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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사내관계형성 - 회사에서 밀당하기

 

누구나 젊은 날에 흠모했던 연인들이 한 번씩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하루를 온전히 그 사람과의 사랑만을 꿈꾸며 보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한 번만이라도 가까이서 이야기 나눠봤으면하는 애틋한 소망을 품어본 적도 없다면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이리라. 그런데 정작 연애를 시작하고 연인으로서의 관계가 진행되어 자신의 말까지 잘 들어주기 시작하면 그제야 생각보다 별로라며 시큰둥한 느낌을 가졌던 경험도 있으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연애를 할 때 사람이 튕기는 맛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객쩍은 소리만은 아니다. 그토록 사귀고 싶던 사람조차 내 말을 순응하기만 하면 매력이 떨어져 보이기 마련이다. ‘이젠 내 것이다는 소유의식이 생기는 순간 그 대상으로부터 마음이 떠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연인들은 적당한 밀당, 그러니까 밀고 당기기가 있어야 연애도 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이 연애에만 한정된 말일까. 직장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비즈니스 현장이니까 무조건 수긍하며 예스를 외치는 충성파가 직장내 성공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더 유리한 것일까.

 

한 금융권의 임원직까지 거치신 분에게 들은 실제 사례다. 이 분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 술을 좋아하는 호랑이 같던 본부장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꼼짝 못하고 업무에서도 , , 를 외치고 회식 자리에서도 역시 YES 만을 외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처음으로 입행해서 신입사원이었던 그에게 이 호랑이 같던 본부장이 술을 권했는데, ‘죄송하지만 저는 술을 안마십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회식장 분위기가 싸해지며 무거운 침묵에 쌓이더라는 것이다. 술을 못 마신다고 변명하는 것도 아니고 안 마신다고 하니 더더욱 황당했던 탓일 게다. 그것도 호랑이 같은 본부장 앞에서.

 

다들 가시방석에 앉은 표정으로 안색이 바뀌더란다. 그런데 잠시 침묵하던 본부장 입에서 , 저 친구보라고. 당당하잖아. 자신이 하기 싫은 것 싫다고 말하잖아. 그런데 당신들은 이러나저러나 매일 네, , 네만 외치니 어디서 저런 기개를 배울 수 있겠어.’라고 하며 오히려 그 신입행원을 옹호하더라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비슷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은 대리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젊은 날에 실세 부장에게 대들다가 혼쭐이 났다고 한다. 부장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징계까지 받았다. 결국 감사팀으로 호출 받아 조사까지 받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후부터 승승장구해서 해당 기업의 임원으로까지 승진해나갔다. 당시는 상사가 혹독하게 대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서 조직 내에서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 나도 이참에 상사들에게 반발하고 밀당을 해볼까 마음먹었다면 조금 더 신중을 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들이 그냥 무작정 상사의 말에 반기를 들었던 불평론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직 내에서 밀당을 잘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들은 자신의 업무만큼은 철저하다. 빈틈이 별로 없었다. 실수가 별로 없다보니 업무적으로 책망 잡힐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상사와의 밀당에서 성공하려면 업무적으로 미스가 나지 않는 프로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 단순히 밀고 당긴다고 해서 밀리거나 당겨오지 않는다는 거다.

 

둘째,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앞에서 언급한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내향적인 성격으로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듯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겸손함이 몸에 배여 있는 분이었다. 한 분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목소리도 크고 조금은 도도해보일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성격은 서로 달랐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서 모두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밀당을 벌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게임을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셋째, 무조건적으로 반발하는 부정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상사에게 반발했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상사의 말에 순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밀고 당겨야 할 시점과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애고수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 마음에 드는 이성이 만나자고 하더라도 매번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만나더라도 잘해주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는 것 정도는 하는데 그 이상의 행동은 거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대가 전혀 밉지가 않고 오히려 더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절할 때도 방긋방긋 웃으며 거절하니 애간장마저 태우기 마련이다.

 

직장상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당한 업무적인 지시는 기꺼이 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라든지, 부당한 업무라든지, 개인적인 업무는 거절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웃으면서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운다면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더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듯 적당한 밀고 당기기는 삶의 생동감을 올리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묘한 심리 게임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한 언론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일보다 더 힘든 게 직장 내 인간관계라고 한다. 2015518일자 파이낸스투데이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1위가 바로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이어서 과도한 업무 부담’(24.5%)실적에 대한 압박감’(11.0%)이 직장인들의 주요 스트레스 요인 2,3위에 올랐다.

 

특히 직급에 따라 직장 내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 달라 흥미를 자아냈다. 먼저 가장 말단인 사원급은 사람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51.3%로 가장 컸다. 결국 직급이 낮을수록 직급이 높은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1997년 대한항공의 괌비행장 추락사건은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얼마나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블랙박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를 들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대화가 오고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말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기장은 , 비가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부기장은 , 더 오는 것 같죠, 이 안에...”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는 , 비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기장님, 비상 대책 없이 시계 접근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바깥 날씨가 끔찍합니다. 밖은 완전히 깜깜하고 비는 쏟아지는데도 글라이드 스코프는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이 안에...’에 얼버무렸을 때 그런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기장은 정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기장은 이게 괌이야?”, “이거 괌이야, !”, “허허허, 괌 좋네!”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주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때 부기장이 오늘,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라고 말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육안에만 의존해서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계속 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기장은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서구인의 눈으로 봐서는 부기장이 이런 말을 고작 한두 번만 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이해를 하지 못한다. 서구인의 의사소통은 언어학자들이 화자 중심이라고 부르는 원칙, 즉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부정확하게 말한 화자에게 책임을 묻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청자 중심이다. 대화 내용을 알아듣는 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부기장이 보기에 자신은 충분히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보통 때는 청자중심의 대화가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세심하게 짚어가며 말하고 듣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무감각하고 무신경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한국인들의 대화는 매우 아름답고 세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권력 간격이 먼 대화는 듣는 사람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능력이 있을 때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완곡어법이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곳은 비단 비행기 조정석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수직수통에서 수평소통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그러나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수평소통은 요원하기만 하다. 평상시에는 완곡화법이 필요하지만 비상시에는 직설화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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