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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희생 없이 아름다운 것을 얻을 수 없다! 주말부부로 살아온 이야기!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4. 30.


요즘 사회가 복잡해지다보니 주말부부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주말부부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될까요? 안될까요?

지난 5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했습니다.

한 때 품었던 어리석은 욕심으로 거의 모든 재산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좋겠다고 생각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30대중반에 느끼는 삶의 절박함과 암울함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월드컵 시즌에는 마치 히로뽕을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죽고 싶은데도 월드컵 한국경기 볼 때 만큼은 지독한 희열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 기운이 사라지면 곧 다시 절망감으로 무너지는 느낌이 반복하곤 했었죠.

'살아야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벌려놓은 일은 내가 해결해야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말부부, 삶에 도움될까 안될까

와이프와 떨어져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도 떨어져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전력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떨어져 있는 동안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할 것 없이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잠시라도 쉬면, 어리석은 회한이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바쁘도록 만들었습니다.


빚을 갚고  일어서는데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외로워 혼자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풍요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봐도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지는 10년 가량 되었는데 주말부부로만 이래저래 7년가량을 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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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네이버 스토리북(kohyr)님, 울고 있는 기러기아빠 캐리커쳐, 수도 없이 외로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밥 먹다가도 가끔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TV보다가도 가족 그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혼자 영화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아무 이유없이 그냥 멍하니 있다가 울기도 수없이 했습니다.

가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아내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아; 여보, 지금 울고 있어?
따; 울긴, 개뿔~~~~~~흐흐흐흑-_-;;;
아; 바아보~~~~~~~~~~~~~~~~~~~~~~@_@


결혼후 주말 부부를 시작하면서 아내와 헤어질 때 눈물이 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눈이 커서 그런지 우리 마나님보다 눈물이 훨씬 많습니다-_-;;;ㅋ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헤어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 같습니다.

 


첫째가 서너 살 무렵이었습니다. 헤어질 때마다 이 녀석이 울어재끼는 통에 엄마도 아빠도 모두 울음바다가 되곤 하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먼저 울기 시작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 가족이 주체를 못하고 울음바다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상봉할 때마다 행복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헤어질 시간이 오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하나 했습니다. 적어도 울리면서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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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서울역 플랫폼에서 가족을 떠나보내면서 차창 밖에서 촬영한 사진.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준영이와 우리 가족. 비록 희미하지만 준영이 뒤로 우리 가족 모두가 보인다. 헤어질 때마다 아쉬워서 눈물바다가 되곤했다.)

 

가족이 서울에 왔을 때는 서울역 플랫폼에서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열차 차창 밖에서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웃겨보려고 해봤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울던 녀석이 아빠의 바보 같은 동작을 보고 바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은 참 신기합니다. 금방 화냈다가, 금방 울었다가고도 금방 잊어버리고 금방 웃어버리니 말입니다. 어른들은 감정 조절이 잘 안되죠. 대개 무덤덤할 뿐 아니라 그렇게 급격하게 감정이동이 불가능하죠.


아이를 웃기고 보내줬더니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울지 말고 꼭 웃겨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울음을 흘리면서도 웃기는 동작으로 아이를 웃기려고 우스꽝스런 동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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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눈물과 웃음이 함께하는 행복한 가족영화로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로베르트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다운 부정(夫情,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가족이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데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고 유머스럽게 살아가는 아빠의 모습이 결코 바보스럽게 보이지 않는 영화죠.


아빠는 총살형으로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고 숨어 있는 아들에게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그 순간 아빠는 웃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깐요. 그 땐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아빠와 헤어지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나더군요. 안 보신 분들에게는 이 영화 정말 자신있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웃기고,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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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이 장면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아빠가 총살 당하러 끌려가면서도 숨겨진 아들를 향해 장난스러운 동작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웃겨죽겠다고 생각하면서 숨겨진 장소에서 아이의 눈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너무나 슬프고 감동적인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이 장면이 나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주인공 역시 바보스런 몸짓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울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록해두었던 글이다. 관련글: 가족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우리 가족의 주말부부 생활에서 주변에서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인 목표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기에 불안정한 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려웠지만 결코 후회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주말부부를 시작했던 것이 2003년 3월이었습니다. KTX가 4월에 개통되었죠. 여러 가지 말이 많기도 하지만, KTX 덕분에 우리 가족의 상봉이 더욱 편했습니다. 마치 우리 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느낌마저 들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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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주말부부하는 동안 태어난 둘째 유진공주, 내 삶의 가장 큰 선물이자 축복인 아이들. 아이들이 있다는 것,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5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풍요로워졌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과분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아직도 미진한 면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지금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더 큰 미래를 위해서 희생한 우리 가족의 결실과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죽음을 딛고 일어선 내 삶의 변화


떨어져 있는 동안 두 번째 책을 썼습니다. 제 삶의 변화를 이끌어오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제 인생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비전이 무엇이며, 어떠한 비전을 가져야하며, 어떠한 비저너리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비전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나 자기계발을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간광고^^)

