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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상담 Q&A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살아가고 있다는 주부의 호소연

by 따뜻한카리스마 2011. 7. 14.

저는 1남1녀 를 둔 50대 주부입니다. 절박한 마음에 교수님께 손을 내밀며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는 남편과 한 집에 살고는 있으나 별거 상태에 있습니다. 헌데 저는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네요. 이런 대접이 너무 억울해서요. 이십 수년간 있어온 일을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 지...


시댁(시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남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편은 외동종손이고 남아선호와 가부장적이고 자기가문에 대단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첫아이가 딸이었는데 그 애가 태어 난지 한 달도 채 안돼서 억지로 회식자리로 데려가더니 아이가 운다고 아이를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그 애는 아빠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서너 살 때 자다 운다고 뺨을 때리길래 내가 너무 놀라서 막아섰더니 개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하더군요. 두 살 아래로 남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울고 들어와도 딸이 동생 돌보지 않는다고 야단맞았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는 벌로 그림책을 베끼게 했어요. 내가 편을 들면 더해서 그냥 사태수습에만 급급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딸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도 잘해서 올백을 맞기도 했고 반장도 하고 나무랄 데 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5살 7살 때는 노래하고 춤추지 않는다고 아이들 패딩조끼를 컷트 칼로 아이들 앞에서 그어대고 아이들 양말을 가위로 잘라 놓았더군요. 그것도 제가 수퍼간 사이에...그때의 섬뜩함은 뭐라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제가 그냥 일상적으로 넘기면 아이들이 기억을 하지 않을 것 같아 제 딴에는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했었는데 후에 그걸 아이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런 이벤트들은 지면상 더 말씀드리기가 곤란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도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자기 방법으로. 그는 00자동차에 다닙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저에게 그가 00대학 마지막 한 학기를 자퇴한 것을 얘기하시며 건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등록금을 줄 때 잔소리 좀 했다고 돈은 다 써버리고 휴학도 아니고 자퇴를 했다고...


그는 저에게 화가 나면 아이들, 특히 딸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저는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IMF가 터지면서 우리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월급도 자기 멋대로 써대고 살았지요. 그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간섭받는 것을 못 견뎌했습니다. 도박에 주식 등등...


월급은 압류당하고 나머지 반도 이자로 다 나가고 월급은 한 푼도 인출할 수 없는 세월을 4년 보냈습니다. 그때는 제가 벌어서 살았지만 행복했습니다. 시누이들도 우리가 줄 것이 없으니 연락을 끊었고 그도 이제는 정신 차릴 꺼라고 믿었습니다. 비싸게 수업료를 냈으니. 압류가 풀리면서 13평 자동차사택으로 이사하고 제대로 살아보리라 했지만 여전히 빚에 이자.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힘든 건 그것을 수습해가는 그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철저히 저를 돌려세우고 있었지요. 한 예로 자동차 직원이어서 차를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형부차를 그의 명의로 사서 형부가 우리에게 그 차를 사용하라고 주었습니다. 우리는 압류 중이었고 형부는 우리를 생각해서 그렇게 해주었는데 어느 날 그 차는 사라졌고 지금도 우린 그 상황에 대한 설명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형부와 언니는 그냥 웃어넘기더군요. 살면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는 있지만 그럴 때조차 설명 한마디 하지 않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아빠였습니다. 1년에 한 두 번은 술 먹고 와서는 이유도 없이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사춘기아들이 고분하지 않다고 누나가 대신 맞아야한다며 딸을 때렸고 아들은 자라면서 점점 힘들어했습니다. 딸 중학교 졸업식 하루 전이 아버님 기일이었고 막내시누이내외가 왔었는데 시누이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고모부의 주장으로 졸업식에 참석해서 고모부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딸이 장학금도 받고 나가서 상도 받았거든요.


그 때 고모부가 웃으면서 딸이 정면으로 보지 않아서 측면사진만 찍게 된다고 푸념을 하시더군요. 그 날 장학금으로 아빠 구두를 사고 집으로 왔는데 남편은 오자마자 왜 정면을 안 봤냐고, 그리고 장학금 받았으며 아빠한테는 왜 내놓지도 않냐....또 그렇게 집을 벌컥 뒤집었고 저는 전화질해서 부채질한 시누이도 밉지만 그를 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애비니까요. 제가 다른 때와는 달리 몇 마디 했고 그때부터 그의 상소리가 시작되면서 이혼을 하자고 하더군요.


