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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인생,사는 이야기

간암수술에 들어간 어머니

by 따뜻한카리스마 2016. 2. 19.

간암으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지 보름이 지났다. 설명절이라 간병인 구하기도 힘들어 내가 간병하기로 했다. 덕분에 아들노릇 처음 해봤다.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하자는 취지로 열심히 모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입원하기 전에 나 스스로와 다짐했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수술실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보자니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수술 전후로 3일 동안은 물도 못 드셨고, 나흘 가량 음식을 전혀 못 드시고, 일주일이 되어서야 겨우 밥 한 술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수술 후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 스스로 목을 가누고, 일어서 걷고, 밥을 먹고, 변을 보는 것이 신기하듯 어머니의 회복 또한 놀랍도록 신기하고 고맙고 감사했다. 갓 태어난 나를 어머니가 돌보듯 나 역시 그렇게 어머니를 애쓰며 돌봤다. 내가 그러할 정도니 어린 시절의 나를 보며 어머니는 얼마나 더 신기해하셨을지 해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입원 첫 날에 수액을 맞았는데 주사바늘을 꽂았던 자리에서 수액이 몸속으로 흘러내려 왼쪽 팔뚝이 퉁퉁 부어올랐다. 오른쪽에 비해서 2배 이상이나 불었다. 간호사의 잘못이라 자체적으로 보고까지 올라갔지만 차마 내 입에서는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수간호사가 찾아와 며칠은 부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속상했지만 참았다. 어머니는 얼음으로 찜질팩을 해야만 했다. 가만히 팔에 두르고 있기에는 팔뚝이 시렸을 게다. 간호사는 너무 시리면 살짝 아래로 얼음찜찔팩을 내려두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밤새도록 쉬지 않고 얼음을 갈아가며 차가움을 참아내며 거의 한 숨도 제대로 주무시질 못했다. 수술 전에 사람부터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잘 참고 견디신 덕분에 아침에는 붓기가 많이 가라앉아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수술 전날 밤에 대한 암수술에 대한 설명을 두 차례에 걸쳐서 젊은 인턴 의사에게 들었다. 다행히 두 의사 모두 친절하게 답변을 해줘서 수술에 대해 이해도 되고 신뢰감도 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간단한 수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단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 동안에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기에 기계가 대신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폐에 관을 삽입해서 인위적으로 호흡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 후에는 기계가 아니라 어머니 스스로 쉼 호흡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 폐활량이 좋질 못해서 걱정이었다. 수술 후 호흡을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곧 회복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충격이었던 부분은 상세한 수술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3cm 가량의 종양부위만 복강경으로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에게 문의해서 배를 가르는 개복 수술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기는 했으나 간의 좌측 부위 전체를 자르는 수술인지는 몰랐다. 그렇지 않고는 다른 부위로도 전위될 수도 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간이라는 장기가 특성상 피가 많이 들어오고 나가는 부위라 수술로 인해 출혈이 심할 수 있고 수술 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게다. 이런 사실을 수술전날에야 알았다. 주치의가 이전에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 할 때는 손마디 정도 자른다 해서 크게 염려치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20여cm이상을 꿰맨 수술자국을 소독하는 장면을 보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 몸속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 세 개의 관을 꽂았는데 그곳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참을성이 많은 어머니도 얼마나 아프셨는지 ‘그럴 줄 알았으면 안했을 걸’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사용했는데 이런 진통제라도 없었더라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쓰러웠다. 수술후 하루 동안은 몸도 가누질 못해서 중환자실로 들어가 있었는데 심한 통증으로 마취와 진통제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내셨지 싶다. 얼마나 힘드셨는지 중환자 면회시간에 우리 아들 꼭 와달라고 간호사들을 통해 신신당부를 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 후 다음날 수술을 했는데 그 날 첫 수술 환자로 지정받았다. 아침 일찍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채 이동해서 수술실로 들어서는데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자신의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내게 풀어달라고 마지막으로 말을 하는데 목도리를 잡으려니 내 손에서 힘이 없어 간단한 목도리 하나를 풀지 못하고 헤맸다. 그 사이 의료진이 어머니를 수술용 침대로 옮기고, 수술모를 씌우고, 수술용 담요를 덮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하고 나오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건네면 어머니 귀에 내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누워 있는 어머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누워계셔서 내 눈물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울지 말자는 약속을 나는 그렇게 스스로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에도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눈물을 흘렸지만 잠시 후 나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뭘, 먹을까 하다가 김밥을 사먹었다.