관련도서; 비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라

약10여년 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오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사실 수도권쪽에도 일이 많기 때문에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꿈 중에 하나가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운대 바닷가 앞의 오피스텔로 사무실을 잡았습니다. 사실 바다는 창가 쪽에 조금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뭐, 혼자 일하는 1인기업가가 굳이 비싼 사무실을 쓸 필요가 없을 듯해서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사무실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도 바닷가 앞이니 괜찮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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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해운대 바닷가, 백사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백, 수천번을 보았건만 질리지 않는 이 바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사랑한다. 한번씩 발을 걷어 부치고 바닷가를 거닐 때 얼마나 큰 행복감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정말 오래간만에 자유롭게 바다를 거닐면서 미친놈 마냥 뛰어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록 사무실이 조금 초라하지만 그래도 신호등만 건너면 바다입니다. 2분 이내에 바닷가 백사장이 있는 사무실이 있는 환경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요. 원래 바다를 좋아하는데, 앞으로 가까운 바다 앞에서 생활한다니 정말 기쁩니다. 가족과의 만남이 가장 큰 설렘이지만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또 다른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10여년간의 서울 생활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며... 
막상 수도권을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도 많이 듭니다. 남들이 ‘살기 각박하다, 공기 안 좋다, 인간미 없다,,,’등등 뭐라고 불평을 토로해도 저에게는 큰 기회를 주었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을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생각해본 서울생활과 지방생활에 대한 비교 글도 적어 보았습니다. 그 글은 베스트에 올라서 2만명 가량의 사람이 읽어보았더랬죠.


관련기사; 서울생활, 좋은 점 VS 안좋은 점


한편으로 아쉬운 면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게다가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가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나도 모르게 전력을 다해서 뛰어가는 과정에서 상처를 준분들도 있기에 그 분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많습니다. 아마도 앞만 보고 뛰느라 옆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인격적으로도 어리석었던 점이 많아서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반성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모두 일일이 찾아뵙고 회포를 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력이 없을 것 같아서 블로그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아마 제가 아시는 분들은 블로그를 잘 읽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제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크게 인사를 올립니다.


그동안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늘 제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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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바다에서 물장난하다 물에 젖은 신발과 양말을 말리고 있는 준영,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 폼이 '아빠 그동안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삶의 일시적 불균형을 두려워 하지 말라
덧붙여 가족과 떨어져 계시는 주말부부나 기러기 가족들에게 한마디 드립니다. 혹시나 지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좌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느끼는 삶의 과정이 불안하고 흔들려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바라본다면
이 불균형 역시 하나의 균형이 아닐까요.

참조; 불균형(자기 삶의 변화를 통해 겪는 어려운 시기, 경제적/물질적/사회적/신체적/개인적 변화로 어려운 시기, 또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서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어떤 특정 시기)

사람이 인생의 모든 면에서 희생하면서 살아갈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희생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 뼈아픈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가족과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오래 있는다고 가족애가 늘어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을 함께하더라도 더욱 더 밀도 있는 사랑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가족간의 사랑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늦었지만 올해부터 시작한 우리 가족회의 내용입니다. 대화를 자주 한답시고 오히려 등한시 했는데, 앞으로는 좀 더 꾸준하게 가족회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련기사;
2008년에 시작한 우리 가족 회의 내용
4월가족회의-오빠 괴롭히는 여동생 교육시키기
3월가족회의-TV시청 조절하기
2월가족회의-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해지기
1월가족회의-엄마 회사 출근 돕기


08년도를 되돌아보면 우리 집안의 10대뉴스를 선정해봤습니다.
관련기사: 따뜻함이 있는 08년도 우리집 10대뉴스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주말부부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시적 투자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감사의 인사말;
1일 아침에 일산 집의 짐을 뺐습니다. 그래서도 이사를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더군요. 가족들은 먼저 내려갔습니다. 오후에 서울에 있던 강의를 끝냈습니다. 다음날도 서울 강의가 있어서 같이 내려가질 못했습니다. 혼자더군요. 이젠 집도 없고,,,갑자기 밀려드는 허무함이 크더군요.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라구요.
밤에는 고향 친구랑 간단하게 저녁 먹고 술한잔 했습니다. 기분이 조금 풀리더군요.

원래 이 글은 글을 쓴 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글이었습니다. 다소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글이라 그것만으로도 자족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다음의 편집자들이 글 올린지 하루 후임에도 불구하고 메인으로 올려주셨더군요^^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허락해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전에도 일이 있어서 블로그 뉴스 베스트에 오른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강의 끝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다가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알게되었죠.

덧글을 남겨주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당장에 덧글을 일일이 남겨드리지 못하고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하지만 다소 늦더라도 남겨주신 덧글에 대해서 모두 덧글을 달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셨나요^^
조금 더 용기를 가지게 되셨나요^^
장문의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따뜻한 응원에 더 많이 행복해졌답니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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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청춘의 진로나침반>,<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