며칠을 억울해서 울다가 생각해보니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홀가분해지더군요. 상담을 받고 아이들과 살 집도 알아보고 이혼을 남편에게 요구했더니 그는 모르는 척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주저앉았습니다. 자동차는 아이들 학비가 지원되거든요. 전 그 애들을 대학공부는 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결혼사진이랑 비디오 모두 없애고 남편을 마음에서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만이 나의 현실이었고 그와는 될 수 있는 한 부딪치지 않으면서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외박에 도박에..(친정어머니 장례식 끝내고 온 날도 외박) 내가 터치하는 걸 용납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들이 아빠를 닮을까 두려웠습니다.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못 보여줘서 아이들이 결혼생활을 잘해낼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12시전까지만 들어와 달라고 사정을 했고 조금씩 잔소리를 하면서 그는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존중마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평생 두려워해왔던 것이 아들이 아빠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00여대에 들어가고 그는 아이가 00여대 밖에 못 간 것은 제 탓이라 하더군요. 학원도 못 보내게 한 사람이. 딸이 서울로 떠나고 그는 또 술을 먹고 들어오면 아들이 있건 없건 상스런 욕을 제게 해대서 제가 차에 가서 있다가 새벽에 들어와서 밥을 준비했습니다. 하루는 아는 사람이 자기랑 마주보고 걸어오다가 자기를 보고는 인사도 안하고 다른 길로 가버렸다면서 그 이유가 제가 그 사람 부인한테 자기 욕을 해서 그렇다며 욕을 해대더라구요.


지금 현재 1년 정도를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완전 별거 상태로 된 건 3주전 아들이 고3인데 야자 마치고 독서실가서 2시까지 공부한다고 하니까 그 이유가 제가 방을 정리 안 해줘서 그런다며 방을 모두 뒤집어서 책장도 모두 아들 방에서 들어냈는데도 아들이 독서실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밥을 먹는데 새삼스레 김장김치가 맛없다고 소리지르니까 아들이 그만하라고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집에 있기 싫다고 울먹이더군요.


그 후 집에서 밥도 먹지 않고 아들한테도 없는 사람취급입니다. 그게 그가 사람을 벌주는 방법 중 하나이거든요. 그리고 한동안 딸 전화도 받지 않았어요. 그는 이제 제가 해주는 그 무엇도 먹지 않으며 전화도 물론 받지 않고 말도 절대 안합니다. 아들에게는 그래도 다행히 좀 좋아졌어요. 그는 그냥 무조건 화를 내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철저하게 무시하죠. 하루는 제가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남편과 아들만 라면을 먹고 있어서 딸 방으로 갔더니 딸이 눈물은 그렁한 채로 입은 배시시 웃으면서 엄마! 이러더라구요.


그가 야간 출근한 후 아들이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누나 주지 말라고 했다고, 아빠가 무서워서 말도 못한 자기가 너무 싫다고...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냐며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특유의 표정과 쓸데없는 소리하지마라고 하며 나가버리죠. 하지만 그는 저를 굉장히 아껴주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그는 술을 먹고 와서 제가 자기를 한 순간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비싼 것을 사주면 제가 속으로 미친 새끼라고 욕하는 거 다 안다고, (저희는 지금도 천만 원에 월30만 원집에 살고 있습니다. 월급은 많은데...)


그래도 사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아내로서 그를 끌어안지 못했습니다. 그를 품기엔 그에게 받은 내상처가 너무 아파 나도 20여 년간 출혈 중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아껴는 주었지만 예의가 없었고 친정조차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내 오빠 돈을 가져오고 사채 빚도 갚아준 내 언니를...

우리 식구들은 그래도 그에게 정말 잘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딸! 그 아이에게 한 횡포는요. 아들이 고3이라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있기엔 너무 지쳤습니다. 그를 돌려세울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수능을 칠 때까지는 표면적으로나마 정상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이 편히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저도 이제는 견뎌내기가 힘에 부칩니다. 너무나 고단하네요.