아,,, 인간의 식욕이란...

 

이렇듯 병원 있는 내도록 어머니는 물도 못 마시고, 식사도 못하실 때 나는 먹을 것 다 먹으며 지냈다. 찾아오는 손님마다 환자도 환자지만 간병하는 사람도 고생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머니에게 송구하고 또 송구했다. 어찌 환자의 고통의 간병의 어려움을 비할 수 있겠는가 싶어서였다.

 

일주일 동안은 매일 매시간 소변량과 물섭취량을 꼬박꼬박 기록했다.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도 수시로 깨어서 화장실에 보내드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자기 위한 좁다란 간이침대에서 자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좁아도 몸을 좌우측으로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었으니. 그러나 어머니는 수술 부위가 커서 몸을 마음대로 뒤틀 수조차 없으니 누워있어도 몸은 더 피로해지고 힘들어 했는데 어머니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다음날부터는 움직일 수 있었다. 사실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병원을 돌아다니며 걷기 운동을 했다. 평소 같다면 금방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도 결코 쉽지 않은 거리였다. 안 걷다가 그렇게 걸으니 금방 근육통이 온 몸에 생겨서 힘들어하셨다. 파스를 부치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수시로 주물러 드렸으나 그 통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게다. 그래도 걷는 것이 최고의 운동인 만큼 틈틈이 걷기 운동을 반복했다.

 

병원에 있는 내도록 수술 부위에서 나오는 나쁜 피를 뽑아내는 3개의 통을 차고 다녔는데 거의 매일 피가 가득 찼다. 아내는 그것을 처음 보고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다고 했다. 유진이도 그랬다. 그런데 어머니와 나는 어머니와 같이 통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다들 수제 수류탄을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어머니는 배 아픈데 더 웃기지 말라며 웃음을 머금었다.

 

어머니가 걷는 것만 해도 놀랍고, 밥을 먹는 것만 봐도 놀랍고, 대변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놀라웠다. 어머니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열흘 정도 흘렀을 때 어머니가 두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며 ‘우리 아들~’ 하면서 부드럽게 부르는데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만 같아서 바로 딴소리하고 병실을 나와 버렸다.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매일 매시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나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다섯 권의 책을 읽고, 강의록 준비하고, 강의교재를 새롭게 만들었으며, 사업을 기획하고, 사업을 수주하고, 사람들하고 통화도 나누고, 글도 쓰고, 온라인 상담도 진행했다. 심지어 술도 마셨다. 이렇듯 자식이란 늘 제 먹고 살길만 궁리하는 불효를 이렇게 매일 매순간 저지른다. 이렇게 며칠 고생한 것으로 불효를 대신한 듯 거들먹거리며 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련다...

 

추신: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제 어머니의 건강에 대해 염려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어머니는 지금 혼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셨고, 다음 주에는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의 평온을 늘 기원하며 감사히 살아가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참, 사진은 어머니가 차고 다니던 수류탄 통(?)입니다^^*

열정불꽃, 퐈이야~~~~^^*

 

 

어머니가 암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페이스북으로 올렸던 글:

