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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을 찾는 방법이 달랐던 두 친구의 이야기

따뜻한카리스마 2026. 3. 20. 12:59

천직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한 길로 걸어간 사람, 여러 길을 돌아온 사람

내게도 자랑스러운 친구가 한 명 있다. 현재 극단 맥을 이끄는 대표이자 연출감독이고, 부산연극협회 회장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멋진 친구 정남이다. 극단 맥은 1986년 창단 이후 부산 연극계에서 자기 색깔을 분명히 지켜온 극단으로 알려져 있고, 친구는 그 오랜 흐름의 한복판에서 연극이라는 이름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온 인물이다.

 

오랜 세월 창작극과 전통연희 양식을 바탕으로 한 무대를 만들어왔고, 최근에는 부산 연극계의 중추 역할까지 맡고 있으니, 고등학교 시절의 옛친구를 떠올리면 인생이란 참 알 수 없고 또 경이롭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얼굴 함 보자는 전화가 왔다. 그 말 한마디가 어찌나 반갑던지 아내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샤브집에서 고기를 몇 번을 리필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배불리 먹었고, 2차로 옮긴 광안리의 휴식공간은 또 얼마나 좋던지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친구가 제작하는 적지 않은 창작극에 음악을 맡아온 음악감독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형적인 바(Bar)라기보다는 게스트하우스(더 뷰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었다.

 

이름도 근사했다. ‘다운스테어’. 광안리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러보시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전문 바(Bar) 보다도 훨씬 더 분위기 있고 매력적이었다. 외부 손님들도 입장이 가능한 곳인데, 나중에 이곳을 통째로 빌려서 송년회 파티 한 번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았다. 배가 부른데도 술이 술술술 들어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친구와 나, 서로 다른 길로 같은 답을 만나다

그런데 커리어의 결을 놓고 보면, 친구와 나는 참 많이 다르다. 아니, 다르다는 말로는 모자라다.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극에 빠졌고,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을 사실상 연극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비유하자면 한 우물의 화신이고,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신화적 존재다.

 

반면 나는 한곳에 오래 붙어 있지를 못했다. 붙어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사정도 많았다. 또 한편으로는 내 성정 자체가 한 자리에서 오래 버티기보다는 자꾸 다른 결의 삶으로 흔들리던 면도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이직도 많이 했고, 직업도 서른 가지 넘게 거치며 변화무쌍하게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다르다. 친구는 하나를 깊게 파고든 사람이고, 나는 여러 일을 통과해오며 조금씩 나를 만들어온 사람이다. 친구는 조직적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시스템을 켜켜이 쌓아온 사람이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긴 했으되 결국에는 나 혼자 감당하고 나 혼자 구축해온 시스템이 더 많았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천직에 이르는 방식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잠깐 옆길로 샜던 사람의 더 단단한 확신

친구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점이 더 또렷해진다. 친구는 한 번쯤 다른 길로 샌 적이 있다고 했다. 연극만으로는 도저히 돈이 안 되던 시절, 자동차 회사에서 품질관리 QC 업무를 6개월 정도 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보면 그 길이 더 상식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업무에 묶여 밤 11시까지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니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건 삶이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는 돈을 못 벌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자.”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하고 오랫동안 울림이 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좋아하는 일 쪽으로 실제로 몸을 돌리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게 이런 뜻의 말을 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늘 어려웠지. 그래도 연극 말고는 내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그 말은 허세도 낭만도 아니었다. 이미 수십 년을 연극판에서 버티고도 아직 무대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살아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아주 실감나는 고백이었다. 실제로 극단 맥은 지역 설화와 민담, 역사와 무속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고, 대표작인 비나리는 프랑스 아비뇽 오프 페스티벌에 진출해 부산 극단 최초의 현지 공연으로 주목을 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부산·국제 연극제를 운영하고, 하반기에는 대한민국 연극제를 운영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창작한 왕의 나라독도장군 장한상등과 같은 대작들도 공연 예정이다. 실로 놀라운 발걸음이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결국 이렇게 자기만의 문법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전 친구를 처음 다시 만났을 때를 떠올리곤 한다. 30대 초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는데, 친구 명함에는 연극협회 사무국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나도 고생이 많지만, 너도 참 고생이 많겠다며 친구를 염려했다. 내 앞가림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면서 주제넘게 친구를 걱정했던 것이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작은 회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박봉과 불안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친구도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몇 달 내도록 하루 세 끼를 라면으로 버틴 시절도 있었다고 하니, 누구의 삶이 더 힘들었는지 따지는 일은 애초에 무의미하리라. 다만 한 사람은 그 고생을 한 길에서 겪었고, 나 같은 사람은 여러 길을 돌며 겪었을 뿐이다.

