30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학졸업 후 첫 직장, 계속해서 대기업을 탈락하고, 그 후에 중견기업들까지 모조리 탈락하고, 중소기업조차 들어가기 어려웠던 상황. 결국 좋은 곳으로 취업을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던 시기에 학교에 방송국 소속으로 영어가능자 채용추천의뢰가 들어서 지방방송국에서 근무하게 됨. 그러나 정확하게는 방송국 소속이 아니라 방송국과 계약한 외주프로덕션 소속으로 근무하게 됨. 기사작성과 번역 업무를 주로 맡음)
20~26. 1996.12~2004. 투잡 활동: 브리태니커 세일즈맨, 모 방향제 부산지사, 암웨이, 외국인 채용 활동, 특강강사 등 파트타임으로 활동
30세~38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직장 다니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투잡으로 병행하기도 함. 대체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을 더 벌려는 목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대부분. -브리태니커: 세일즈맨으로 활동하면서 브리태니커의 몰락을 지켜봄. 당시 브리태니커 전질을 팔면서도 동시에 백과사전을 압축한 CD를 판매했는데 인터넷시대의 개막으로 사실상 몰락하게 됨,
-방향제 부산지사: 공공시설과 식당, 병원 등에 방향제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에 올라와 방향제 임대사업을 하려다가 중도에 그만 둠,
-한국암웨이: 지금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이름이었음, 결혼 전이라 아가씨를 소개 받았는데 그 아가씨가 좋은 사업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암웨이를 소개해서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 후 1년간 맹렬하게 활동함, 이 경험은 나중에 제 도서에도 게재함.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 (관련 링크 : http://careernote.co.kr/1869)
-외국인 채용 활동 : 회사에서 채용대행 업무를 맡던 중에 외국인 채용 파트는 없어서 부업으로 외국인들을 채용해주는 업무를 맡음. 종종 기업에 근무할 고급인력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 학교나 학원에서 외국인강사를 채용할 때가 많아 그들을 소개하는 일을 통해서 부가적으로 보수를 받음. 그러나 당시에 주식투자를 하며 돈이 급한 때라 거의 모든 돈을 주식으로 다 날려버림.
-프레젠테이션 제작 활동 : 사업기획, 문서기획, 제안서 작업, PPT제작 등의 업무를 일부 진행함. 이 역시도 돈을 벌기 위한 일한으로 투잡으로 병행함.
- 기타: 이외에 동영상 제작, 교재 제작, 스토리보드 제작, 온라인 강의활동, 특강강사, 인력 네트워킹 사업 등의 활동도 함.
27. 1988.6 ~ 1992.11. 직업군인으로 공군하사관 복무 (레이다 전자정비 엔지니어, 총4년6개월)
21세~25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학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 되어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직업군인으로 공군 입대. 영어를 전공하다보니 병과를 항공기 레이다 전자정비로 배정받음. 처음에는 이 일을 졸업한 이후에도 영원히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함. 실제로도 동일업무를 하지는 않음. 그러나 그 때 기초적인 전기전자 교육을 이수한 경험과 경력이 향후 외국계 회사 기술영업을 하는데 유용한 작용을 하게 됨. 군복무기간 동안 저축한 돈만으로도 대학학비를 모두 모아서 학교로 복학함.)
28. 1987.12 ~ 1988.2 동래우체국 – 우편물분류 [3개월]
20~21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
29. 1987.9 ~ 1988.5. Art-Point장식회사 – 제작영업사원 [6개월]
20~21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중간에 사장이 너무 힘들게 해서 우체국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지속적으로 일하기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서 일하게 됨. 스티로폼을 잘라서 색깔을 입혀 사람만한 모양의 산타클로스 모형을 만드는 일을 함. 그러나 크리스마스 특수 시즌이 끝나면 초등학교 교실 뒷면을 꾸며주는 일을 하기도 함. 이때 영업에 대한 기초소양도 익힘.)
30. 1987.6. ~ 1987.8. 명장봉제공장 – 제단보조원 [3개월]
20세~20세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 :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봉제공장에 정식으로 취업함, 나중에 사장님이 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장취업이라고 해고하려고 했으나 가난 때문에 학비를 벌기 위함이라고 설득해서 일을 계속하게 됨)
*이외에도 전단지 배포, 영어개인교습 등의 파트타임 활동을 했습니다. 유년 시절에는 많지 않았지만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린 일이 있긴 한데 그건 말 그대로 도와드린 수준인데요. 이렇게 옛 일을 이렇게 세세하게 다 적고 보니 ‘젊을 때 조금 더 힘든 일들을 더 다양하게 경험해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부끄러워서 생각지도 못했던 농사일을 다시 한다든지 ‘신문배달, 중국집 배달부, 공사 현장일’ 등의 어려운 일을 못해본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나가겠지만 그래도 ‘동화, 영화 시나리오, 영화 출연(단역이라도), 도서관 운영, 교육장 운영’ 등의 또 다른 직업도 가져보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 유용한 교육과정과 모임 안내!
10월 15일 올해 마지막 부산과정, 취업진로지도 전문가 26기 모집안내: http://careernote.co.kr/2572
11월 7일 강사에게 필요한 강의안 구성과 ppt제작 방법론 http://cafe.daum.net/jobteach/Sk9N/107
11월 19일 올해 마지막 서울과정, 취업진로지도 전문가 27기 모집안내:http://careernote.co.kr/2552
10월 20일(서울) 대학생들을 위한 취업진로지도 전략 http://cafe.daum.net/jobteach/Sk9N/106
10월 24일(부산) 취업성공으로 이끄는 면접스피치 전략 http://cafe.daum.net/jobteach/Sk9N/105
중학교 진로특강 강사 모집 http://cafe.daum.net/jobteach/Vtce/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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