어머니의 암수술,,,

암수술을 위해 어머니가 오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가족들이 8박9일 동안 터키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입니다. 어쩌면 제 살 길만 궁리하지 말고 어머니를 지키라는 신의 뜻이었나 봅니다. 여행은 지난해 말에 미리 예약을 해뒀는데요. 그로부터 며칠 후에 건강검진 결과에서 어머니의 간수치가 높고, 간에 조그만 혹이 의심스러워 보인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믿기지 않더군요.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지난해 말부터 계속해서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현실을 부정하게 되더군요. 여행이야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으니 취소수수료를 물고 여행은 뒤늦게 취소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머니의 병환이 두려우면서도 계속해서 ‘암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무런 문제없을 거야.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에 대학병원으로 가야한다는 담당 의사를 권유를 받고 대학병원에 들려 또 다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간암2기 확정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이런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평소와 같이 일하고, 공부하고, 강의하고, 사람들 만나고, 사업하고, 밥 먹고, 놀고 웃고 떠들며,,,

 

어머니 역시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매일 같이 우리 집을 찾아 왔습니다. 평소와 같이 아이들 돌봐주고, 집안 일 하느라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

어머니가 없었다면 어찌 제가 있었겠습니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두고 일만 시키는 것 같아서. 그런데 오늘 병원에 가는 마지막 날까지 빨래를 해야 한다며 기어코 돌려놓고 가자고 하십니다. 마음 편하시라고 그러자고 말해놓고 빨래를 돌리고 널어놓고 갔습니다.

오늘날 못난 제가 이렇게라도 잘난 척하며 조금이라도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게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어머니의 사랑 덕분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저 자신을 지극히 믿고 신뢰하며 사랑해주신 어머니 덕분입니다. 수없이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스스로 실망하며, 좌절할 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어머니가 제게 뿌리 깊이 심어주신 사랑의 씨앗 덕분입니다.

 

어쩌면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주창했던 사람-중심의 치유법이 바로 어머니가 자식에게 쏟는 것과 같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내담자에게 온전하게 애정을 전한다면 모두 치유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리 행한다면 누군들 치유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 사회의 일부가 병들어 있는 것이겠죠. 그래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런 사랑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나마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 바라보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하해[河海]와 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본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병원을 함께 다니며 홀로 ‘어머니에게 더 잘해드려야지’ 마음만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짜증내고 화낼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 댁에 저녁에 전화를 걸어서 계신지 물어보고, 조금 있다가 찾아뵙겠다고 했는데요. 그 날 투정 섞인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추운데 어머니가 밖에 나와 계셨기 때문입니다. ‘추운데, 왜 밖에 나오셨어요. 만일 제가 바로 안 왔으면 어떡하려고 밖에 나오셨어요. 아프신 분이, 이 추운 날에.’라고 따지듯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제게 싫은 소리를 할 법도 한데 “네가 언제 틀린 적이 있냐. 온다고 하면 바로 오지.” 이러시는 겁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 가득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어머니 챙겨드린다 하고 정작 행동으로는 챙겨드리지 못한 겁니다. 이런 불효가 비단 이때뿐이었겠습니까. 평생을 그리 해왔겠지요.

 

그런 면에서 자식은 영원한 불효자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어찌 그리 헤아리지 못할까요. 제 부모 늙는 것도 모르고 제 먹을 것만 챙기고, 제 살 궁리만 하며 세속의 명리[名利]만 쫓으니 어찌 불효자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내일 오전 첫 번째 환자로 수술에 들어갑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했더니 적어도 5,6시간이 걸리는 큰 수술이라고 합니다. 내일 수술에 대한 예비 설명을 듣는데 몸에 열이 오르고 숨이 턱 막히더군요. 경과를 봐야겠지만 중환자실로 갈 수도 있다고 하니 마음이 먹먹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잘 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시간 나는 틈틈이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합니다. 부디 무사히 건강회복하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부모님이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 같지만 부모님도 세월 따라 나이 들어갑니다. 다 아는 사실을 자식만 모르고 살았나 봅니다.

 

여러분들도 건강 잘 챙기시고, 부모님에게도 잘해드리시길 바랍니다.

당분간은 SNS 활동을 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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