아들이 대학을 가게 되면 그도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문제가 없겠지요. 그렇다고 그가 마냥 나쁘기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여리면서도 모질고 잔인하며 생각의 싸이클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듯합니다. 제 딴에는 처절하게 견뎌낸 20여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나빠진 것은 제 책임일겁니다. 사람이 잘 살아온 댓가는 없을지 몰라도 잘못 살아온 댓가는 반드시 치룬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에게 충분히 무관심했고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라도 버텨내지 못했을 겁니다. 저도 이제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이런 인생을 사는 건 오로지 내 책임이겠지요. 그리고 우선은 그를 다시 일상적으로 돌려세워야 합니다. 저는 이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빠른 시간내로 조언 꼭 부탁드립니다. 제 남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만약을 위해 제 이름과 폰번호도 남기겠습니다. 000 010-0000-0000


어제 밤에 두서도 없이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드렸던 00에 사는 50대 주부 000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더 교수님께 남편과 그의 집안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남편은 고2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재혼하셨고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어머님도 그리 좋은 분은 아니셨지만 그의 형제들도 만만치 않았구요.)


시댁은 00이었는데 그가 같이 살기를 원해서 그는 00까지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모시고 살았습니다. 아버님과 사이가 안 좋았기에 모시고 살고 싶어 하는 그를 충분히 이해했고 그가 아버님과 좋아지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아버님과 얘기하는 것도 못 보실 지경이셨지만 그래도 1년을 모시고 살았으니 저에게 이따금은 속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시누이들 중 큰형님은 가히 메가톤급전설이시고(어머님은 저희 결혼 때문에 큰형님을 집에 오게했다더군요. 10년 동안 집에도 못 오게 했답니다. 앞으로도 집에 들이지 않을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둘째형님은 집을 나가서 10년 넘어 연락이 없다가 제 결혼날을 잡고나서 연락이 와서 시누이가 둘인지 알다가 셋이 됐네요.


아버님은 일본유학하시고 수학쌤으로 재직하시며 전두환 대통령때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아버님은 분명 어느 부분은 존경할 만 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저희가 00으로 분가 후 몆년 뒤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팔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찾을 길이 없었는데 그때 남편은 그게 제 탓이라고 술을 마시고 와서는 날마다 절 괴롭혔습니다.


약 한달 뒤 그의 외갓집에 오셨다는 연락이 왔고 전세를 얻어 가셨더군요. 그 후 얼마 안 있다 저희를 부르시더니 너희 때문에 이혼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아버님과 어머님은 저희가 없는 주중에는 같이 사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자식들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이혼을 하신 듯합니다. 남편은 제 친구의 오빠입니다...


시누이가 된 친구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의 친구로 그 애가 나중에 친구하자고 연락을 하더니 자기오빠를 느닷없이 내 약속장소에 보냈더군요. 그는 첫날 결혼하자고 하더니 그 후 3년을 나의 주변에서 쭉 있어왔습니다. 시장에 가면 시장에서 양말을 내밀고 정류소에서는 초콜릿을 내밀고...


결혼 청첩장을 가지고 시누이와 중학교 동창인 친구를 찾아갔을 때 친구는 니가 들어갈 집안이 아니니 결혼을 취소하라며 시누이와는 절교라고 흥분하는 걸 무시하고 그를 믿고 결혼을 했죠. 결혼을 앞두고 친구인 시누이가(형님 둘 손아래 시누이가 친구)예단비가 작고 마고자에 금단추 안 달았다고 제어머니에게 직접 전화해서 우리 집은 경악을 했고 저는 결혼을 않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아버님께서 전화하셔서 진행이 됐습니다.


후에 아버님은 시누이들이 예단비만 50만원씩 가져가고 부조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인간도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아버님은 편찮으셔서 돌아가실 지경에도 딸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연락을 했습니다. 신혼여행 후 시댁 들어가는 날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다 생략하고 늦은 밤에 아버님이 없어져서는 알아보니 00동의 고모님 댁에 계신대서 모시러 갔다가 그날 밤 그와 나는 밤새 마루에 꿇어 앉아 있었지요.


힘든 1년의 시집살이는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래도 몇 년이 지난 후 아버님은 저를 그냥 자식으로 봐주셨고 저에게 많은 이야기도 하셨고 저의 집이 당신 집보다 양반이라는 말씀도 해주시더군요. 하지만 돌아가시고 보니 남아있는 모든 재산도 어머님께 주시고 저희에게 오셨더군요.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님 재산이니 이해했습니다. 시누이들은 아버님이 이혼하신 후 본격적으로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아버님의 재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님 집이 당시에 몆 억쯤 했을 거예요.