 

나는 찾지 못했고, 그는 놓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번 입사한 회사에서 평생 충성하며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겨우 들어간 첫 직장에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밀려났고, 이후에는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직과 이직 사이를 줄타기하듯 건너야 했다.

 

주말까지 이전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월요일 곧장 다음 회사로 출근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쉬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회사가 무너지기도 했고,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조직도 있었고, 반대로 내 다양한 경험을 의외로 높게 평가해주는 곳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 낙차와 굴곡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친구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친구가 다른 길로 새지 말고 한 길로 쭉 나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붙들고 살았다면, 나는 너무 자주 길이 끊기고 바뀌는 바람에 그때그때 살아남을 틈새의 길로 접어들거나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친구는 어머니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연극 외의 길을 외면했고, 나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다 붙들어야만 했다. 친구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끝까지 버텨 천직을 증명했고, 나는 빈번하게 밀려나고 우회하며 돌아다녔지만 결국 천직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강의할 때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천직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내 이야기와 친구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자기 세계를 알아보고 한길로 걸어간다. 누군가는 나처럼 이 일 저 일로 부딪히고, 밀리고, 때로는 떠밀리듯 옮겨 다니며 뒤늦게 자신의 업()을 발견한다. 둘 다 가능하다. 아니, 둘 다 충분히 아름답다.

내가 종종 강조하는 말이 하나 있다.

천직은 찾는다는 개념보다 만들어가는 개념에 더 가깝다.”

 

나는 이 말이 점점 더 참말처럼 느껴진다. 젊은 날에는 천직이 어딘가 완성된 형태로 숨어 있고, 내가 그것을 잘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오래 사랑한 한 가지를 붙들고 천직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회로를 통과하면서 뒤늦게 자기 그릇을 완성해간다.

 

그러니 지금 아직도 자기 일을 모르겠다고 너무 겁낼 필요가 없다. 길을 잃은 것 같아도 괜찮다. 길이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각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일의 문을 만나기 마련이다.

흥겹게 떠든 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길이었다

어제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친구의 아내도 함께였고, 내 아내도 함께였고 뒤늦게 합류한 음악감독의 부부도 그랬다. 그래서 더 좋았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혼자만의 레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친구는 연극이라는 한 세계를 사랑하며 여기까지 왔고, 나는 커리어와 진로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방황과 선택을 만나며 여기까지 왔다.

전혀 다른 길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 다 결국 사람을 향해 있었다. 친구는 무대로 사람을 살리고, 나는 말과 글로 사람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 도구만 다를 뿐, 마음의 방향은 어쩌면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한때 친구를 측은하게 여겼고, 아마 친구도 한때는 나를 불안하게 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 보니 누가 더 잘 살았는지를 따지는 일은 참 시시하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설득해냈느냐는 것이다. 친구는 연극으로 자기 삶을 설득했고, 나는 수많은 직업과 시행착오를 통과하며 내 삶을 설득해왔다. 그 설득의 시간이 쌓이면, 남들이 보기엔 비로소 천직처럼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천직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 들지 말라고.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고, 남들보다 많이 돌아도 괜찮다고. 한 길을 깊게 걸어온 사람도 있고, 여러 길을 지나 자기 길을 만든 사람도 있다고.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지속이고, 조급함이 아니라 태도라고. 자기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일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오래간만에 정신없이 밥 먹고 술 먹고 떠든 흥겨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바탕 떠들고 돌아오는 길 끝에 남는 것은

사람, 추억,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도 불꽃 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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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코치 정철상은...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이상의 강연과 상담을 하고 있다. 나만 몰랐던 취업비법, 대한민국 진로백서, 서른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아보카도 심리학 등의 다수 도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정교수의 인생수업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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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나만 몰랐던 취업비법>, <아보카도 심리학>, <대한민국 진로백서>,<서른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