특히 큰 형님 때문에 제 친정 어머니도 피눈물을 쏟으셨고 제 결혼생활도 지장을 많이 받았더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큰 형님 편에 서서 한 술 더 뜨더군요. 그는 다혈질인 사람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크지도 않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을 경멸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제가 누군가에게 자기 얘기 하는 것을 아마도 제일 무서워할 겁니다. 또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갈구죠. 이런 표현을 교수님이 느끼실지....


저희 아이들은 아빠를 두려워합니다. 아들이 얼마 전 엄마 불쌍하다며 한 마디 한 것도 참다못해 한 것입니다. 저도 이제 남편이 무섭습니다. 남편은 제가 일하러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나가는 것도 싫어합니다. 생활비를 안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아들에게 용돈도 주지 않아요. 아들에게도 조금 나아진 것 같지도 않네요. 며칠 전 아이가 먹을 빵을 사가지고 오긴 했지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정환경도 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급하게 몇 자 올립니다.


아들이 부모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 애가 대학을 갈 때까지는 옆에 있어주고 싶어요. 어차피 대학은 내보낼 꺼니까요. 아이들을 모두 내보내는 것이 제 계획이었어요. 아이들은 아직은 저와 셋이 사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그래도 조금은 홀가분하네요. 감사드리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변:

정말 장문의 글입니다. 몇 번이나 읽으면서 참, 이루 말할 수도 없이 힘든 세월을 보내셨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남편의 경우 일단 어린 시절부터 삐뚤어진 성격으로 자라왔는데, 그것을 어른들이 바로 잡아주지 못해서 더 삐뚤어진 것 같습니다.


남편 분의 성격이 어떤 분인지 여쭤보셨는데요. 지금 분석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이미 50대 넘은 상태에서는 누구도 그를 다룰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늙어 힘이 없어질 때까지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태가 심각하다면 경우에 따라 가족 모두 동의하에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라면 정말 늙어서 힘이 없어질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방법이 있고요. 또 하나는 지금이라도 갈라서는 일이 있겠죠. 갈라서는 것으로는 경제적인 딜레마가 고민이라고 하셨는데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일전에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주부 분으로부터 상담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 분도 남편 분이 문제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싸우면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심지어 월급도 몇 달 동안 주지도 않기도 하고 그런 분이었죠.


아이들도 다 대학 보냈으니 이제라도 갈라설까하고 고민하시던 중에 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꾸셨다고 하더군요. 오로지 그 인간을 바라보고 수동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를 하시더군요.


지금이라도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이혼을 하지는 않겠지만 듣고 싶은 강의도 듣고, 취미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사회 모임에도 나가고 더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누리고 싶다고. 다시는 자신의 운명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시더군요.


용기를 가지셔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경찰서에라도 연락해서 신고해야죠. 아이들 도움이라도 받아서 행패부릴 때 녹음이라도 해두세요. 필요하다면 이혼을 하고 정당하게 재산을 분할해야 합니다. 남은 재산이 없다면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생활하면 됩니다. 굳게 마음만 먹으면 경제적인 부분은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클 만큼 큰 만큼 스스로 벌면서 공부하면 됩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부부들을 봅니다. 정도가 심하면 저는 이혼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참고 삽니다. 참는 게 덕이라는 것이 몸에 배인 탓이죠. 물론 참아야 할 때도 많습니다. 사실 별 것 아닌 것 가지도 참지 못하는 젊은 부부들이 참 많죠.


정작 이혼해야 될 상황의 부부들은 이혼하지 않고, 그렇게 큰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혼하는 부부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참아만 왔기에 벌어진 면도 있습니다. 물론 남편 분 성격 문제가 근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만일 지금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30대 주부 분이 있다면 그 분에게 어떤 조언과 충고를 주고 싶습니까.


조금 강하게 나가고 싶은 면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멀리 달려오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그 긴 세월을 참고만 사셨는지요.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요. 그런 남편 앞에서는 쉽지 않으셨겠죠. 그래도 그랬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 없겠죠. 어쩌면 그와 떨어져 있는 지금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길 권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들게 살아온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재미있는 일도 하시면서 조금 즐기시고, 용기와 힘을 주는 책이나 세미나도 들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 <긍정심리학>, <욱하는 성질 죽이기>, <내 감정 사용법>, <KBS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마음>, <성격의 비밀>, <자기암시> 등의 책을 추천 드립니다. 더불어 부지런히 운동하시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면서 마음 깊은 분노를 털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ㅋ
따뜻한 카리스마, 정철상dream^^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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